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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네 얘기를 들려줘

2009.12.01 02:01

윤주[尹主] 조회 수:303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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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만약 그것이 진리인 세상이 있다면, 마녀와 같이 자유로운 이도 일찍이 없었다. 그녀가 누리는 바와 같은 고독을 일찍이 겪어본 이도 없던 것이다.
 부모에게서 잘려나간 자식이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그 순간의 고독에 몸서리치며 울듯, 그녀 역시 이 지독한 분리감에 통곡했었다. 모든 건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그 날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마녀는 그 특별한 일을 어떻게든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때마다 곤란해 했다. 유래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란 어려운 법인데, 마녀가 있기 전까지 그녀가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녀는 종종 그것을 아무것도 없었다고 표현했다.



 “아무것도 없었단 건, 말 그대로 비어 있었단 거야?”



 언젠가 진연이 그날 일에 대해 이렇게 물어왔다. 마녀는 여느 때처럼 막막해했다.



 “그건 아냐. 전부 다 거기 있었어. 끝없이 펼쳐진 구름이며, 지표를 덮은 보드라운 흙더미들. 서로 포개어진 채 마주 닿은 살결들까지. 구별되지 않고서.”
 “그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야.”
 “저 구름이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사람들의 온기, 들이쉬는 숨결 하나하나까지 모두 내 손과 발의 일부인 양 생각된다면? 애당초 나 아닌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데 나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겠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내 말이 그 말이야.”



 마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생각이, 답답한 마음이 일제히 크게 들이쉬었다 허무감에 내뱉어 흩어버렸다.



 “내가 아는 건 그뿐이야. 갑자기 나 자신이 그 모든 것들과 떨어져 나갔다고 느꼈다는 것. 내 손발과 그들의 몸이 구별되어 알려지고, 내 숨소리와 다른 이들의 숨소리 차이를 이해했다는 것. 그 정도 뿐.”
 “그게 엄마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공깃돌 탓이라 이거야?”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녀는 깨달았다. 진연은 결코 자기 생각, 느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란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을 리란 걸. 질문받기 위해 이야기를 꺼낸 건 물론 아니었다.


 


 진연 이외 마녀에게 호기심을 가진 또 한 사람은 ‘조정자’로 알려진 위시현이었다. 진연과 달리 시현은 평범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양 쪽 모두에 걸쳐 있는 몇 안 되는 이였다. 시현이라면 자기를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마녀는 그렇게 여겼다.
 모든 것이 구별되지 않은 채 영원히 안식하는 ‘안식의 하늘’ 얘기는 진연에게 이미 들려준 바 있지만, 시현에게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시현은 잠자코 듣다가 그녀 말을 재확인했다.



 “좋아요. 느꼈던 거죠? 떨어졌다고.”
 “그래, 그래. 그 때 내 발치 아래 사람들 얼굴이 지금도 기억나. 희로애락 없이 그저 편안한 표정들 말이야. 그 순간 그들을 - 너도 이해하겠지? - 엄청 질투했었거든.”
 “이해하다뇨? 제가 뭘요?”
 “알잖아. 더 이상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말이야.”



 시현은 조금 갸우뚱거리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알겠네요. 지금 제가 그런 심정이거든요.”



 퉁명스레 답했다. 어째서 제가 당신 감정까지 이해해야 하나요, 라고 물어오듯 마녀에게 던지는 시현의 눈길은 생기 없이 다만 모니터 화면처럼 차가웠다. 평소 사교성이 없는 성격은 아니지만, 자기 관심사가 아닌 일에 대해서 시현은 자주 사무적이었다. 세상을 유지하는 게 자기 일이어설까. 시현에게 있어 제일 관심사는 사실을 아는 거지 남 얘기를 들어주는 건 결코 아니었다.
 마녀는 속이 적잖이 상했지만 어쨌거나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다시 날 깨운 공깃돌 소리가 들리더라고. 대체 누굴까, 왜 날 깨웠을까 묻고 싶었어. 아, 가능하다면 죽도록 패주었음 좋겠다 싶었고.”
 “가능하다면 거기 덧붙여 여기로 넘어온 과정 좀 자세히 얘기해보실래요?”



