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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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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저녁,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건 결국 영윤과 여은, 그리고 친구 한 명뿐이었다. 한 명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또 다른 한 명은 회사 업무로 남게 된 결과였다.



 "어떻게 할까요? 세 사람만 놀기도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건 영윤의 친구 동형이었다. 영윤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어제도 꽤 늦게까지 술 마셨으니까, 오늘은 그냥 간단히 한두 잔만 하고 헤어지죠. 다른 기회도 또 있을 거고요."
 "그럴까요?"



 아쉬워하면서도 여은 역시 다른 두 사람과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들른 곳은 동형이 잘 아는 실내포차였다. 소주 두 병에 안주를 얼마간 시켜 놓고 세 사람은 회사 일이며 드라마 얘기 같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따금 영윤이 입을 열면, 여은은 관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동형도 곁에서 조금씩 분위기를 띄워주면서 술자리를 나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일행이 세 잔째를 서로 주고받던 때였다. 금요일 저녁이라선지 가게 안은 사람이 꽤 많이 있었고 시끌벅적했다. 영윤은 문득 벽에 붙은 거울에 눈길이 갔다. 가게 반대편 구석을 비추는 거울에서 영윤은 누군가 낯익은 사람을 보았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안경 쓴 여자 모습을 보자 영윤은 잊고 있던 지난날 기억이 떠올랐다. 피, 권총, 시체. 희미한 불빛 아래 비추어진 그것들이 떠오른 순간 영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여자는 혼자였다. 영윤이 그나마 덜 불안해한 이유였다. 여자는 전날과 같이 베이지색 코트에 알 없는 안경 차림이었다. 그것조차 가게의 밝은 불빛 아래서, 수많은 사람 사이에 섞여 있자 골목길에서 본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꽃처럼 희미한 존재감만이 거기 있었다. 해물전을 안주삼아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를 보는 건 그 북적대는 가게 안에서 영윤 혼자뿐이었다.



 "무슨 생각해요?"



 영윤이 대화에 끼지 않자 여은이 이상하게 여겼는지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요. 아, 잠시 자리 비울게요. 화장실 좀 다녀오려고."



 영윤은 대충 둘러대고, 거울을 통해 여자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는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몰래 뒤따랐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여자와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여자가 그를 알아보는 기색은 없었다. 영윤은 최대한 자연스레 보이도록 가게 밖으로 나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조금 후 여자가 나오자, 영윤은 슬쩍 등을 돌리고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인 양 행동했다. 여자는 의심 없이 등을 돌려 밤거리를 따라 걸었다. 영윤은 그녀와 거리가 적당히 멀어지길 조심스레 기다렸다. 어째선 진 몰랐다. 여자가 위험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그녀를 뒤쫓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좀 더 여자에 대해서 알기를 바랐다.



 "웬일이에요? 바람 쐬러 나온 것 같진 않은데."



 갑자기 일어나 나간 영윤을 따라 나온 여은이 그를 발견해 물었다. 그녀를 본 순간 영윤은, 저 정체불명의 여자를 뒤쫓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왜 저 여자를 따라가려는 거지? 평생 이보다 사랑스러울 수 없을 것 같은 여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영윤이 쳐다보자 여은은 싱긋 웃었다. 맨 처음 영윤이 넋을 잃고 보았던 그 미소였다. 평온하고 따스해서, 넉넉하게 의지하고 의지해 줄 수 있을 법한 그런 인상이었다. 이제부터 뒤쫓을 여자, 그 두렵고도 애처로운 존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영윤은 웃었다.



 "미안하지만, 갑자기 할 일이 생겼네요. 여은 씨, 괜찮다면 다음번을 기약해도 될까요?"
 "저야 괜찮지만,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여은이 조금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자 영윤은 손 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개인적인 일이니까요. 다음번엔 꼭 제대로 한 턱 쏠게요."
 "약속이에요. 그럼 월요일 날 뵐게요."



 한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곤 영윤은 몸을 돌려 그 여자가 걸어간 방향으로 향했다. 여은은 그 뒷모습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동형이, 완전히 곯아떨어진 채 테이블 위에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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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 글도 봐야되는데, 사느라 바빠서;;;


일단 예전 글들부터 죽 보면서 올라오는 중입니다.


 


멋모르고 사본 올해 이상문학상 단편집에 평론 실린 거 읽던 중 느낀 건데,


역시 어느 분야에서건 첨단을 사는 사람들은 생각자체가 다른 모양입니다. 전 사람 사는 모습에 집중해 글을 쓰는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분들은 그게 구세대 리얼리즘이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


본래 성격이 좀 고집있는 타입이라서,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라도 의식적으로 들으려고 합니다만 글쎄, 본래 그런건 뭐가 정답이라 할 게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