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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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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하면서 마녀는 한 숟갈 듬뿍 밥을 떠서 입안에 우겨 넣었다. 목이 막혀 켁켁대는 그녀에게 아가씨가 물을 가져다주어 겨우 진정을 한다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딴 년 결코 용서 못해. 평생 당한 바보 같은 짓 중에서도 최악이었다고. 처녀 얼굴에 흠집을 남겨?”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인, 끝끝내 저 주름 못 지우고 놔둘걸요?”


여태껏 조용하던 아가씨가 꺼낸 말에, 마녀는 다시 목이 막혔다.


“그렇게 쳐다볼 거 없어, 신랑. 그거 하나 감추는 거 신랑한텐 사실 일도 아니잖어.”


같이 산 게 몇 년인데 그걸 모르려고, 하면서 아가씨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 해묵은 진짜 부부, 알 것 모를 것 다 알고 사는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마녀는 대꾸 못하고 투덜대고 아가씨는 웃으며 입 안에 넣은 것을 천천히 씹었다. 이제 모든 것은 보통 때처럼 평화로웠다. 문득 진연은 수저를 입에 물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괴상한 커플과 스스럼없이 엄마 윤주 얘길 나누게 된 건.


 


기억이라 하면 진연은 사진첩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오래된 형상 아래 짧은 메모를 적은 개개 장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자꾸만 새롭게 추가되고 쌓여만 간다. 때때로 진연은 자신이 원하면 그것을 펼쳐서 언제라도 확인하고 메모를 고쳤다. 이를테면 ‘나도 네 엄마 딸이니까’하는 기분 나쁜 목소리를 감광액처럼 입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옷을 차려 입은 창백한 여자 모습에 ‘마녀, 첫 만남, 지멋대로, 싸가지 없음’같은 단어들을 서너 가지 달아 두는 것이다. 쌓여진 기억들은, 예컨대 우연히 ‘아가씨’를 떠올린다면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푸른 눈 미인 이미지에 ‘처음 보네요, 진연 씨. 만나서 반가워요.’하는 친밀감 차고 넘치는 목소리와 ‘상냥함, 마녀와 동거(믿기지 않아!)’ 따위가 서로 어느 게 먼저랄 것 없이 엎치락뒤치락 줄지어 엮여 쏟아져 나오는 식으로 몇 번이고 재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엄마에 대해서라면…….


뭐라고 달면 좋지?


어린 시절 등에 업혔을 때 느낀 따스한 온기나 눈에 들어간 티끌을 불어내던 부드러운 입김, 중학교 시절 첫 생리 때 알게 모르게 도왔던 자상함 따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함께 즐거웠던 기억, 다퉜던 기억, 토라진 기억 등등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진연은 엄마 윤주에 대해선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진연 사진첩에 담긴 윤주에 대한 기억에 아무런 메모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제는 애당초 그런 게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희미하긴 하지만 대학 입학까지 십 수 년 이상을 함께 살던 사람에 대해 아무 감상도 하지 않았단 게 말이 될 리 없다. 그저 어떤 계기로 판단을 미루었을 뿐.


계기는 윤주가 숨을 거둔 바로 그 날 밤 찾아왔다.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간간히 천둥 소리 들리고, 들고양이 담장 처마 아래서 청승맞게 울어대던 기분 나쁜 날, 그 계기란 것이 진연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죽었단 걸 알려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 하나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될 때까지도 진연은 그렇게 행복한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처음 보는 그것에 분에 넘치는 친절을 내보인 건 지금 생각하면 실은 나사 풀린 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낙천주의에 푹 빠져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일찍 올 수 있었어요.”


윤주 시신 앞에서 펑펑 울고 난 진연이 겨우 마음을 추슬러, 자기가 오기 전까지 빈 집과 시신을 지키던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노릇이었다. 아무리 대학 입학 이후로 7, 8년 가까이 됐지만 그때 눈앞에 있는 여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 후 7,8년간 서울에서 지내느라 엄마와 떨어져 지냈지만, 때때로 전화로, 혹은 집에 내려와 함께 지내면서도 엄마 윤주가 진연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나 인상적이고 특이한 사람이었는데도.


그 사람이든 계기든 어떻게 부르든 큰 상관은 없었다. 머리에 얹은 실크햇, 화려하지 않은 여성 정장에 장갑, 스타킹이며 구두, 심지어 귀에 단 액세서리까지도 온통 검은 색으로만 치장한 그 ‘마녀’에겐 이름은 아무 가치도 없었다. 단 하나만 빼놓고.


“네가 진연이야? 많이 컸네, 그 꼬맹이가.”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친한 척을 해오자 진연은 몹시 당황해했다. 처음 만난 마녀는 그런 진연 얼굴을 보며 즐거워했다.


“아, 넌 잘 모르겠다. 난 늘 너를 봤는데. 윤주 등에 업혀 어리광부릴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엄마 친구 분이세요?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자기 어릴 적 모습을 알 리 없으니까. 진연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아는 듯 마녀는 까르르 웃었다. 상가에서 조심성 없이 웃는 마녀에게 진연은 일찍부터 정나미가 떨어졌다.


“아냐, 그런 건. 하지만 알 수밖에. 나도 윤주 딸인걸.”


“뭐라구요?”


진연이 기가 차단 듯 물었다. 누구 맘대로 남의 엄마 딸이래?


마녀가 하는 말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아니면 왜 윤주가 내게 이 집을 줬겠어.”


엄마가 쓴 유서란 걸 보여주며 마녀가 한 말이 진연은 믿기지 않았다. 유서에 적힌 건 마녀 말 대로였다. 모든 유산은 두 아들딸에게 남긴다는 것. 그러나 이 집만은 그 여자에게 준다는 것. 아득해지는 정신을 바로 잡고 엄마 글씨체를 확인한 후 진연이 한 것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유서 속에서 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집은, 특별히 아끼는 친구이자 딸인 유희에게 남깁니다.’ 오, 그래 유희. 잘 됐네. 무덤에 적을 이름은 있어서. 제사지내줄 사람은 있을까 몰라.


번개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밖에선 들 고양이 한 마리 짧은 처마 밑에서 안쓰럽게 울어댔다. 그 을씨년스런 밤에, 진연과 유희는 서로 머리칼 부여잡고 엎치락뒤치락 싸웠다. 마치 들 고양이처럼.


썩 좋지 못했던 마녀와의 첫날밤으로 인해 진연은 엄마에 대해 자신이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마녀가 자신보다 엄마 윤주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것도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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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씁니다. 조급하게 마음 먹어서 좋을 일 없단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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