 노트북 자판을 타닥타닥 두들기던 시현이 기계적으로 물었다. 마녀는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잠깐만. 이거 취조하는 거야?”
 “사정조사라고 해주세요. 입국심사도 좋네요. 어쨌건 업무상 필요하단 점에선 같지만.”
 “아무튼 일이라 이거지? 어쩜 인간이 그래? 남은 일부러 얘기해 주는 건데!”
 “전 일부러 일하러 온 거고요. 시간 없어요. 며칠째 밤샘중이라고요. 왜, 어떻게 당신이 여기 왔는지 말해주면 전 ‘다른 문제들’ 해결하러 갈 수 있죠.”



 일부러 ‘다른 문제들’에 강조점을 넣어 말하며 시현은 슬쩍 마녀를 보았다. 그 모든 ‘다른 문제들’이 마녀 때문이란 것처럼. 이 말을 할 때쯤 시현은 이미 연이어 두 주간 쌓인 피로에 지극히 애매모호한 마녀 태도에 슬슬 열이 오른 참이었다. 말을 하겠다던 마녀는 정작 중요한 얘기는 슬쩍 넘겨버렸고, 그러면서도 짜증은 도리어 시현 자신에게 부려댔다.



 “아 그래? 됐네요. 난 할 말 없거든. 다른 볼일 있으면 거기나 가보는 게 어때?”



 시현은 몰랐지만 적어도 마녀가 짜증을 부리면서도 ‘할 얘기가 없다’고 밝힌 부분은 사실이었다. 그저 공깃돌 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여기 와 있었을 뿐이니까. 왜, 어떻게 그렇게 됐냐 하는 시현의 질문에 대해선 마녀 본인도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속사정이야 어쨌건 마녀가 돌연히 입을 닫아 버리자 시현은 참았던 화를 폭발시켰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아가씨와 진연이 달라붙어 말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제 총 방아쇠를 당겨버렸을 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들어주는 태도로만  말하면 아페 리제는 그나마 좋은 이야기 상대였다. 사진작가면서 극작가, 그 비슷한 일을 하는 그녀는 마녀처럼 까다로운 상대를 입 열게 만드는 기술이 있었고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쌓아올린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질 아는 흔치 않은 이였다. 문제는 두 사람이 초장거리 전화기로밖엔 얘기할 수 없단 사실이었다.



 “그때 윤주 그 계집앨 처음 봤어. 공깃돌 소리 따라가 도착한 그 자리서 말이야. 눈 딱 마주치자마자 걔가 생긋 웃길래, 할 말이 없어지는 거 있지? 하여간 어릴 대건 커서건 경계심 없는 애였다니까.”
 “후…그건……그렇게, 요.”
 “괜찮아? 난 잘 안 들리는데. 아무튼 말이야. 걔가 먼저 같이 놀자고 했어. 옳다구나 싶었지. 그래서 약속했고. 내가 이기면 네 생명을 내게, 네가 이기면 내 생명을 네게. 이렇게.”
 “아직……살도…안 된, 애한테요?”
 “그래서 하늘땅놀이던가? 그걸 했어.”
 “졌군요? 그래서, 거기에?”
 “그렇대도. 휴우, 그년 죽을 때까지 장난감 취급당하다 이제 와선 걔 딸내미 뒤치다꺼리까지 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근데 여보세요? 내 말 들려? 끊어진 거야? 왜 전화가 이래?”



