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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밥숟갈 물고 뭐해?”


멍하게 천장을 쳐다보는 진연이 이상해 보였는지 마녀가 물었다. 진연이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어느새 마녀와 아가씨 공기는 절반 정도 비워진 상태였다. 거의 처음 받은 상태 그대로인 제 밥그릇을 보고 진연은 피식 웃었다. 그리 재미있지도 않은 추억에 혼자 너무 오래 빠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냥 옛날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데?”


물어보면서도 마녀는 그리 궁금해 하진 않는 눈치였다. 진연은 문득 마녀가 자신을 처음 만난 그 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몇 숟갈 건성으로 뜨던 진연은 잠시 수저를 내려놓고 마녀를 빤히 바라보다 별 생각 없이 건네는 질문처럼 물었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지?”


“글쎄, 너 어릴 때부터?”


마녀가 한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어져, 진연은 한심하단 듯 그녀를 보았다.


“우리 처음 보고 싸웠던 건 기억나?”


“언제? 싸운 게 한두 번이었어야지.”


그건 분명 마녀 말이 옳았다. 진연은 벌써 수십 번 사소한 이유로 마녀와 말싸움하고 다퉜다. 그때마다 원인은 다 달랐지만 서로 싸움이 고조되다보면 결국엔 매번 비슷한 소리를 하다가 끝났다. 무슨 일이건 꼭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윤주 얘기를 들먹이며 상대를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결국엔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고, 진연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생판 모르던 마녀와 다투고 이제껏 모르던 이상한 것들과 만나게 된 건, 자신이 윤주 딸이기 때문이니까.


진연이 윤주 딸이어서 불편한 건, 현재까진 그 정도뿐이었다.


 


밥을 먹은 후 세 사람은 아가씨가 들고 온 사과와 배를 깎아 나누어 먹었다. 슬슬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작년까진 워낙 열매가 작아 따먹을 생각도 못했던 감나무도, 올해는 꽤 먹음직스런 열매가 달렸다.


“저 감나무 나랑 윤주가 심은 건데.”


마녀는 지나가는 투로 얘기했지만 진연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진연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자 마녀는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봐?”


“엄마랑 네가 심었다고? 저걸?”


“그래.”


“언제 심었는데.”


“너희 어릴 때? 생각해보니까 저거 엄청 안자라네? 어떻게든 이젠 다 자랐으니까 상관없지만.”


어릴 때라면 대충 20여년 이상 되었을 것이다. 진연은 제 나이를 헤아려보다 스물까지 세고 그만 두었다. 마녀 눈가에 진 주름살을 가지고 장난칠 나이는 지난 지가 한참이었다. 덕분에 떠오른 것도 있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 하다만 얘기 있지.”


진연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를 기울였던 마녀는 순간 진연과 같은 것에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연은 모른 척 얘기를 꺼냈다.


“왜 안 지워, 그 주름?” “아, 아냐. 나도 안 지워지니까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는 거야.” “아하, 어쩔 수 없이?”


진연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아가씨를 보자, 마녀도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얘기를 듣지 못했는지 아가씨는 계속 깎던 과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진연이 아가씨를 부르려 하자 마녀가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잘못했어. 안 보이게 감추는 건 할 수 있어.”


“진짜?”


새삼 진연은 마녀가 부러워졌다.


“그럼 왜 안 지우는데?”


“그건, 설명하기 좀 그런데.”


“아가씨한테 물어볼까?”


“야아, 그러지 마.”


마녀가 다시 매달리자 진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호라, 그게 약점이셨구먼. 그동안 괴롭힘 당한 거 철저히 받아 주겠어.


그럼 우선, 하면서 진연이 뭔가 말하려던 건 갑자기 입을 연 아가씨 말에 가로막혔다.


“신랑, 누가 찾아왔어.”


마당은커녕 대문 밖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진연이 무슨 일인지 몰라 마녀를 쳐다보았더니, 그녀는 고개를 들고 공중을 쳐다보았다. 마녀 표정은 알아보기 힘들게 조금 찡그려져 있었다. 대체 하늘에 뭐가 있는지 싶어 진연도 똑같이 고개를 들자,


“안녕하세요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발로 딛고 서서, 성인 몸집만한 털북숭이 개를 쓰다듬으며 세 사람을 내려다보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색 바탕에 금실, 은실 따위로 화려하게 장식된 겉옷이며 털모자, 검은 주름치마 등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옷차림이었다. 색색 구슬이나 유리 종 같은 액세서리가 곳곳에 달려 아이가 조금 움직일 때마다 맑게 울리며 태양빛을 어지러이 반사시켰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아이를 보면서 진연은, 왠지 아이 얼굴이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빛 때문인지 아이 눈이 자꾸만 진연에겐 네 개로 보였다.


