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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검은 성모상은 누구 손에도 들어가지 못했어. 미리에라가, 그 성유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빼앗으려 했거든. 다투던 끝에 뮤리엘은 죽고, 미리에라는 저주받았어. '영원히 목말라라. 영원히 굶주려라. 산 것의 피로 목을 축여야만 너는 겨우 안식하리라.'하는 식으로, 죽어가던 뮤리엘이 내린 저주였지.


 이날 또 한 명, 남자 수사 한 명이 죽었는데, 저녁 늦게 필사를 하며 성유물을 홀로 지키다 습격을 받았단 거야. 근데 그 수사, 미리에라란 여자와 서로 사랑 같은 걸 했다나. 그냥 '사랑'을 하기엔 시대도, 신분도 좋지 않았어. 엄격한 종교적 율법이 자질구레한 생활 양식 하나하나까지 규정한 암흑 시대, 성직자와 귀족 영애 출신 여자의 사랑이 용납되긴 어려웠겠지. 때문에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여기면서도 남들 보기엔 사랑이라 부르기도 유치한, 소심한 만남을 갖고 있었어. 때때로 있잖아. 남들 보기엔 사소한데 당사자들 사이에선 어느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것이고 지켜야할 것인 경우가. 그런 마음을 우습게 알고 업수히 여기다 돌이킬 수 없는 원한을 사게 되는 그런 경우가.


 물론 지금 와서 내가 그들 마음을 알 순 없어. 목표를 달성하기 직전 배신당해 죽어간 뮤리엘의 마음도,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수사의 마음도. 그리고, 이후 수천년 간 고독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원한과 슬픔을 쌓아 두었을 미리에라의 마음도.


 미리에라, 나중엔 그냥 민이라고 불리게 되지만, 그 사건 이후 이 여자는 수십 차례 모습과 이름을 바꾸어가며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돼. 피를 마셔야 겨우 잠들고, 성유물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 몸으로 그녀가, 교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직도 의문이야.


 아무튼 사백여 년을 그렇게 살아남은 그녀가 대륙의 극동, 머나먼 이 땅에 도달한 건 불과 몇 년 전인 듯 해.


 


 "아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비슷한 말을 했던가?"


 불현듯 윤진이 묻자, 선우는 당황해 곰곰이 생각했다.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


 "베토벤 얘기지? '운명'교향곡."


 엘페르 말에 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 정말 아, 운명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비교적 잔잔하고 서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요란한 시작에, 이어서 웅장하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듯 진행되는 부분들만큼 머릿속에 강렬히 남진 않지. 어째서? 운명은 비극을 사랑하기 때문에. 난 그렇게 생각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네 운명은 항상 이렇게 문을 두드리지. 불길하고, 다소 신경질적이면서도 비장하게. '쾅 쾅 쾅, 쾅.'"


 


 아무리 생각해도 민과 제준, 세연이 만난 건 그 불길하고 신경질적인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을걸. 사백여년도 전에 자기가 죽인 이들이, 수천 km떨어진 나라에서 부활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걸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저주받은 뒤로 피에 민감해진 민은, 그들을 처음 보자마자 그 가혹한 운명의 장난을 깨달았어. 어쩜 이렇게나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피는 그 옛날 미리에라가 만난 두 사람, 젊은 수사와 뮤리엘의 그것과 똑같았으니까.


 민이 젊은 수사에게 느꼈던 죄책감은 그대로 그 환생인 제준에게도 적용되었지. 뮤리엘의 환생인 세연에겐 예전처럼 경계심을 가졌어.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야. 둘 다 과거 기억 따윈 없는데다, 세연도 뮤리엘처럼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어. 이제 막 기초적인 마술에 맛들인 초보자였거든. 둘의 관계는 마치, 과거 뮤리엘과 민의 관계에서 서로 위치만 뒤바꿔놓은 것과 비슷했을 거야. 어라, 그러고 보면 정말 신기한걸.


 민이 조금씩 제준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친밀해지자, 세연은 질투와 우려가 섞인 눈으로 그들을 주시했어. 세연이 제준을 좋아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단지, 독점하고 싶었던 거야. 민이 나타나기 전, 제준이 자기만 봐주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딸'은 바로 이 불안 불안한 사랑을 이용하기로 한 거야.


 


 “슬슬 끝나가는 거 맞지?”


 엘페르가 무릎을 두드리며 말했다. 무릎 위에 앉혀놓았던 꼬마 애는 어느새 엘페르의 뒷자리, 2인용 작은 소파에 누워 새근거리며 잠에 빠져 있었다.


 “남은 얘기라야 지저분한 뒷사정뿐이야. 굳이 들을 필요 있을까?” “이거 왜 이래?”


 윤진이 도중에 이야기를 끝내려 하자, 엘페르가 저지하고 나섰다.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거든. 일단 얘기를 어떻게 끝내는지 지켜봐야겠어.” “대체 뭘 원하는 거야?” 윤진은 약간 불쾌해하면서도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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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이제 현대로 넘어옵니다.


 이 글 보시는 많은 분들이 어떻게 보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가급적 재미있게, 최소한 지루하지 않게 보셨으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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