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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랜덤 버튼

2010.01.25 04:34

드로덴 조회 수:484

extra_vars1 인스턴트 인생막장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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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에 있던 아카펠라.. 일부러 신경을 박박 긁는 걸 모닝콜로 골랐었지. 일찍 자면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면 더 늦게 일어나는게, 인생 자유이용권을 획득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난 특히나 잠이 많아서 더 못 일어나고.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정신이 말똥하다. 이상하네. 평소같았으면 귓구멍 틀어막고 이불 속에서 뻐겼을텐데. 오전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것같아 아침잠을 아까워하지만, 그만큼이나 늦잠은 달콤한 것이다. 난 매일같이 그런 탓에 몸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지만. 물론 농담이다. 몸에서 단내가 나면 세균이 자란다는건데, 어이구야.. 그건 안돼지. 앙대!


 


 "어후우씨! 우흐흐드르으.."


 


 기상용 아침옷을 입을때마다 난 생쇼를한다. 세수를 해서 잠을 깨는건 왠지 마음에 안들어서, 밤에는 밥통에 얹어놓은 뜨끈한 파자마를 입고(그렇게하면 잠이 잘온다. 여름엔 빤스만 입는다), 아침에는 베란다에서 찬바람맞고 얼어붙은 츄리닝을 입음으로써 잠을 깨기 때문이다.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더럽게시리 세수를 안한다는건 아니야. 그러니까..결국 내가 하고싶은 말은, 방금 전 혼자 낸 소리는 무시해달라, 이 말이다.  이런. 한마디하면 될걸 가지고 빙 돌아왔군. 아유 병맛나.


 


 주방에서 뽀시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일이니 동생이 일어나서 밥이라도 차려먹는거겠지 싶은데 나도 밥을 먹어야지 참. 평소에 내가 아침에 잘 일어나질 않는 탓에 녀석은 아침을 혼자 먹고 나간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도 동생에게 미안하다. 알람을 맞춘 이유도 먼저 일어나서 밥 차려주려던건데.. 몹쓸 게으름. 일어나기 힘들다고 결국 5분 10분 늦추다가 기상시간이 어긋나버렸다. 잊어버리지 말자. 알람시간 땡기자고.


 


 "일어났어?"


 


 "그려."


 


 언제 들어도 참 특이한 대답이다. 시골 사람도 아닌데 우리 둘은 말하면서 가끔씩 사투리를 섞는다. 물론 토속적인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지만. 기껏해야 '고건 좀 아닌디..' '뭐라고 캐쌓노?' '가가 뭘 어쨌길래 그런디야?' 정도. 주관적인 기준에서 말한거니까, 이것도 시골냄새난다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일것이다.


 


 "어젠 웬 일로 일찍 자더라."


 


 "그냥 좀 졸려서. 언제 들어온거야?"


 


 "한 일고여덟시..그 정도였나? 일곱시 좀 넘어서였겠지."


 


 "그래..영화는 재밌었어?"


 


 "아유씨 말도 마라. 내 성격에 멜로물은 오글오글해서 못보는데 시발 뻑하면 키스질이야 아주. 밥먹다가도 낼름 수영하다가도 낼름 아오.. 보러오기로 했던 성철이 놈도 소문들었는지 안오드라. 개시끼."


 


 "같이 안가길 잘했네."


 


 "내 말이. 뭐 사내새끼 둘이서 솔로냄새 팍팍 풍기면서 앉아있었으면 그건 그것대로 또 청승맞지만.."


 


 난 이 대화가 마음에 안든다.


 


 


 솜씨없이 끓인 밍밍한 계란탕이 입맛에 맞지 않는지, 동생은 밥을 물에 말아서 훌훌 마셔버리곤 빠르게 자릴 떴다.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을 해야지.. 라면스프를 안넣는건 역시 나한텐 무한도전인가보다. 어디 자투리 재료를 다루는 요리 프로는 없나? 조미료없이 맛있게 좀 해보려고해도 이놈의 TV프로란 것들이 죄다 올리브기름에 뭐에 백화고? 잘 먹지도 않는 고급재료들만 골고루 쳐넣어대니 볼 맛이 안난다. 누구 주머니가 또라에봉 주머니마냥 풍성한것도 아니고..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만 가지고는 좀 힘들다. (여담인데, 백화고가 뭔지 검색해봤더니 제주도 특산 버섯이라드라. 우린 둘다 버섯 안먹는데..)


 


 치울것도 없는 접시들을 대충 부시는데, 문득 중요한걸 까먹은듯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건 흡사 집을 비워놓고 가스불위에 뭘 올려놓은 기분이다. 세숫대야 비웠고, 난로 껐고, 창문도 다 닫았고, 보름이는 사흘 뒤에 찾으러가면 되고..


 


 ..아 맞다. 초생이 밥 안줬지. 썅. 걘 밥 굶으면 찾기도 힘든 구석탱이에 콕 박혀서 골골거리는데. 동네 쪽팔리게 초생아 하면서 찾으러다니는건 작년 칠월로 끝이야 라고 다짐했거늘.. 비린내쩌는 생태를 들고서 초생아 어딨니를 외치는 경험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겨울이라서 냄새로 찾는것도 안통할텐데..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생선 토막을 담는 밥그릇 앞으로 왔더니, 얼레. 이거 보소? 내가 어제 여기다 담아둔건 우유가 아닌데? 물에 퉁퉁 분 사료조각을 보니 요건 시리얼이 따로 없다. 바닥에 흰 띠를 그리는 밥그릇을 보고 난 다시한번 동생을 의심했다.


 


 좋아, 어쨌든 초생이도 아침식사를 했다 이거지. 그럼 정작 초생이는 어디있는데? 밥먹고나면 으레 먹던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녀석이 코빼기도 안보인다. 아 왜이래 이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 지난밤에 있었던 빌어먹을 가택침입범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젠장.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를 내가 어찌 구속하리오. 어디던지 돌아다니고 있겠지.


 


 집에 혼자 있으니 할 일이 별로 없다. TV를 틀었더니 '금발이 너무해', '화산고' 이런거나 하고있고.. 공원에서 턱걸이라도 하던지 해야겠다. 오늘따라 집에 남아있는게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