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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08.02 07:10

LiTaNia 조회 수:916

extra_vars1 7. Unluck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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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 왜 온거야?"


혜인이 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 지 몰라도, 정말 외로워 보이는 애다. 불행을 부르는 애? 그 불행이라는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은 안 해본건가. 정말로 혜인이랑 친한 애들만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사람 하나랑 친해지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을까. 얘가 머릿결이 안 좋아보이는 것도 따돌림만 당하니까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데. 총대를 매는 사람이 없다면 나라도 한번.


"4반의 변혜인.. 맞지?"


내가 혜인이의 이름을 말하니까, 얘 살짝 표정이 바뀌네.


"어.. 내 이름은 어떻게?"
"우리반에 있는 기자인지 스토커인지 모를 녀석한테서 들었어."
"..."


혜인이는 말이 없었다. 하긴 나랑 혜인이랑은 원래 서로 말을 튼 사이가 아니었으니.


"나는 6반의 주윤민이라고 해. 많이 부족할 지는 모르겠지만, 혜인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
"나같은 애랑 친해지면.. 후회하게 될텐데. 친구도 이미 많아보이고."
"친구가 더 있어서 나쁠 건 없잖아."


여전히 혜인이는 시큰둥한 모습이다. 어쩌면 혜인이는 홀로 있는 상태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민이..라고 했지? 나쁜 애같지는 않아. 너같은 애.. 망치고 싶지는 않아."
"망친다니. 나 그렇게 쉽게 망가지는 사람 아냐. 그냥.. 혜인이가 좋은 애같은데 외로워 보여서."
"나.. 별로 좋은 애 아냐. 나랑 친해지면.. 윤민이한테도, 안좋을거야."


이미 입학 뒤 일주일간에 일어난 많은 일들로 인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면역이 될 것 같은 내 상태다.


"뭐 안좋을래야 얼마나 안좋으려구. 앗. 종쳤다. 나 그럼 가볼께. 나중에 봐."
"후회.. 할 것 같은데."


혜인이네 반인 3반에서 우리반 교실까지 오는데는 별로 안 걸리는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문제는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지만.


"민군, 어디 갔다온거야?"
"잠깐 화장실."
"화장실은 반대방향이잖아."
"그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 아래층에 갔다온거야."
"내가 모르는 누구 만나러 간건 아니지?"
"그럴리가."


서연이는 내가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새로 사귄 애들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는 아름선배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지. 애들끼리도 뭔가 미묘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점심시간. 유정이는 학교 식당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 식당으로는 서연이랑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원래 그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서연이는 왜 유정이를 싫어하는 거야?"
"미니한테 자꾸 달라붙는게.. 미니한테 뭔 짓을 할 지 불안해."
"에이.. 그럴 애는 아닌것 같은데."
"저렇게 잘 해주다가도 언젠가 미니한테 본색을 드러내면 어떡해.."
"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잖아. 서연이랑 계속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서 그런것 같아."
"히힛. 고마워, 민군."


나는 서연이가 좋다. 오랜동안 사귄 친구라서 그런가 서로 마음이 잘 맞는다. 요새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너무 따지는데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속은 뭔가 아닌 경우가 많지 않던가. 서연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잘 가꾼 애다.


자칭기자놈도 안 따라오는 점심시간에서 서연이랑 밥을 먹고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방송은 들려왔다.


"좀 더 멋진 남자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좋은 남자가 되고 싶어 너를 위해..♬"


지금 나오는 노래. 김연우의 '꽃보다 남자'였던가. 이 노래 하면 안좋은 추억이 있지. 서연이가 나를 '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사실 이것때문인걸.


"와, 이 노래 오랜만에 듣는다. 미니 이거 기억나?"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때 개그콘서트에서, 막 개그맨이 '안녕~ 난 미니라고 해!' 이랬잖아. 그거 할 때 이 노래 나오고 그랬는데."


내 기억으로, 개그콘서트에 나왔던 그 코너 분명히 못생긴 개그맨이 '안녕~ 난 민이라고 해!' '이안에~ 너있다.'(주1) 이랬던 코너였지. 내 이름 주윤민도 하필이면 '민'자 돌림이라서, 서연이가 그 때 제대로 놀려먹었지. 그때부터 서연이가 날 윤민이라고 안 부르고 미니라고만 불렀는데, 그게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갈 줄 알았나.


