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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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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가 가장 불행한지 얘기해볼까? 생각해봐. 고통 없이 뭘 얻을 수 있는지. 고통 없이는 태어날 수도, 자랄 수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할 수도, 결혼하지도 자식을 낳을 수도 없잖아.


여기 있기 전 난 내가 살던 세상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 왜 태어나고 왜 자라는지, 어째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 받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 애초부터 그런 게 없었거든. 난 그저 다른 모두와 거기 있었고, 다른 모두도 나와 함께 거기 있었어. 그렇다기보다 내가 세상이었고 세상이 나였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라. 그게 당연한 세상이었어. 윤주가 날 깨우기 전까진.


여기서 윤주가 던지고 놀던 공깃돌 소리를 듣고서 내가 깨었을 때, 난 처음으로 나 이외에 다른 것이 있단 사실을 알았어. 당연하잖아. 평생 눈뜰 일 한 번 없이 잠들어 있던 내가 이 세상에 나 이외 무엇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고.


세상은 정말 넓었어. 끝도 한도 없이 넓은 구릉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누워 포개져 잠을 잤어. 코 고는 소리, 긁적이는 소리조차 없었어. 손가락 하나, 머리칼 한 가닥도 움직이지 않았어. 그 평온한 안식으로 가득 찬 세계에 오로지 나 혼자, 안식에서 깨어 눈뜬 채 서 있었어. 나만이 주위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존재했어. 그 작은 공깃돌 서로 부딪치는 소리에.


내가 어땠을 거 같니? 영원한 안식에서 떨어져 나온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뱃속에 머물던 태아가 여기서 태어나 가장 먼저 받는 게 뭔 줄 아니? 그건 말이지, 볼기짝을 때리는 차갑고 기분 나쁜 의사 손찌검이야. 한 대 얻어맞고서야 아이들은,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났단 사실을 실감하는 거야.


 


“유희 씨는 ‘안식의 하늘’에서 왔대요.”


마녀를 가리켜 시현이 하는 말을 진연은 잠자코 들었다. ‘하늘’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잔뜩 있어요. 모든 하늘엔 주인이 있고 저 같은 아틀라스도 각자 하나씩 있어요. 주인을 비롯해 그 하늘 아래 태어난 모든 것들은 웬만해선 자기 하늘을 벗어나지 못해요. 너무 높잖아요, 하늘은. 낯설면서 친숙한 그 모든 이야기를 진연은 진지하게 귀에 담았다.


“어떤 이유서건 주인이 갑자기 사라진 우리 하늘은 지금 엉망이 되 버렸어요. 밤 시간은 다른 하늘에게 빼앗겨버렸죠, 낮에는 신부가 나타났고요. 전부 ‘그날’ 이후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니까, 잘 아시죠?”


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게 언제부턴가 불문율처럼 되었다. 사실 우스운 일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날’을 바로 곁에서 보고 들었으면서도 명백한 사실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날’에 있던 죄에서 자유로운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어쨌건 당신 얘기가 사실이라면,”


다시 시현은 마녀를 가리켜 말했다.


“윤주 씨는 평생 두 번이나 기적을 이룬 셈이네요. 하늘을 넘어 당신을 데려오고, 이젠 그 자신이 하늘을 초월했으니까.”


“기적은 무슨.”


마녀가 불쾌하단 듯 말했다. 시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중얼거리는 얘기를 진연이 들었다.


“어쩌면 복잡한 일이 생길지도요.”


“어째서?”


“아, 이건 제 일 문제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면 이제 다시 가볼까요. 시현이 등과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서자 다른 사람들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녀가 아가씨를 다시 부축해 들려다 그녀가 눈을 뜬 걸 보고 물었다.


“반려, 좀 괜찮아?”


“어쩐지 바닥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손 잡아줄게.”


