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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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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가다 마녀는 때마침 정류장에 멈춰 승객을 내리던 마을버스를 마주쳐 아슬아슬하게 올라탔다. 윤주 집을 비롯해 근방 드문드문 흩어진 시골 마을에서 인접한 상원 시로 나가는 교통수단은 그 마을버스가 거의 유일했다.


대낮이라 버스 안은 무척 한가했다. 얼굴이 거멓게 탄 노인이 한 명 왼 편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선캡을 쓴 아주머니 셋이 버스 오른편 첫 자리부터 일렬로 죽 늘어 앉아 뭔가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마녀와 진연은 맨 뒷좌석 오른편부터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햇살이 좋은 오후였다. 자리에 앉은 채 노인은 꾸벅꾸벅 졸았고, 세 아주머니는 배낭이며 플라스틱 동이, 떡집 상자 따위를 발치에 놓고서 자식 얘기, 이웃 얘기 따위를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 나눴다. 50대 중반쯤 되 보이는 기사는 눈을 지그시 뜨고 여유롭게 버스를 몰았다. 이따금 등 뒤에서 세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는지 백미러로 뒤를 흘끔거리기도 했지만 말을 걸거나 대화에 끼어들진 않을 모양이었다. 버스 안에 탄 어느 누구 하나 맨 뒷좌석에 앉은 진연과 마녀에겐 신경 쓰지 않았다.


“윤주 묻은 이후로 너 한동안 나를 안 찾아왔지?”


그 틈에 마녀는 말을 꺼냈다. 곁에 있는 진연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인데다 한참 떨어져 앉은 아주머니 일행이나 비교적 가까이 앉은 노인이라도 덜컹대는 소음 때문에 쉽게 엿들을 수 없었다. 진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그 동안 나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어. 여기 세상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까지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말이야. 반려도 만나고 다른 사람들도, 저 빌어먹을 꼬마 애도 봤지만 윤주는 어디에도 없었어.”


윤주가 죽은 걸 확인하러 다녔다고 마녀는 이야기했다. 진연과 달리 눈앞에서 윤주가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마녀는 어딘가에 그녀가 꼭 살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우면서 평범했던 마지막 윤주 모습 때문이었다.


“마음 내킬 만큼 충분히 돌아다닌 후 반려와 돌아와 보니까 웬 아틀라스ATLAS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어.”


“아틀라스?”


진연이 묻자 마녀는,


“윤주 비서.”


라고 짧게 답하곤 계속 이야기했다.


“하여튼 걔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묻더라고. 윤주는 어디 갔냐고. 죽었다고 했더니 다시 물어봐. 대체 왜 죽었냐고.”


윤주는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죽었을까. 50대 중후반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대체 무슨 이유로 8, 90세 노인들이나 맞을 법한 평온한 죽음을 맞아야 했을까. 진연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 때 왔던 의사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연사인거 같긴 한데 어떻게 아무 병도 없던 사람이,’라며 돌아갔었지.


“넌 알아?”


진연이 물어온 말에 마녀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 얘한테도 같은 대답을 했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이유를 누가 알지는 짐작이 간다고.”


“그럼 지금 그 사람한테 가는 거야? 엄마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안다는?”


진연이 조금 큰 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제 자리에서 꾸벅대며 졸던 노인은 제 품 깊숙이 고개를 박은 채 홍학처럼 잠들었고, 세 아주머니는 자기 남편 험담을 하느라 바빴다. 기사는 막 시가지로 진입하기 위해 커다란 핸들을 돌려 우회전하다가, 갑자기 끼어든 택시 탓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욕을 퍼부었다. 버스가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다치기는커녕 심지어 놀란 사람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마녀는 진연에게 주의를 줬다.


“조심해야 돼. 우리 상대는 상식적인 구석이라곤 전혀 없거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진연이 비꼬듯 던진 말을 마녀는 웃으며 받아 넘겼다.


“그래 맞아. 일생일대의 적수.”


그러면서, 기대에 어긋난 마녀 반응에 실망한 진연에게 장난스럽게 이런 말을 건넸다.


“너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말이야.”


거꾸로 놀림당한 것을 깨달은 진연이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버스는 막 육교 아래를 통과해 한참 성장세인 도시에 파묻힌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마녀는 정차 벨을 누르고 진연에게 말했다.


“윤주가 어떻게 됐는지 알면 네가 궁금해 하던 것도 알 수 있을 거야.”


“확실해?”


진연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마녀는 아무 근거 없이 너무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마녀가 보기엔 진연이 너무나 자신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럴 땐 한 번 믿어 봐. 네 엄마가 붙인 보디가드잖니.”


“저 편할 때만 들먹이는 거 봐.”


진연은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 흔들리는 통에 몸이 앞으로 쏠리긴 했지만 마녀가 뒤에서 잡아줘 넘어지진 않았다. 이 망할 하이힐! 진연은 애꿎은 구두 탓을 했다. 퇴근하자마자 마녀 집을 찾느라 신발을 갈아 신지 못한 게 후회될 거라고 그녀는 생각지 못했었다.


