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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세연이, 민이 흡혈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어. 제준은 알았지만, 세연은 민이 그렇게 위험한 존재, 즉 흡혈귀인 줄 몰랐거든. 세연은 제준에게 민을 경계하는 얘기를 해준 것 같아. 제준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인 만큼 별 반응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심 조금은 동요하고 있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며칠 지나지 않아, 제준과 있던 민이 발작을 일으켰어. 그러니까, 흡혈귀의 송곳니를 제준을 향해 드러낸 거야. 겨우 충동적인 발작을 억누르고 제준을 떠나보내긴 했지만 이걸로 두 사람의 관계도 위기에 빠지고 말았지.


설상가상으로 시현, 해가 뜬 동안을 영역으로 삼는, 나와 같은 중재자 아틀라스가 민이 숨은 곳을 알아차렸어. 민을 주시하고 있던 그녀는, 민과 그녀가 만들어낸 흡혈귀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인 공격을 펼치고 나섰지. 끈질긴 시현의 추격은, 심지어 그녀의 중재 영역이 아닌 밤 시간까지도 이어졌어. 민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에 빠진 셈이지.


실은 이 모든 게 ‘사랑하는 딸’이 뒤에서 손쓴 결과란 건, 그 때는 아무도 몰랐어. 민의 흡혈 현장으로 세연을 유인하고, 제준과 함께 있는 민에게 옅은 피 냄새를 맡게 했으며, 시현에게 민의 은신처를, 그리고 그녀의 위험성을 넌지시 알려주는 걸로 ‘사랑하는 딸’은 손쉽게 자기 목적을 달성했지. 어때, ‘사랑하는 딸’이 무얼 기대했는지 알 수 있겠어? ‘사랑하는 딸’은 민이 필요했던 거야. 흡혈귀면서, 사백 여 년 가까이 흑마술을 연구해온 강력한 마법사가 된 그녀가 말이야. 하지만 민은 평화로운 삶을 바랐고, 그래서 ‘사랑하는 딸’은 민을 철저히 고립시켜 민이 오로지 ‘사랑하는 딸’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만들고 싶어 했어. 뭐, 한편으론 시현이 밤낮 안 가리고 들쑤시고 다니면서 나와 시현이 대립해, 통제가 닿지 않는 틈새가 생겨나길 바라기도 했을 거야. 그럼 자기 세력이 끼어들 틈새가 많아지니까.


다행인건 누군가, 이 의도를 알아차렸단 거겠지. ‘사랑하는 딸’을 방해하려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어. 유명한 ‘마녀’가 제준을 설득해 민과 화해하도록 했어. 한편으론 세연이, 만물관으로부터 흡혈귀 퇴치법을 배워 민과 제준이 만나는 곳으로 향했어. 또 ‘코뮨’이란, 온건한 마법사 집단이 누군가의 요청으로 ‘사랑하는 딸’을 직접 견제하고 나섰고.


 


“잠깐, 그럼 이야기가 이상해지잖아.” 의문을 표시한 건 선우였다. 윤진은 말을 끊고 그가 하는 말을 주목했다.


“세 개 다른 집단, ‘마녀’, ‘만물관’, ‘코뮨’ 모두 민과 제준, 세연이 만나도록 도운 건 알겠어. 하지만 왠지, 이들 모두가 그 이면에 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녀’나 ‘코뮨’의 경우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세연에게 흡혈귀 퇴치법을 알려주고 두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가게 한 ‘만물관’의 의도는 분명했다. 민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던 세연이라면, 분명 민과 싸울 수밖에 없을 텐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같은 마법사기도 한 나조차 알 수 없어. 변덕쟁이에, 속을 도저히 모르겠다니까. 그들은.” “거짓말쟁이기도 하지.” 윤진의 말에 엘페르가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그 말투에서 뭔가를 느낀 윤진이 아주 잠깐 엘페르를 쏘아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암튼 결과는 다 아는 데로지만,”


 


산 중턱, 지금은 빈 공터에서 민과 제준은 서로를 처음 만났다고 해. 마지막 날, 그들이 만나기로 한 곳도 바로 거기였지.


요즘 들어 나는 매일 거기 들러. 해가 지고, 세상이 낮에서 밤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세상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생각해 보지.


어쨌거나 민과 제준, 세연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자, 관련된 모든 이목이 그 야트막한 산에 집중되었어. ‘사랑하는 딸’은 채 손을 써보기도 전에 ‘코뮨’의 마법사들에게 발이 묶였지. 시현은 민을 쫓아 나왔다가 ‘마녀’에게 방해를 받았어. 세 사람이 만나는 것을 가로막을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 운 나쁘게도, 세연이 산을 오르다 흡혈귀를 마주치지만 않았더라면. 세연을 공격한 흡혈귀는 바로 민이 피를 모으기 위해 만든 자동인형이었어. 안타깝지만 어쩌면 세연이 민과 제준을 만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겠다.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그렇게 여겼어. 생각해봐, 세연이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면, 기껏 어렵게 마련한 자리를 자칫 망칠 수도 있지 않겠어?


