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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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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안개가 더 자욱해졌지만 단 한 곳만큼은 유독 흐려짐 없이 깨끗했다. 마루 한가운데 ‘사랑하는 딸’이 버티고 서서 마녀를 노려보는 그 자리였다.


‘사랑하는 딸’은 손에 커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자루 크기만 ‘사랑하는 딸’ 키만큼 커다란 창은 저 혼자서 바르르 떨었고, 마치 그 진동을 느끼듯 창 가까이로 다가가던 안개들도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마녀가 내세우는 그 비상식적인 능력조차 그 창과 창을 가진 ‘사랑하는 딸’, 그리고 그 발치를 감싸고도는 거대한 삽살개 ‘적막’에게까진 닿지 못하는 듯했다.


“전에도 이랬어.”


마녀 눈에는 오로지 ‘사랑하는 딸’만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적막’이 이따금 으르렁대며 짖고, 창은 ‘사랑하는 딸’의 손에서 떨며 안개를 계속 몰아냈지만 마녀는 두 뺨이 흥분으로 상기되었을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사랑하는 딸’에게만 말을 걸었다.


“그때도 이렇게 많은 귀신들, 괴물들이 있었지만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건 너뿐이야.”


“이미 아시겠죠오? 당신 힘은 제겐 안 통해요오.”


‘사랑하는 딸’이 한 말을 마녀는 비웃음으로 대꾸했다.


“전에 내가 체크메이트를 따낸 건 기억 안나나 보지?”


“어머, 그건 우연이었죠오.”


왜냐면, 하고 ‘사랑하는 딸’은 ‘적막’의 긴 털을 손으로 쓸었다.


“그때도 ‘적막’은 털 끝 하나 안 다치고 멀쩡했잖아요오.”


주인이 하는 말에 동의하듯 개가 멍, 하고 한 번 짖었다. 마녀는 뿌득, 하고 이를 갈았다.


“이번에도 과연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주변에 자욱하던 안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녀 곁에서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는 안개를 보며 진연은 짧게 비명 소리를 내었다. 보기에도 소름끼칠 정도로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주변을 휘감은 채 마녀 곁에서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엉겁결에 곁에 선 아가씨 손을 잡으려 어림짐작해 더듬은 진연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아가씨 손에 언제부턴가 가늘지만 예리한 칼이 들려 있었다.


마녀가 기세등등하게 ‘사랑하는 딸’에게 말했다.


“이번엔 우리도 온 힘을 다할 거거든.”


“얼마든지 해 보시죠오.”


‘사랑하는 딸’이 말을 마치자 으르렁대던 ‘적막’이 먼저 뛰쳐나갔다. 마녀가 조금 물러서고 대신 앞으로 나온 거대한 뱀이 ‘적막’에게 이를 드러냈다. ‘적막’은 재빠르게 몸을 피한 뒤 물러서 뱀을 견제하며 몇 차례 짖었다.


그 틈을 타 ‘사랑하는 딸’은 재빠르게 마녀에게 달려들었다. 마녀가 연기를 옮겨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창에 닿자마자 연기는 원래대로 흩어져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창이 마녀 어깨를 꿰뚫려는 순간 아가씨 칼이 그 창을 쳐내었다. ‘사랑하는 딸’도 아가씨도 서로를 공격한 상대무기를 입에 담았다.


“복숭아나무 가지.”


“장미 가시.”


금속과 금속이 맞닿으며 조그만 스파크를 냈다. 두 사람은 조금 물러났다 다시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사랑하는 딸’이 내지르는 창날을 피하여 돌며 상대와 거리를 좁히는 아가씨 움직임은 마치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칼날 거리가 닿기 전 ‘사랑하는 딸’은 창 자루를 당기며 두 손으로 잡아 공격해오는 상대를 밀어낸 뒤 다시 물러서며 거리를 잡았다. 매번 그렇게 ‘복숭아나무 가지’는 파고드는 아가씨 공격을 쫓아내었고 ‘장미 가시’는 그때마다 더더욱 날카롭게 창 길이 안으로 치고 들며 ‘사랑하는 딸’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싸움의 소용돌이 틈새에서 진연은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며 주저앉았다. 마녀가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자 진연은 움찔거리며 잔뜩 몸을 움츠렸다.


“걱정 말고 나가자.”


