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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2008.09.06 21:44

misfect 조회 수:912 추천:1

extra_vars1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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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올렸던 글을 조금씩 고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내용도 함께 쓰고 있고.


 음, 아무쪼록 재미있었으면 합니다. 그다지 좋은 글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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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신비가 사라진 거리. 더 이상 어떤 감상이 있겠어. 십여 년간 살아온 마을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비오리카는 냉정하게 반문했다. 숲과 호수 안개에 둘러싸인, 국경에 인접한 작은 마을이 이 귀족 영애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다.
 이따금 유랑하다 마을 밖에 판잣집을 짓고 한겨울을 나는 집시 일가를 제외하곤, 성주에서 돼지치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얼굴 모르는 이가 없으리만큼 변함없는 곳. 젊고 야심만만한 아가씨 비오리카가 변화를, 더 나아가 비이성적인 '신비'를 원한다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하여, 꿈많은 아가씨는 저택을 몰래 나와 달맞이를 하러 나온 마을의 젊은이들 틈에 끼었다.
 처녀들이 춤추며 둥근 원을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총각들의 원이 점점 좁혀들면서 야릇한 흥분이 사람들 모두를 휘감았다. 좀 더 신선한 바깥 공기를! 열기가 극도에 달한 순간 비오리카가 간절히, 달에 닿을 정도로 애타게 속으로 외친 말이었다. 이제 막 만월에 접어든 달이 그 주체할 수 없는 열기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날 밤 집에 몰래 돌아온 비오리카는 다른 처녀들처럼 만월을 품은 열에 들떠 신음했다. 누구보다 간절한 소망을 지녔던 그녀기에, 잉태한 달은 누구 것보다 밝고 탐스러웠다.
 이윽고 마녀와 정령이 그 달빛을,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가 설익어 비릿한 달 냄새를 따라 그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이혼하러 가는 길이죠."



 마녀가 대뜸 꺼낸 말. 비오리카는 슬쩍 주위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그 '온통 검은 마녀'와 '하얀 정령 아가씨'에게 물었다.



 "두 분, 여자잖아요?"
 "그래서요?"



 오히려 의아해하는 반응이다. 비오리카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손을 내저어 이야기를 재촉했다. 마을의 몇 안 되는 유력 귀족이란 명목으로 이 이방인들을 저녁 만찬에 초대한 것도, 아무 재미있는 얘기나 해보라한 것도 그녀 자신 아닌가. 몰래 저택을 빠져나간 게 들켜 근신 중이었기에, 이 이방인들의 방문이야말로 자신의 갈망을 해소시킬 두 번 다시없는 기회라 생각했지만,



 "네눈박이 여자가 주례였어요. 결혼 예물로 나는 심장을, 이이(정령 아가씨)는 목소리를 줘야 했죠. 네 그 아가씨에게요. 몸이 산산히 찢겨 흩어졌다 붙고, 여자가 예물을 가져갔죠."



 이정도면 신비이기보단 악취미, 특히 식사시간에 꺼내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다. 비오리카는 입맛을 잃고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어째서 저 마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이크를 잘라 먹을 수 있는 거지?'



 "예물을 찾아서 이혼할 거에요."
 "크흠, 음...그런데 이혼하시려는 이유가?"



 이야기를 끊기 위해 비오리카가 끼어들었지만,



 "이이가 채식주의자라서요."



 황당한 대답에 절로 시선이 정령 아가씨에게 향했다. 샐러드 그릇과 빵 광주리를 깨끗이 비웠지만, 아가씨 앞에 놓인 스테이크 접시엔 손 댄 자국조차 없었다.
 비오리카는 와인 잔을 입에 대어 쓴웃음을 가렸다. "술이 좀 쌉싸래하죠?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마녀가, 문득 창 밖을 보고 말했다.



 "달이 참 밝죠? 만월의 마지막 밤이로군요."
 "벌써 그렇게 되나요?"



 둥근 달을 본 비오리카의 가슴이 울렁였다. 마녀는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누군가, 사람들 저마다 모두 다른 달을 가졌다더군요."
 "인상 말씀이세요?"
 "아뇨, 실제로요. 저기 떠 있는 달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달이 공통으로 지닌 점들만을 모아놓은 환상일 뿐."



 말도 안돼. 마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비오리카는 새로운 마녀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껏 했던 얘기 가운데 그나마 신비다운 분위기를 풍겼기에.



 "그러니," 마녀는 여기서 목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이듯 은밀하게 다음 말을 이어 전했다. "자기 달을 뺏기지 않게 조심하세요."



 예상치 못한, 게다가 뜻모를 말에 어리둥절한 비오리카를 보며 마녀는 피식, 그러더니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라고 생각한 비오리카가 얼굴을 붉혔다.
 소란 속에 정령 아가씨는 슬몃 일어나 '잠시 다가오겠습니다'라고,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도 않는 말을 중얼대며 정원으로 나갔다. 홀로 나간 정령은 달을 한 번, 그리고 정면 풀숲 으슥한 어둠을 한 번 쳐다보았다. 스릉, 하는 소리에 풀숲이 가볍게 흔들린다. 정령은 어느새 하얀 장검을 들고 있었다.



 "간다."



 역시 목소리는 나지 않고, 대신 정령이 몸을 박차고 나가 수풀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싿. 잠시 소란스레 부스럭거리던 풀숲은 조금 지나자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정령이 저택 사람들 눈을 피해 들어온 건 새벽 동틀녘이 다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