예상대로 민과 제준은 아무런 방해 없이 만나 화해할 수 있었어. 모두 잘 되었다고, 이제 한 시름 놓았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운명이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가혹하게 굴었지. 하필이면 거기서, 시연이 나타날 게 뭐람.


산발한 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어, 수풀 속에서 나타난 시연은 울먹임이 섞인 괴성을 민과 제준에게 질러댔어. 흐느낌 같기도 하고, 화를 내는 것처럼도 들리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확히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단지 그녀가 어떤 고생을 하면서 거기까지 왔는지 짐작할 뿐이지. 흡혈귀와 목숨을 걸고 싸워 겨우 물리친 끝에 자기 것인지 흡혈귀 것인지 피를 그렇게 뒤집어썼겠지. 너무 놀라고 두려워서, 반쯤 넋 나간 채 자신이 쓰러트린 그것을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허겁지겁 길도 없는 수풀 속을 헤치고 올라 두 사람을 만나러 온 거야. 새삼 그 집념에 소름끼쳐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녀를 불쌍하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어.


제준도, 민도 그녀의 몰골에 놀라고 안쓰러워하며 가까이 다가갔어. 세연을 달래려고 한 행동이겠지만 말이지, 그녀는 이미 불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씩씩대면서 민을 노려보고 있었거든. 민 역시 자신을 공격한 그것과 마찬가지 존재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이어진 세연의 행동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일어났어. 어디에 숨겨온 건지 손에 든 단도를 겨눈 채, 민의 품을 향해 달려든 거야. 불과 몇 발자국 거리라 피하지도 못했어. 민이 이렇다할 대처를 하지도 못하는 동안 비극은 종지부를 찍었지. 그들의 발치엔 피가 떨어지고, 민도, 세연도 놀란 얼굴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제준을 보았어. 어떤 결과가 나왔을 거 같아? 칼을 맞은 건, 위기의 순간 민과 세연 사이를 가로막은 제준이었어.


‘진정 네가 소중하다 생각하는 이를 지키겠다면 아무리 잔혹한 운명을 짊어지더라도 감수해야 해.’


제준을 설득하면서 ‘마녀’는 이런 말을 했었지. 설마 그녀는, 이런 결말까지도 예측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세 사람은 어떻게 됐어?”


이야기를 마치고도 한참 지나도록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선우가 먼저 윤진에게 물었다. 윤진은 눈을 내리깐 채, 마지막 남은 홍차를 마시곤 답했다.


“민은 분노했고, 제준의 피를 뒤집어쓴 세연은 갑자기 전생 모든 일들을 떠올렸어. 그날 일어난 일을, 그 옛날 민과 뮤리엘, 젊은 수사 사이에서 있었던 일의 데자뷰로 느꼈던 걸까. 그 다음은 뻔하지.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으니, 죽기 직전까지 요란하게 부딪치다 물러났어. 제준은, 손쓸 틈도 없이 즉사했고.”


“그럼 마법사들은?”


“세 사람의 화해를 이루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딸’의 의도가 이뤄진 것도 아냐. 민은 어느 누구의 손도 잡길 거부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렸거든. 내막은 전혀 모른 채, 세연에 대한 분노만을 간직한 채 말이야. 대신 ‘사랑하는 딸’과 코뮨의 갈등이 생겼고, 마녀와 시현이 서로 다투게 되고, 만물관은 끝까지 세 사람을 싸울 동기를 제공해 다른 마법사들로부터 비난받았어. 이런 갈등들이 기존의 갈등들과 뒤섞여, 결국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거지.”


“얘긴 잘 들었어.”


윤진의 말에 채 감상을 느낄 새도 없이 이제껏 입을 다물던 엘페르가 갑자기 나섰다. 윤진을 향해 한껏 조소 띤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납득 안가는 게 있단 말이야. 네 얘기 속에서 너 자신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곁에 딱 붙어서 본 게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속사정들을 너무 자세히 아는 것 같아.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잘못 안 거야.”


“시치미 떼지 말고.”


엘페르는 돌연 입가에서 조소를 지우고 윤진을 노려보았다.


“감추어진 것이 도리어 드러난 것보다 더 무섭다는 거 알아? 사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겉으론 단 한 번 드러나지 않았던 너 아냐?”


뒤이어 찾아온 정적이 선우에겐 더없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엘페르는 윤진을 노려보며,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추궁할 기세고, 여자애도 언제 일어났는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윤진을 바라보았다. 선우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역시 윤진을 바라보는데, 윤진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난, 시현이 내 영역까지 간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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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 이야기를 조금 길게 끊습니다.


슬슬 이 얘기도 끝이 나네요.


아무튼 다음 화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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