마녀가 진연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 거대한 뱀과 아가씨 사이로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조금 못 가 귀신들이 벽처럼 둘러싼 곳에 다다랐지만 마녀가 향을 피워 그들을 쫓아냈다. 두 사람은 그 틈새를 통해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창 틈새를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뒤늦게 눈치 챈 ‘사랑하는 딸’이 창을 크게 휘둘러 아가씨를 쫓아내고 따라가려 했지만 커다란 뱀이 몸을 돌려 그녀를 가로막았다. ‘적막’이 곧바로 달려들어 뱀의 목을 물고 늘어져 길이 트였지만 다시 아가씨가 ‘사랑하는 딸’ 앞에 버티고 서는 바람에 지나가지 못했다. 잔뜩 약이 오른 ‘사랑하는 딸’이 외치는 소리가 진연 귀에 들렸다.


“잊지 마요오, 아가씨! 이게 다 잘난 당신 엄마 때문이라고요오! 그 여자가 우리를 버리고 혼자 초월하지 않았다면 이 혼란은!”


“듣지 마! 헛소리야.”


마녀가 진연 귀를 자기 손으로 막고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쳤다. 마녀 품에 얼굴을 파묻고 함께 뛰면서 진연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뛰어 두 사람은 윤주 집에서 동네 길을 따라 내려가 국도변으로 나왔다. 국도변 야트막한 산 주위로 대여섯 가구가 작은 동네를 이룬 시골 마을은 방금 전 소동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평화로웠다. 윤주가 살았던 집은 그 집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마을 뒷산인 영유산 중턱에 약간 못 미쳐 세워져 있었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주변 집들과 도로, 개천과 일대 수많은 논밭 구획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보다 높이 있는 거라곤 윤주 묘와 판관바위 뿐이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 하천을 따라 국도를 내어서 차로 마을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했다. 마을을 감싼 산 이름을 따서 영유교라고 불리는 그 다리 앞에서 두 사람은 겨우 뜀박질을 멈추고 숨을 돌렸다.


“여긴 안 올 거야. 내가 장난 좀 쳐놨거든. 차분히 숨 좀 돌려둬.”


푹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은 진연에게 마녀가 말했다. 진연은 알았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 마녀가 가쁜 숨을 돌리다 이상했는지 진연 곁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살폈다. 진연은 생각에 잠긴 채 뭔가를 중얼거렸다.


“걔가 그랬어. 엄마 탓이라고. 그게 무슨 뜻일까? 우리를 버렸단 건 또 뭐고?”


“진연아, 괜찮니?”


“가르쳐줘.”


마녀가 손을 진연 어깨에 대려는 순간, 진연이 고개를 들어 마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까 그 꼬마 말이 무슨 뜻이야? 엄마가 우릴 버렸다고? 그것 때문에 세상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정신 차려! 내가 아까 말 했잖아. 다 헛소리라니깐!”


“대체 내가 모르는 게 뭔데!”


진연이 소리 지른데 놀라 마녀는 입을 다물었다. 진연은 화를 내고 있었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엄마 윤주에 대해 모르는 것을 분하게 여겼고 엄마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슬퍼했다. ‘사랑하는 딸’이, ‘모두 윤주 탓’이라고 한 것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는 데 답답해하기도 했다.


“이상해. 말도 안 된다고. 내 엄마잖아. 뱃속에 열 달 동안 있다 나와 다시 십여 년 넘게 같이 살았단 말이야. 누구보다 엄마를 잘 아는 건 바로 나야! 그 계집애도, 너도 아니고!”


“헛소리 병이 옮은 거니?”


그런 진연에게 마녀 반응은 매우 뜻밖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는 진연에게, 마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윤주를 가장 잘 아는 건 본인이야. 아니, 이 세상에서 윤주에 대해 아는 게 그녀 자신뿐일 거야. 그 얘도, 나도 그리고 너도, 윤주에 대해 안다곤 함부로 말 못해.”


“아무 의미 없는 얘긴 집어치워. 내가 지금 그 얘길 하는 거야? 네 그 쓸데없는 얘기 듣자는 거냐고? 아니잖아!”


진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녀는 그런 진연을 보다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윤주 집을 돌아본 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알고 싶어?”


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는 뭔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대다 몸을 일으키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가자. 말로 다할 수 없고, 내가 다 알지도 못하는 거니까 보여줄 수밖에.”


“뭘 보여줄 건데?” “윤주에 대해.” 마녀는 짧게 대답하곤 잠시 생각 끝에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걔 죽음에 대해서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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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면을 살리는 게 너무 어렵네요;; 기분이 바뀌면 다르게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은 시간 올리고 갑니다. 부족한게 많지만 재미있게 보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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