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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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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갈아 신자 세상과 5cm 가량은 가까워진 느낌이다. 하이힐 특유 긴장감에서 해방된 진연은 그제야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볼 마음이 생겼다.


초, 중, 고등학교를 진연은 이 도시에서 살다시피 했다. 윤주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군내 학교들은 이곳 상원시에 있는 학교들과 거리로 보아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는 20여분 정도 떨어진 어느 지방 대학 캠퍼스 정도였다. 주소지는 가까운 군이었지만 진연은 오히려 상원시에 사는 애들과 훨씬 친했다. 학원가야 한다는 애들을 한사코 끌고서 놀이터로, 역 앞으로 놀러 다녔다. 지금은 쇠락해 가는 구도심 복잡한 골목골목을 어린 진연은 빠짐없이 모두 알았다.


오랜만에 찾은 도시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대학 면접시험 전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할 때만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윤주네 집 방향으론 거의 텅텅 빈 공터였다. 낡은 타이어공장과 자동차정비 공장은 그때 보았던 그대로 있었지만, 그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며 예식장, 교회 등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은 진연에게 매우 생소했다. 터미널 정면으로 한참 떨어져 유명 대형 마트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윤주 장례식을 치룰 때까지만 해도 없던 건물이었다.


“오늘은 하룻밤 묵어야겠는데?”


마녀가 꺼낸 말에 진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휴대폰을 꺼내어 액정에 표시된 시간을 보았다. 4시 46분. 해가 점점 짧아지는 때라서 조금만 뭐라도 하려들면 금방 석양이 내린다.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어디 모텔이라도 들어가 있는 편이 나았다.


마녀가 택시를 잡아 세워선 숙박업소가 있는지 물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운전기사는 여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흔한 게 모텔이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빈 땅에 하나둘 건물이 올라가더니 금세 그 일대가 모텔촌이 되버린 모양이었다. 마녀는 거기로 가주시라고 말하곤 진연에게 손짓해 차에 태웠다.


10분도 남짓 걸리지 않아 택시는 어느 모텔 앞에서 멈췄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 건물 외관은 깨끗했지만 비수기라서인지 빈 방은 얼마든지 있었다. 주변 모텔 전부가 그런 모양이었다.


빌린 방은 3층 구석 조금 넓은 방이었다. 방을 빌리면서 마녀는, 혹시 일행이 올지 모르니까 얘기 좀 해주라고 주인아주머니께 말해 두었다. 그 말을 들으며 진연은 또다시 아가씨에 대해 떠올려 살짝 기분이 복잡해졌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녀는 침대에 털썩 눕더니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제멋대로 무언가를 시켰다. 황당한 얼굴로 진연은 마녀를 보다가 수화기를 놓는 것을 보고선 벌컥 화를 내었다.


“야, 지금 장난해? 너 돈도 없다며! 지금 날더러 네 멋대로 시킨 것까지 계산하란 거야?”


“뭘 그렇게 열 내고 그래. 배 안고파? 어차피 배달 오면 너도 먹을 거잖아.”


말을 말자. 진연은 방 한구석에 핸드백과 쇼핑백을 내려두고 걸쳐 입은 겉옷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 옆에서 마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진연은 한숨을 쉬면서 그 옆에 걸터앉아 물었다.


“아가씨는 금방 올까?”


“이젠 다시 아가씨라고 부르네?”


조금 울컥했지만 진연은 더 화내지 않았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빤히 쳐다보던 마녀는 진연이 아무 대꾸가 없자 그제야 물어온 말에 답했다.


“해 지기 전에는 올 거야. 이제 곧 도착하지 않을까.”


“연락은 했고?”


마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진연은 금방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럼 어떻게 알고 오겠어?”


“연락 안 해도 알겠지. 반려인데.”


마녀가 한 말은 어처구니없었지만 결과적으론 사실이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진연이 내다보니, 한 손에 통닭을, 다른 손에 맥주 캔이며 안줏감을 잔뜩 담은 봉지를 든 아가씨가 웃으며 서 있었다.


 


창밖을 보며 캔 맥주를 홀짝이던 마녀가 별안간 어, 하고 탄성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저기 봐. 시작됐어.”


어색하게 나란히 앉아 마찬가지로 맥주를 마시던 진연과 아가씨가 마녀가 가리키는 것을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가씨가 조금 휘청거리긴 했지만 곧바로 몸을 추슬러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저녁노을이 물러나면서 서서히 어둠이 도시를 덮어왔다. 어둠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도시 모습도 서서히 바뀌어갔다.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거목들과 수풀 속에 파묻히고 길가에 세워둔 차량들도 덩굴식물과 가시덤불에 둘러싸였다. 노을빛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어두워졌을 때, 도시는 마치 밀림처럼 무성한 수풀들에 완전히 묻혀 자리를 내줬다. 마치 남아메리카 어느 고대 유적지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며 마녀가 입을 열었다.


“이제 밤이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시간도 아니지. 진연은 혼자 중얼거렸다. 같은 시간 이 행성 절반에 위치한 도시들은 모두 이렇게 변했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지난밤도 아무 일 없었구나, 안도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테고. 이렇게 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진연은 조금도 이런 광경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해가 진 동안 인간은 소수자가 되었다. 그리고 해가 뜬 동안 인간은 단순히 수가 많을 뿐인 약자에 불과했다.


진연은 전부터 궁금해 하던 것을 마녀에게 물었다.


“이것도 엄마 때문이야?”


모든 인간이 밤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태양이 뜬 낮에만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 이 이상 현상이 전부, 엄마 윤주 때문에?


술기운이 올라 상기된 얼굴에 밤바람을 쏘이며 마녀는 피식 웃었다.


“이거? 아마 그럴 거야. 윤주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 탓일지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 있어선 안 된단 말이야, 난.”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선 입가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고서 마녀는 몸을 돌려 창가에 등을 기대어 선 채 진연을 보았다. 마녀 눈을 보고서 진연은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는지 쏘아보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진연은 마녀가 자신이 아니라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무언가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딸’을 노려보면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지독한 원망을 담은 그 눈으로,


“애초부터 난 여기서 태어나지도 않았는걸.”


마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푸념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두려워 진연은 막 떠오른 질문을 던질 생각도 못하고 눌러 담았다. 대체 누구니, 네가 그렇게 원망하는 그 사람은? 속으로는 수십 번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겉으론 어색하게 웃으며 있지도 않은 맥주를 괜히 홀짝여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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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다른 제목을 생각해봐야 할 것같습니다. 사람들이 읽어줄 제목은 확실히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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