 액정에 ‘수신권에서 벗어남’이란 글자가 떠 있는 걸 보고서 마녀는 툴툴거렸다. 진지한 대화를 하기엔 두 사람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마녀 얘기를 얼마든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저 정체 모를 도서관장뿐일 것이다.
 산 속 이름 없는 통나무집 도서관을 지키며 책을 읽고 무언가 쓰는 여관장은, 찾아온 마녀를 환대해 자리에 앉혔다. 평소와 달리 데리고 다니던 정령 아가씨도 없이 마녀는 홀로 들어와 그녀 안내를 받았다. 빼곡히 자리 잡은 책장들 한편에 공간을 마련해 티 테이블을 놓은 장소였다. 수백 권 책들에 둘러쌓여 두 사람은 테이블 앞에 서로 마주앉아 한껏 우러난 차향을 맡으며 즐겼다.



 “무슨 일로 왔어?”



 관장이 묻자 마녀는 그냥 잡담이랄까, 하고 중얼거렸다. 관장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녀가 말을 꺼내길 잠자코 기다리는 눈치였다.



 “괜찮아? 자기 하소연이나 하러 찾아왔대도?”



 마녀가 의아해 묻자 관장은 씨익 웃으며,



 “하소연 듣는 게 전공인걸. 보다시피.”



 책장 한 가득 빼곡한 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관장은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애초에 누군가 읽겠지 하고 이런 걸 쓰는 사람 있겠어? 다 자존심 한 가닥쯤 하는 인간들인데. 그러니까 어처구니없는 얘기도, 처음 듣는 얘기도 있는 거 아냐.”
 “그냥 말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잖아. 굳이 책으로 안 쓰고.”



 마녀가 반론하자 관장은 난감한 듯 눈썹 사이를 조금 찡그렸다가 차를 몇 모금 마셨다. 왜 어떤 건 얘기로 남고 어떤 건 글이 되는지. 어째서 어떤 건 얘기조차 되지 않는지. 마녀가 묻는 건 관장도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었다.



 “솔직히 그건 나도 궁금한걸. 그보다 내가 요즘 뭐하는 줄 알아? 흩어져 사라지는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거야. 예컨대, 그렇지, 이제 한 번 네 얘기를 해보렴. 감동받으면, 내가 그걸 글로 써 줄테니.”



 입에 머금었던 찻물을 뿜을 듯 마녀가 바라보자 관장은 깔깔 웃었다.



 “뭘 그리 놀라?”
 “그러게 왜 갑자기 그런 소릴 하느냐고.”
 “아깝잖아. 우리끼리 할 얘기 어디 남지도 않을 텐데, 혹시나 재미있으면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들어주는 게 더 좋지 않겠어?”
 “글쎄, 다들 그렇게 생각할까?”
 “상관있어? 쟤네도 자기 생각대로 썼을 텐데.”



 키득거리며 관장은 웃더니 의자 등받이에 편히 기대앉아 마녀를 보았다. 마녀는 조금 얼굴이 상기되었다. 두 사람이 자리 잡은 거대한 서재 공기 분위기만큼이나 차분하게 여관장은 마녀에게 말했다.



 “자 이제 네 얘길 해보렴. 네 기억과, 그것을 떠올리는 표정과 몸짓, 그에 관한 느낌 전부 내게 보이렴. 그러면 나는 기억하고, 기억한 네 모든 것을 오롯이 종이 위에 남겨줄 테니. 누군가 거기서 즐거이 네 목소리의 떨림과, 사랑스런 심장 박동까지도 알아줄지 모르잖니?”



 관장이 북돋아주자 마녀는 못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관장은 눈을 감고서, 살아온 만큼 침묵해온 수많은 책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이야기라도 끼어들지 않고, 부족한 이야기라고 힐난하지 않는 그 많은 책들이 그녀와 함께 거기서 일제히 마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고요한 겨울밤조차 마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깊어져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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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고 오랜만에 들어와서 오랜만에 올리고 갑니다...


뭔가 몰두할만큼 잘한다거나 하는 게 없는 인간이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전역 직후 뭔가에 만족해본 적이 없네요. 우울증인가;;


암튼 요즘엔 뭘 해야 행복할지 찾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