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tra_vars1
extra_vars2 1491-1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난 세상에서 사랑 얘기가 가장 질색이야. 사랑이란 말처럼 아무데다 붙여 쓰는 게 어디 있겠어? 화내면서도 사랑 때문이고, 구걸하면서도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지. 애초부터 사랑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그저 수백 수천 가지 다른 감정들을 뭉뚱그린 무엇은 아닐까?


예를 들어볼게. 이천 여 년 전 태어난 한 남자는 모두에게 사랑받길 너무도 간절히 원했기에 남들도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길 바랐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뿐 아니라, 자신을 '첫 번째로'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들까지도 격렬히 증오한 나머지, 그는 열병에 앓는 환자처럼 수많은 환상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내고 남들에게 전파시켰어. 천국이나 지옥, 심판의 날 같은 것들 말이야. 굳이 말 길게 할 필요 없겠지?


요즘엔 그런 열병환자가 뜸하다 싶더니, 얼마 전 모두에게 사랑받는다고 주장하는 얼간이 꼬맹이가 하나 있었지. 어리석게도. 실은 그 사랑이란 게 자기가 줄기차게 사랑을 구걸한 결과인줄 모르고.


어쨌건 자칭 모두가 '사랑하는 딸'은 이천여 년 전 남자가 그랬듯 세상을 향한 끝없는 탐욕을 드러내기에 이르렀지.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 위해 그녀가 세운 계획은 처음 의도보다 너무 빙빙 돌려서 거추장스러운,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알아채지 못할 것이 되어버렸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사랑이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랑을 이용하는 걸. '사랑하는 딸'이 자기가 사랑하는 세계를 손에 얻으려고, 어떤 남녀의 사랑을 비극에 빠트린 이 일에 대해.


 


"이야기가 아무래도 길어질 모양인데?"


엘페르가, 제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윤진은 웃으며, 뭐 어때, 하고 말했다.


"이맘때 밤은 지루하리만치 길잖아."


 


사랑의 화신이었던 남자가 죽은 뒤,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남자의 이름은 명성을 얻었어. 보통 명성이 아니었지. 불멸의 이름. 신의 이름으로 남았으니까. 남자의 말. 제자들이 스승의 이름으로 한 말이 지배하는 세기에 이르러, 운명은 한 토굴 문을 이렇게 두드렸을 거야. 쾅 쾅 쾅.


 


"잠깐, 왜 이야기가 그렇게 멀리까지 돌아가지?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최근 있었던 일에 대해서라고."


"분명 사건이 터진 건 며칠 전이지만."


엘페르의 불평에도 윤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여기 인물들이 등장한 건 사백여년 전부터이거든."


 


교회가 세상을 발아래 두고 다른 사상을 불태우고 목매달던 시대, 한 여자가 우연히 이상한 것에 빠져들었어. 부유한 집안 고귀한 혈통에 교육받은 아가씨가, 언제부턴가 비밀 사교모임에서 흥이나 돋울 때 쓰던 흑마술에 빠져든 거야. 본격적으로 그녀가 암굴에서 은밀히 자신의 마술을 연구하고,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을 때 아까 말한 식으로 문을 두드린 이들이 있었다 이거지.


문을 열어준 그녀가 본 것은 어떤 광경이었을까. 당시만 해도 조금만 행동이 이상하다거나, 운이 나쁘다거나 하는 경우까지 모두 '신의 적'으로 규정할 정도였어. 하물며 흑마법을 연구하는 진짜 마기가 대상이라면, 그 마법사를 잡으러 온 이단 심문관의 위세가 어느 정도겠어?


그녀를 찾아와 방문을 두드린 게, 다름 아닌 그 이단 심문관 무리였던 거야.


'기회를 줄게.'


오만하고 잔인한 이단 심문관은, 같은 여자인 마기를 발아래 꿇린 채 말했어.


'우리 일을 도우면 네가 무슨 짓을 하건 눈감아 주지.'


그리고 어쩌면, 고문과 폭행으로 지친 여자 귀에 이런 말을 속삭여주진 않았을까.


'날 믿어. 나도 마기거든.'


깜짝 놀랄 얘기지. 교회로서도, 강력한 이단을 무릎 꿇리기 위해 그보다 더 강력한 이단과 손잡아야 했단 거.


사실 태생으로 따지면 뮤리엘이란 그 이단 심문관은 초보 마법사 아가씨와 비교 자체가 되지 않지. 성씨도 없는 초라한 집안에 우연히 괴상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갓난아이는, 죽임당할 뻔하다 겨우 구원받아 교회 지저분한 뒤처리 일을 해주고 있는 처지였거든. 그래서였을까. 애당초 그 여자 마기, 미리에라와 뮤리엘은 그리 좋은 사이가 못 되었어. 뮤리엘이 먼저 손을 내민 건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마 자신의 절박한 사정 탓이었다고 생각해. 이단 종파의 교회에 안치된 채, 가엾은 희생양들을 위해 피눈물 흘리는 이적을 발휘한 '검은 성모상'을 억지로라도 빼앗아오는 게 그녀의 임무였는데, 비슷한 시기, 대략 뮤리엘 일행으로부터 2, 3일 늦게 그 이단 교회를 파멸시키는 임무를 받고 출발한 정식 토벌대가 있었거든. 그들 보다 먼저 도착해 목표를 확보할 필요가, 뮤리엘에겐 있었던 거야.


 


"혹시나 해서지만 설마 지금 말한 여자 두 사람이."


"잠자코 들어. 아직 많이 남았어."


 


=====================================================================================================================


이야기는 정말 많이 남았습니다.


끝까지 재미있게 보셨으면 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3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23 254
1032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22 316
1031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21 261
1030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2] 윤주[尹主] 2009.09.20 280
1029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18 270
1028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2] 윤주[尹主] 2009.09.15 310
1027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13 330
1026 [꿈꾸는 마녀]마녀의 눈가에 남은 잔주름 [1] 윤주[尹主] 2009.09.13 349
1025 거상 [1] 메론캔디 2009.09.10 600
1024 [꿈꾸는 마녀]운명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2] 윤주[尹主] 2009.08.28 296
1023 [꿈꾸는 마녀]운명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윤주[尹主] 2009.08.27 326
1022 [꿈꾸는 마녀]운명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윤주[尹主] 2009.08.27 454
» [꿈꾸는 마녀]운명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3] 윤주[尹主] 2009.08.26 299
1020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LiTaNia 2009.08.25 505
1019 [꿈꾸는 마녀]운명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1] 윤주[尹主] 2009.08.25 322
1018 A creative duty 팹시사이다 2009.08.08 481
1017 A creative duty 팹시사이다 2009.08.08 516
1016 A creative duty [2] 팹시사이다 2009.08.05 428
1015 지상 아래 사람들-1.벚꽃에게 물어봐-prologue [1] 다크조커 2009.08.03 627
1014 마(魔)군 팹시사이다 2009.07.15 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