마녀나 아가씨는 그 아이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네? 바보 같은 꼬맹이가.”


마녀가 반갑지 않은 사람처럼 그녀를 대하자 여자애는 섭섭하단 표정을 지었다. 진연에겐 그 표정이 어딘지 조금 어색하고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한테 고작 그런 말밖에 못해요오?”


“너 따위 그 때 어둠 속에서 아예 없애 버려야 했어.”


“불가능할 걸요. 왜냐면 나는 모두가 ‘사랑하는 딸’이니까아.”


말을 하면서 여자아이는 연극배우처럼 크고 과장되게 한 손을 펼쳤다가 가슴 위에 가볍게 올리곤 천천히 깊게 허리를 숙였다. 마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꼬리 늘이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아무나 보면 일단 시비부터 거는 성격도 여전하시군요오?”


“아무나라니? 그게 ‘너처럼 재수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라면 인정하겠어.”


“인정하시죠, ‘당신처럼 짜증나는 타입’을 뜻하는 거라고오.”


“실없는 소린 그만하고, 대체 뭐 하러 여길 왔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죠, 라며 ‘사랑하는 딸’이란 여자아이는 왼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마녀와 아가씨, 진연을 가리켰다. 작고 새하얀 손은 무심코 잡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았지만,


“상처입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요.”


유치하고 농담 같은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아이 양편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공간을 꽉꽉 채워 밀고 들어오는 희뿌연 그것들에 진연은 기겁하며 마루 끝까지 도망쳤고, 마녀는 아가씨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서며 반닫이 장위에 올려놓은 향을 집어 들었다.


“언젠가 봤던 아동성애자들이잖아.”


손에 든 향을 가볍게 흔들며 마녀는 웃었다. 저절로 불이 붙어 연기를 피워 올린 향들 탓인지 희뿌연 것들은 마녀 발 앞으로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못했다. 마녀가 향을 그것들 가까이로 가져다 대자,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조금 움찔거렸다.


“이게 다 뭐야!”


마녀 등 뒤로 피한 진연이 물어 왔다. 마녀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 향불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귀신들이야. 모두가 사랑한단 저 정신 나간 꼬마 팬클럽.”


“원래 아는 사이야?”


마녀는 짧게 조금, 이라고 답하고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팔을 휘둘렀다.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마치 손톱이 지나간 자리처럼 금을 새기자, 앞을 가로막은 귀신들이 또 한 번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세 사람 주변엔 향에서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한데도 진연은 조금도 숨을 쉬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가 차오른 만큼 귀신들이 물러서 숨통이 더 트이는 듯했다. 안식향이라고 부르는, 겉보기엔 제사 때 향로에 꽂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것에서 나오는 연기는 전혀 독하지 않아 기침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게 또 있었네요오.”


어느 새 향 연기로 자욱한 그곳에 들어온 ‘사랑하는 딸’이 마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녀는 귀신들을 쫓는 것을 멈추고 역시 ‘사랑하는 딸’을 노려보았다. 먼저 말한 건 ‘사랑하는 딸’ 쪽이었다.


“죄 없는 사람 영혼을 가져다 장난치는 그 못돼 먹은 버릇 말예요오.”


“어머 네 그 사랑 타령도 마찬가지잖니. 뭐가 상처입지 않는 사랑이야? 웃기지도 않아.”


“말조심하세요, 사람 잡아먹는 짐승 같으니.”


“그래, 난 짐승이야. 씹어 먹는 어금니가 있는 짐승, 찢어 먹는 송곳니가 있는 짐승.”


마녀는 진심으로 적대적인 시선을 상대에게 두었다. 결코 화해하지 못할 운명의 적을 노려보며 마녀는 이제까지 빈정대던 말투 대신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너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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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어려운 거 세 가지.


하나, 대략 짜놓은 전개에 집어넣을 내용 생각해내기가 어렵네요. 연재가 늦어지는 데 대한 핑계랄까요;;


둘, 여자분들 얘기할 때 말투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입니다만.


셋, 긴장감, 적재적소에 나올 대사, 박진감, 이런 부분은 노력 부족인지 실력 부족인지...지금 올리면서도 영 마지막 몇 줄이 마음에 들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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