뭐 어차피 지금 그 개그맨 못 본지도 한참 되었고, 내 이름도 결국 '민'으로 끝나니 익숙해진 상태지만, 도대체 방송부에서는 하필이면 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노래를 틀어주는 겁니까.


점심을 다 먹고 교실로 가는 길에, 간만에 보긴 하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하나 만나버렸다.


"윤민군! 오랜만이야. 누나 주말에 못봤다고 잊어버린건 아니지?"


도대체 아름선배는 어떻게 언제나 혼자서 그렇게 신나는거예요. 그 때 유정이한테 한 소리 들었으면서 아직도 여전해.


"잊어버린건 아닌데..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선배?"
"주말에 나랑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학교에서 나랑 잘 놀아주는 윤민이가 생각나서 막막 심심했어."
"도대체 어딜 봐서 제가 선배랑 잘 놀아드렸다는 거예요."


정말 아름선배는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격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격만 고치면 인기가 확 올라갈 것 같은데 지금은 피하는 사람들만 있으니.


"아름이 요새 왜 안보이나 했더니, 1학년 교실로 내려간 거였어?"


누가 아름선배를 또 부르네. 이번엔 또 누구인거야.


"효선아, 그런건 아닌데.. 후배 중에 나랑 잘 놀아주는 윤민이라는 애가 있고.."
"후배가 아무리 잘 놀아준다고 해도 괴롭히는 건 아니라고 봐."


맞다. 저분 효선선배였지. 아름선배의 친구분. 두분 다 2학년인데 도대체 왜 저렇게 차이가 심하게 나는건지 모르겠다.


"효선아. 그런건 아니고.."
"2학년도 되고 했으니 후배한테 선배다운 모습도 보여줘야지. 올라가자."


아름선배는 올라가기 싫다는 눈치였지만 결국 효선선배와 함께 2학년 교실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휴. 귀찮은 짐 하나 덜었어. 효선선배, 말씀은 못 드렸지만, 고마워요.


"미니도 저런 선배같지 않은 선배한테 끌려다니지 마."
"난 끌려다니기 싫어도 아름선배가 나 맨날 끌고가는데 어떡해."


교실에 도착하니, 전혀 의외의 인물이 교실 입구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름하여 변혜인.


"나랑.. 친해진다고 한거, 후회 정말 안하는.. 거지?"


잠깐.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반 교실까지 온거야.


"여기에는.. 왜 온거야?"
"윤민이.. 너가 6반이라고 했잖아. 정말 나랑 친해지고 싶은가.. 궁금해서."


친해지고 싶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은 장소가 문제야. 지금 내 옆에는 서연이가 있고, 교실에는 유정이까지 있으니.


"미니야. 얘 우리반 교실에는 왜 온거야?"
"윤민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애랑 사귀려고 하는거야?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애랑?"


둘의 스파크가 튀는 시선이 무섭긴 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어. 할 말은 해야겠어.


"둘 다 거기까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서연이랑 유정이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다. 도대체 왜 다들 이러는거야.


"그래도.. 난 저렇게 기분나쁜 애가 미니랑 친구하는 건 싫어."
"맞아. 저런 애랑 놀면 윤민이까지 초라해질거야."


이런 말들이 오히려 혜인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그냥 겉으로 보기에 뭔가 좀 아니라고 불행을 부르는 소녀라고까지 부르며 사람을 왕따시키는 것이 더 아닐텐데.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있는게 아니야. 겉으로만 보고 뭐라고 하지 말아줘."


내가 총대를 매서라도 혜인이라는 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지만.. 그게 쉽게 되지는 않아보인다.


"치. 미니 이런애 아니었잖아."
"윤민이.. 실망했어."


그런데 서연이랑 유정이는 왜 둘다 토라진거지. 서연이야 내가 서연이 말 안들어서 그렇다 치지만, 왜 유정이까지 왜 저럴까.


"거봐. 애들이 나만 보면 저러잖아. 그래도.. 후회 안해?"
"후회는 안해. 누군가는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뭐, 말한게 정말이길.. 바랄게. 하지만.. 정말 나라는 애랑 친해지고 싶은가 하루만 더 생각해봐."
"걱정마."


혜인이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미소를 짓긴 하는것 같은데, 미소짓는게 뭔가 어색해보인다고 해야하나. 표정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고.


"나.. 그럼 가볼께. 윤민이라고 했지? 나중에 봐."
"응, 잘가."


혜인이도 돌아갔다. 하지만 자리에서 서연이는 여전히 삐져있는걸 어떡하지.