고마워, 신랑, 하면서 아가씨는 마녀 손을 잡고서 비틀대며 일어났다. 마녀가 곁에서 조금 부축을 해 주자 아가씨는 몇 걸음을 떼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불안하지만 아가씨 스스로 별 무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전처럼 시현과 진연이 앞장서고 아가씨는 마녀가 천천히 곁에서 따라가면서 일행은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넌 혹시 어디 있는지 몰라? 무명도서관 말이야.”


문득 생각났는지 마녀가 시현에게 물었다.


“무명도서관요? 그야 얘기는 들었지만, 저보다 윤진이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 텐데요.”


“윤진이?”


“다른 아틀라스ATLAS 말이에요. 밤마다 돌아다니는.”


천윤진이란 아틀라스는 해가 저문 후 끼어든 하늘을 맡았다고 했다.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밤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건 전적으로 그 윤진이란 아틀라스가 맡은 모양이었다. 밤 동안에만 나타나는 무명도서관에 대해서라면 분명 윤진이 훨씬 많은 것을 알 가능성이 높았다.


“싫어, 걘 좀 깐깐하잖아.”


윤진이란 이름을 듣고서 마녀는 꺼림칙하단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많이 봐주는 시현과는 달리, 윤진은 엄격하고 매사에 가차 없기로 유명했다. 동족이나 다름없는 밤 인간들이라도 어쩌다 섞여든 낮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위협을 하면 어김없이 처벌했다.


“한마디로, 실력 좋지만 인기 없는 타입이란 거지.”


“그렇지만도 않은 걸요. 요새는 남친이랑 같이 다니는 모양이던데.”


“누가, 걔가?”


남친이란 말에 마녀는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현 또한 믿기지 않는단 듯 어깨를 살짝 들어올렸다.


“요새 윤진이한테 불만 있는 인간 많아요. 남친이 낮 사람이라고 편드는 거냐는 둥, 매일 밤마다 데리고 순찰만 하는데 다른 일 제대로 하긴 하는 거냐는 둥.”


“살벌한 직장이네.”


“걔넨 투표로 뽑았잖아요, 아틀라스를.”


사람들 맘에 안 들면 언제라도 일에서 잘릴 수 있다고 시현은 덧붙였다. 가만히 듣던 마녀가 딴죽을 걸었다.


“근데 넌 왜 종신직이야?”


“투표해도 어차피 당신한텐 선거권이 없거든요?”


혀를 날름 내밀고 쌩 하니 뛰어가는 시현을 멀뚱히 쳐다보면서 마녀는 이를 갈았다. 저 기집애 쓸데없이 힘만 남아돈다느니, 나중에 잡히면 보자 느니 하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떠들긴 했지만 그 기세도 잠시뿐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서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겨우 굽이진 곳을 돌아 숨을 돌리려 잠깐 멈춰선 마녀를, 앞서 가서 기다리던 시현이 놀렸다.


“평소 운동 좀 하지 그러셨어요?”


“시끄러! 장거리는 원래 내 스타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럼 단거리라 생각하고 뛰면 되잖아요.”


저걸, 하면서 마녀가 한 단 위에 발을 올려놓자 시현이 쪼르르 달려 다섯 계단을 올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녀는 이제 말할 힘도 없는지 담벼락에 손을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마침 제 앞까지 올라온 진연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당겨 주고서 시현이 물었다.


“언닌 좀 괜찮아요?”


“응. 고마워.”


유독 진연에게 친절하게 구는 시현을 마녀는 가만히 노려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당장은 입을 떼기도 힘들어했다. 시현이 그걸 보며 싱긋 웃었다.


“인격의 차이란 거 아시죠?”


“너…죽어?”


시현이 꺄르르 웃으며 다시 뛰어올라갔고, 마녀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마녀가 쉬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올라, 이제는 마녀보다 앞서 걷던 아가씨가 그녀를 끌어올려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네 사람이 골목을 따라 산길로 접어드는 동안, 하늘빛은 서서히 붉은 기운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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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A4 30장이 되갑니다.


할 얘기가 점점 떨어져간다는 소리네요.


이거 과연 다 쓰면 얼마나 될지;;


이상한 부분 얘기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