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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놓인 밥상 위엔 된장찌개를 비롯해 가지며 고사리, 시금치 등 각종 나물과 전, 산적 따위가 먹음직스레 차려져 놓였다. 매번 연락도 없이 불쑥 진연이 찾아와도 어떻게 알았는지 아가씨는 매번 장을 봐놓고 푸짐한 식사를 대접했다. 예컨대 오늘 같은 경우도 막 진연이 들어와 인사나 하려고 부엌에 들어갔을 때 이미 온갖 반찬들이 한 상 가득 나갈 준비를 마친 후였다.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찬 부엌 한편에서 아가씨는 막 끓기 시작하던 된장찌개 맛을 보다 진연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점심 때 먹으려고 끓이는데, 입맛에 맞는지 한 번 볼래요?”


두말할 것 없이 찌개는 훌륭했다. 언제나 그랬다. 아가씨의 요리 솜씨는 항상 좋았고, 도울 새도 없이 어느 샌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아가씨를 보면 진연은 늘 엄마 윤주를 어쩔 수 없이 비교하곤 했다. 남도 출신이면서도 윤주는 요리 소질은 별로였다.


차려진 밥상 앞에 둘러앉은 뒤 아가씨는 가장 먼저 마녀를 찾았다.


“그이는 어디 있어요?”


진연은 손가락으로 문이 닫힌 방을 가리켰다. 네모난 부지에 기역 자 형태로 지어진 적기와집은 마당에서 마루를 바라봤을 때 왼편에 두 개 방과 부엌, 세면장이 있었다. 맨 가장자리에 놓인 부엌엔 네 개의 문이 있었는데, 각각 부엌 오른편 작은 방과 위편 큰 방, 마당으로 바로 통하는 문 그리고 세면장으로 가는 문이었다. 큰 방과 작은 방은 마루로 통하는 문이 하나씩 더 있었다. 그 중 진연이 가리킨 것은 마녀가 자기 방으로 선언한 작은 방이었다.


“좀 놀려줬더니 삐쳐서 나오질 않네요.”


“어머 그래요?”


잠시, 하고 일어선 아가씨는 사뿐히 걸어 다가가 굳게 닫힌 방문을 똑똑 두드리곤 안에 있을 마녀에게 말을 걸었다.


“신랑, 밥 먹어야지.”


마녀는 아가씨를 반려라고 부르고, 아가씨는 마녀를 신랑이라고 부른다. 서로 부르는 호칭만 가지고도 두 사람 관계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진연은 애써 그 사실에서 눈을 돌렸다. 말을 꺼내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여자 대 여자인걸.


아무런 반응이 없어 아가씨가 재차 불렀더니 안에서 희미하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마녀 목소리란 걸 깨달은 진연은 소름이 쫙 끼쳤다. 주제에 어리광을 부려? 마녀가?


“반려~, 훌쩍, 저 기집애가…….”


어처구니가 없어 진연이 한 마디 하려는 것을 아가씨가 손짓으로 말렸다. 이어서 아가씨가 한 말을 들으면, 그렇다고 전적으로 마녀 편을 들려는 것도 아닌 듯했다.


“네, 네. 알겠으니까 밥부터 먹어. 기껏 끓인 찌개 다 식기 전에.”


아가씨가 여러 차례 달래어 마녀는 밖으로 나왔다. 진연이 예상한 대로랄까, 마녀는 진연이 놀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진연이 어이없단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러냐는 식으로 이상하게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사실 다른 사람인 듯했다.


“아, 정말 신경 쓰이게. 윤주 이 기집애. 살아 있으면 가만 안 뒀을 거야.”


“엄마가 뭘 어쨌다고.”


“그럼 누가 이랬을 거 같아?”


마녀가 자기 눈가를 가리키며 말했을 때 진연은 간신히 그 희미한 잔주름을 알아보았다. 남들이 알지도 못하는 그것을 어째서 마녀가 그토록 심각하게 여기는지 진연은 그때야 깨달았다. 잔주름은 시간이 남긴 흔적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죽기 서너 해 전이었던가? 저녁에 TV를 보면서 과일을 깎아먹고 있었을 거야. 갑자기 걔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잖아. 그래서 물었어. 뭐라도 묻었느냐고. 뜬금없이 그러더라, ‘넌 그대로네. 난 계속 늙어만 가는데.’라고.”


마녀가 얘기하는 엄마 윤주는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명랑쾌활하고 호기심 많고, 또 악의 없이 심지어 스스로 의도하지도 않고서도 주변을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진연은 그런 윤주의 모습이 생소했다. 조금 지나치게 친근하긴 했지만 언제나 윤주는 진연에게 평범한 엄마일 뿐이었다. 반면 마녀나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윤주는 이 세상을 한 단계 초월한, ‘세상의 주인’이라고 불렸던 대단한 존재였다. 윤주가 죽은 뒤로 마녀가 유언을 들먹이며 빼앗다시피 가져간 이 집, 과거 윤주가 진연 남매를 키웠고 두 자녀가 큰 뒤로 줄곧 혼자 살아온 붉은 기와집을 진연이 꾸준히 찾는 건 자신이 모르는 엄마 윤주의 모습에 대해 알기 위해서기도 했다. 엄마에 대해서 완전히 알기 위해서였다.


“너는 뭐랬는데?”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고 했지. 애초에 난 늙지 않게 태어났는걸.”


건성으로 그렇지, 라고 대답했지만 진연은 마녀가 한 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스스로 늙지 않는다는 얘기는 마녀가 말한 다른 얘기들, 이를테면 자신은 원래 다른 세상에 있었다거나 윤주가 억지로 자신을 깨워 이 세계로 끌어들였다는 얘기들만큼이나 믿기 힘들었다. 윤주가 한 공기놀이며 하늘땅놀이 같은 모든 행동이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얘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 윤주에 대해 모두 알려면 거짓말 같은 그 사실들을 전부 믿어야만 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억지로 듣고 머릿속에 그려낸 장면은 마치 꿈에서 보듯 희미한 인상을 주었다.


“듣고 있던 그 애가 글쎄, ‘그럼 재미없잖아’란 거야. 눈가에 잔주름 한둘 정도 있는 게 더 자연스럽고 귀엽다더니.”


“엄마답네.”


장난기 많은 10대 소녀나 생각할 법한 발상에 진연은 쿡쿡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낸 한 마디에 주름살이 생긴 걸 알아챈 마녀가 느꼈을 황당함, 그런 마녀를 보며 미워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을 50대 중반의 소녀. 이런 모습들이 진연에겐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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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골치아프게 써지지 않았으려나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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