"서연아. 그렇게 기분이 안좋았어?"
"흥. 나 삐짐이야.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미니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내가.. 그렇게 크게 잘못한거야?"
"..역시 둔팅이."


이거, 쉽게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은데, 어떡하지.


"그러기에 내가 건드리지 말라는 애들만 건드리니까 이렇게 되는거야. 한 사람에게 한번 제대로 붙어봐."
"하지만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윤민이 너가 하는 짓은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거야. 봐봐. 지금 유정이 주변에 애들이 얼마나 모여있나."


박찬녀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역시 유정이를 노리고 있는 애들이 유정이한테 말을 걸고 있다. 하지만 유정이는 여전히 그 누구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듯 보인다.


"윤민이 네 녀석이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모르는 죄값을 치루고 있는 것 같군."
"그러면 너는 여자의 마음을 얼마나 알기에 여자애들 정보를 스토킹하고 있냐."
"나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결국 오늘 수업이 끝날때까지 서연이랑 유정이가 둘 다 토라져 있어서 오늘은 혼자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칭기자놈하고는 절대로 같이 가기 싫다. 도대체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토라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얏.


뭐야. 갑자기 뭐랑 부딪힌거야. 뭐가 이렇게 아파.


"죄송합니다. 사람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인가. 저렇게 인간적으로 너무 길다란 공사용 자재를 그러길래 왜 혼자 들고 길을 가. 저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치면 어떡하려구. 아. 내가 이미 치였지. 머리가 정말 무지 아프네. 어지러워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데?


으와아아앗.


푹.


뭐야. 갑자기 땅이 왜 꺼져. 정말 이 세상에 종말이라도 일어나는 걸까. 하도 길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말세 말세 떠들고 다니다보니까 결국 말이 씨가 된건가.


안돼. 난 아직 열일곱살밖에 안먹었다구. 벌써 이 세상이 망해버리면 어떡하려는...


...게 아니네.


"아니, 분명히 그쪽 공사 마무리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저기 학생이 빠진건 뭐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결국 공사를 제대로 못 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였다. 이런 것부터 해결을 못하니까 우리나라에 부실공사가 이렇게 판치지. 다행히도 깊이 빠지지는 않았다.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다.


도대체 오늘은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어차피 집에서는 윤화 때문에 건전 앤 파이터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PC방이나 가볼까.


아얏.


이번엔 또 뭐에 맞은거야. 자재를 나르는 인부에, 부실공사에 이어서 이번엔 도대체 내 머리를 뭐가 때린거냐구.


야구공?! 그것도 저승엽 사인볼? 애들 동네야구는 이런걸로 안하지 않나.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거야. 이런 딱딱한 공에 맞았으니 정말 죽지 않은게 다행이려나.


에이.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인가보다. 집에서는 윤화 때문에 건전 앤 파이터는 제대로 못할 것 같고, PC방이나 가볼까. 지금까지 게임은 집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윤화가 친구라도 데리고 오지 않는 한 컴퓨터는 오래 만질 수 있어서 PC방은 잘 갈 일이 없는데, 아무래도 나도 이제 매번 PC방에 출근해야 할 것 같다.


'캐리어 가야죠'라는 간판을 확인하고 들어가려는 순간..


응?


'죄송합니다. 저희 PC방은 중국인들의 방문으로 인한 악성코드가 컴퓨터 전체에 퍼져서 수리에 들어갑니다. 손님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이런. 문 닫았네. 중국인들이 PC방에만 가면 악성코드 쫙 퍼진다는게 소문인줄만 알았는데 사실이었구나. 건전 앤 파이터는 오늘은 못하겠네.


집에나 가자..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앗. 윤민이도.. 여기 온거야?"


역시 나랑 같은 이유로 발길을 돌리는 다솜이였다. 그러고보니 다솜이는 내가 접속을 끊은 이유를 모를테니까, 말해줘야지.


"다솜아, 일요일날에 갑자기 나간거 미안. 동생이 갑자기 인터넷을 끊어놔서."
"동생.. 왜그래?"
"자기가 컴퓨터 쓰고 싶은데 내가 너무 오래 썼다나봐. 앞으로 나도 PC방에 자주 와야겠어."
"나도.. 집에서는 컴퓨터 못해서 PC방에서 게임하는데."
"집에서 왜 못해?"
"나.. 집에서는 내가 이렇게 밖에서 PC방 다니는거 몰라. 인문계 커트라인에 겨우 붙어서, 집에서는 나 독서실 다닌다고 했어."