“이왕이면 가는 길에 신발 하나 사서 갈아 신는 게 좋을걸. 산길로 다닐 거니까.”


그 구두를 내려다보며 마녀가 뒤늦게 떠올라 말하는 걸 듣고서 진연이 더더욱 집에 두고 온 운동화 생각이 간절했던 건 물론이다.


“그걸 꼭 이제야 말하니?”


“그럼 어떡해. 서두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


마녀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딸’에게 쫓겨난 것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녀는 여전히 두 사람을 쫓고 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이 가까이에 그녀와 ‘적막’이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 말을 듣고 진연은 문득 아가씨 생각이 났다.


“아가씬 괜찮아? 놔두고 왔잖아.”


“반려라면 괜찮아.”


버스에서 내린 마녀는 진연을 기다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시외버스터미널 오른편 신발가게로 향하는 게 분명했다. 진연은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가 다시 아가씨에 대해 물었다.


“걱정되지도 않아? 그 꼬마애가 무슨 해코지를 했을지 모르잖아.”


“반려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마녀는 의외로 태평했다. 정말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마녀 표정을 보면서 진연은 도리어 몸이 달았다. 다시 마녀에게 따지려고 진연이 입을 열자, 잠자코 있던 마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넌 반려가 뭐라고 생각해?”


“뭐라니?”


무심코 대답하려던 진연은 갑자기 흠칫 놀랐다. 평소 자신이 보아온 아가씨와, 오늘 ‘사랑하는 딸’을 상대한 아가씨는 너무도 달랐다. 전자는 상냥하고 평범한 여대생처럼 보였지만, 후자는 그 상식 밖의 일에 너무나도 잘 어울릴 만큼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잘 생각해보면 마녀와 함께 있다는 점만 봐도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진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바로 곁에 두고서도 여전히 모든 게 상식적이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해버리다니.


“아까 그 집에 진짜 인간은 너 하나뿐이었어.”


마녀가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끔찍하리만큼 섬뜩하게 느껴졌다. 진연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서서 마녀에게 물었다.


“그럼, 그건 대체 뭐였어?”


“이젠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니?”


마녀가 조롱했지만 진연은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반쯤 넋이 나간 그녀를 보며 마녀는 코웃음치곤 자기 쪽으로 진연을 끌어 당겼다. 진연이 서 있던 자리를 고속버스 한 대가 곧바로 통과해 나갔다.


진연을 끌다시피 해 신발 가게로 가면서 마녀가 말했다.


“반려는 내가 돌아다니던 시절 주웠어. 새하얀 눈밭 한가운데 무릎 꿇은 채, 땅에 박힌 커다란 칼에 갈비뼈가 걸려 있는 백골이었지. 아마 살아있을 때 그 커다란 칼에 가슴팍이 완전히 관통 당해 붙박인 거 아니었을까.”


나비 표본처럼, 이라며 마녀는 킥킥대고 웃었다. 진연은 거의 듣고 있지 않은 듯했지만 마녀는 말하는 걸 중단하지 않았다.


“칼을 빼내고 안식향을 불어넣어 살을 붙여줬어. 심장과 목소리가 없어서 내 걸 나눠줘야 했어. 그런데 방법을 몰랐거든? 그때 그 꼬맹이, ‘사랑하는 딸’을 만난거야.”


‘사랑하는 딸’은 그들 앞에서 계속해 영원한 사랑이니, 진정한 사랑, 상처받지 않는 순수한 사랑 따위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마녀는 단 한 마디도 새겨듣지 않았다. 그녀가 필요로 한 건 오로지 ‘사랑하는 딸’이 가진 기술, 두 사람이 영원히 서로의 심장과 목소리를 교환해 사는 그것이었단다.


‘사랑하는 딸’의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은 별실로 옮겨져 ‘혼인식’을 치렀다. 그 혼인식이 어떠한 것인지 마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도 그것은 끔찍한 기억이었으니까.


“나중에 후회되더라고. 굳이 내 걸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내 것을, 반려는 반려 것을 가져도 되잖아? 심장과 목소리가 없다면, 그걸 훔치면 되지 않겠어?”


마녀가 이야기한 건 거기까지였다. 결국 심장이며 목소리는 어떻게 됐는지 그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때마침 신발 가게 앞에 다다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진연은 심장과 목소리를 훔치려던 마녀의 모험이 어떻게 끝났는지 짐작이 갔다.


“너 발 생각보다 작다?”


사이즈를 묻는 점원에게 진연이 답하는 걸 듣고서 마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또 어찌나 어처구니없어 보이던지, 진연은 쿡 하고 웃음을 터트리려던 걸 겨우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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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은 반응 알기가 힘들어서;;;


그저 괜찮기만 하면 다행일텐데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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