그런거였냐.


하긴 이렇게 얌전한 애가 정말 건전 앤 파이터 게임에 그렇게 몰두하는 애일 줄 누가 알았겠나.


"윤민이.. 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친거야?"
"아까전에 오다가 공사자재에 치이고 부실공사한 길에 빠지고.."
"많이 아팠겠다.."
"나도 오늘따라 왜 그런지 모르겠어. PC방은 수리중이질 않나. 집에 가볼께."
"응.. 잘가. 나 오늘은 정말로 독서실에 가봐야겠어. 부모님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뭐 PC방 주인아저씨야 다솜이는 단골손님이니 다솜이가 PC방 자주 들르는 것을 알겠지만, 학교에서도 다솜이랑 친하지 않으면면 다솜이가 이런 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 자칭기자놈이 말한 그 나래라는 다솜이 친구도 다솜이가 그런 애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에이. 그냥 집에나 가자.


겨우 집에 도착했더니, 역시 윤화는 신나게 컴퓨터를 치고 있었다. 그 희정이라는 애는 오늘은 안보인다.


"다녀왔어."
"오빠. 어디서 이렇게 많이 다친거야?"
"후.. 아까 오다가.."


뭐 윤화한테도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빠. 정말이야?! 어떻게 오빠한테 이런 일이.."


내 얘기를 들은 윤화도 크게 놀라네. 그런데 안방으로 왜 들어가는거지. 아. 상비약 갖고 나오는구나.


"오빠. 걱정마. 나 윤화가 있잖아. 약 발라줄께."
"고..마워."


가끔은 윤화가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할 때가 있다. 좋든 싫든 내 동생이니 귀여워해 줘야지. 약 바른 부분은 피해서 얼굴이라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 볼까.


"아차, 오빠. 깜박잊고 말 안한게 있는데."
"뭔데?"
"상수도 관이 터졌다고 유일동 전체가 내일 아침까지 물 안나온대."


그럼 그렇지.


집에 와서도 불운은 없어지지 않는구나. 하필 이럴 때 물이 안 나오는건 뭐래.


"안타깝네. 물만 나왔어도 오빠를 위해서 죽이라도 쒀줄텐데."


이런 것을 보면 물이 안 나오는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다. 윤화가 쒀준다는 죽이 어떨지는 뻔할 뻔자지. 오늘은 몸이 이런 상황이니 집에만 처박혀있어야겠다.


"윤화야."
"왜, 오빠?"
"내가 고등학교에서 새 친구 많이 사귀는게, 그렇게 걱정이야?"
"응! 서연언니 빼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그 사람들 때문에 오빠한테 막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잖아. 오늘도 이렇게 많이 다쳐서 왔고. 막 걱정돼."
"그런데 걔네들하고 오늘 많이 다친건 상관 없는데."
"그랬나? 그래도, 걱정이 안 될수가 없잖아. 오빠를 괴롭히는 건, 누구라도 가만 있지 않을거야."


윤화야, 오빠 생각해주는건 좋지만, 가끔은 윤화가 제일 무서워.


이렇게 오늘은 윤화랑 하루종일 잡담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도대체 요새 애들 왜 이렇게 FT같은 애들을 좋아하는거야. 아니, 윤화만 그런가. 이번에 일본에서 새 싱글 나오는거 두장이나 산다는데. 한장은 소장용 한장은 가지고 들을거라나. 한장은 냄비받침으로 쓰는게 아니냐고 했다가 윤화가 또 삐져서 달래는데 한참 걸렸다.


그리고 이미 어두워진 이 밤, 오늘은 딴 거 할 기분이 안나서 일찍 자야지.


"오빠, 잘자.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오빠를 위해 죽 쒀줄께."
"...웬지 먹고 싶지는 않은데."
"그럼 내일도 오빠 이상하게 깨울까?"
"아니, 그것만은 제발.."


윤화야. 부탁인데 제발 이상하게 깨우지만 말아줘. 내 동생이지만 도대체 왜 저런거에 재미가 들렸는지 모르겠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눈을 떠보니 어느샌가 다시 찾아온 아침. 다행히도 윤화가 이상하게 깨우진 않고 제 때 일어났네. 하긴 윤화도 어제 그렇게 많이 다친 날를 보고도 이상하게 깨우면 동생으로서 오빠한테 할 짓이 아니지.


그런데, 이거 무슨 냄새지? 설마 윤화 얘..


"오빠를 위해서 닭죽 한번 끓여봤어. 그 때 닭이 좀 남아서, 죽 끓일만한 양은 있더라."
"뭐?!"
"그래도 사랑하는 동생이 끓인거, 먹어줄거지?"
"...응."


이건 '울며 겨자먹기' 가 아니라, '울며 닭죽먹기'인가. 윤화가 맨날 요리를 맛없게 하니까 먹기는 싫은데, 그래도 성의를 봐서라도 먹을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싫다. 오빠를 생각해서 만든 건 고맙지만, 제발 만들기 전에 요리실력은 좀 쌓았으면 좋겠다.


정말 울고싶다.


겨우겨우 죽을 다 먹고 씻고 나가니 오늘도 서연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앗, 민군.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이 났어?"
"후.. 어제 말이지."


서연이도 엄청 놀란 표정이다. 서연이한테도 어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야지.


"민군 괜찮아? 지금도 많이 아파보여. 어제 삐져서 미안해."
"아냐.. 지금은 괜찮아. 학교에 어서 가야지."
"유정이라는 애.. 그리고 어제 그 혜인이라는 애. 둘 다 정말 기분나빠. 그런 애 때문에 미니한테 일 생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막 들어."
"그건 아닐거야."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반에 도착한 유정이 역시 나를 보고 놀란듯한 표정이네.


"윤민이.. 그러길래 내 말 안 들으니까 이렇게 다친거 봐. 어떻게 된거야?"


유정이한테도 말은 해 봤는데..


"윤민이. 오늘부터 집에 혼자 못 보내. 전에 윤민이가 나를 지켜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윤민이를 지켜줘야 해."
"미니는 너같은 애랑 같이 갈 애가 아니야."
"윤민이가 너같은 애랑 여태 붙어있으니까 이렇게 다치잖아."
"그거랑은 상관이 없잖아."
"그래도 불안해. 윤민이는 내가 점찍었어."


도대체 서연이랑 유정이 저 둘이 안 싸울날은 언제일까. 모두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지만, 헛된 바램일까.


"아, 조용조용."


그러는 사이에 선생님이 딱 들어오시네.


"입학한지 얼마 안되어서 아직도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이 있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여러분은 이미 중학생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학교인 고등학교에 입학한 고등학생이다."


언제나 상투적인 얘기는 이어지네. 조례는 그냥 짧고 굵게 끝내면 안되나.


"그런고로, 자주 지목되는 떠드는 학생은 오늘부로 자리를 바꾸도록 한다. 문서연, 안유정, 서로 자리를 바꾸도록."


뭐야?!


서연이랑 유정이가.. 자리가 바뀌어?


"네? 선생님. 왜 자리를.."
"서연이 너가 자꾸 옆에 있는 윤민이랑 떠든다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 그래서 떠드는 학생을 강남에서 전학온 모범생 유정이랑 같이 앉혀놓으면, 새로운 친구도 사귀니까 좋잖아."
"선생님.."
"어서 자리를 바꾸도록."
"네.."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미리 얘기했으니까, 수업시간 중에 자리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선생님은 내가 유정이랑 어떻게 얽혀있는가를 모르시는구나. 그걸 알면 이런 결정은 안 내리겠지. 서연이는 완전 울상이고, 유정이는 완전 싱글벙글이네.


조례가 끝나고, 서연이가 와서 여전히 울상인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정말 너무해. 왜 나랑 미니랑 떨어뜨려놓는거야!"


그리고 내 짝이 되어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정이는..


"윤민아. 수업시간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내가 잘 가르쳐줄께."


뭐 둘의 말싸움은 그 뒤로도 이어지긴 했지만, 그 다음에 바로 수업시간이라서 끊겼다는게 불행 중 다행일까.


이 학교생활, 심하게 불안하다.


- 다음회에 계속 -


주1. '안녕~ 난 민이라고 해!' '이안에~ 너있다.' : 개그콘서트에 옛날에 나왔던 코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오지헌의 유행어.


오랜만입니다. 제가 요새 미디를 배운답시고 이 쪽에는 신경을 미처 못썼군요. 그동안 오랫동안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연재는 이번에 다시 재개합니다. 혜인이랑 친해진다고 한 뒤에 집에 가는 윤민이에게 다가오는 불행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오빠를 생각한다는 윤화양.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윤민이 옆 자리에 유정이를 앉힌 선생님. 이미 뭔가 엇나가기 시작하는 고등학교 생활. 앞으로 윤민의 하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