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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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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사라진 후 마녀 일행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진연이 한참 앞서서 걸어가는 걸 시현이 뒤따르고, 맨 뒤에서 마녀가 아가씨를 부축해 느릿느릿 걸었다. 꽤나 경사진 골목길은 비좁고 굽이져서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금세 몸이 지쳤다. 어쩌다 오토바이라도 마주치면 어김없이 골목 양 편 담벼락에 딱 붙어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쩜 저렇게 기운이 좋니? 정말 부럽네.”


그 골목 여기저기를 쉴 새 없이 누비며 일행 곁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마녀가 한 말이었다. 불과 10여분 만에 앞서가던 진연은 다리가 풀려 담벼락 한 쪽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 있었고, 마녀도 땀범벅이 되어 아가씨를 담벼락에 기대어 내려놓곤 그대로 주저앉아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하염없이 내려 보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시현은, 맞은 편 구멍가게서 파는 아이스크림에 눈독들이다 마녀에게 가서 한참 돈을 내놓으라고 실랑이 벌이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저거 하나씩만 입에 물며언.”


“돈 없다니까 그래! 쟤한테 가서 달래봐.”


“달라고 해보란 거예요, 달래보란 거예요? 지금 일부러 그런 거죠? 그죠?”


시현은 끈질기게 마녀에게 매달렸다. 마녀가 한숨을 쉬고는 아가씨 품을 뒤져 지갑을 꺼내 몇 천원인가를 내주었다. 시현이 쪼르르 가게로 달려가 몇 종류 없는 아이스크림을 고르자 마침 고개를 들었던 진연이 그걸 보고 어처구니없단 듯 마녀를 보았다.


“왜?”


“넌 쓰레기야.”


짧게 몇 마디 뱉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 묻었다. 마녀는 지갑을 도로 아가씨 품에 넣어주곤 불만어린 투로 진연에게 말했다.


“좀 너무한 거 아냐? 내가 무슨 못할 짓이라도 했기에 그래?”


“그걸 모르니까 하는 소리 아냐.”


“웃긴다, 너. 왜 그렇게 애가 제멋대로니? 아무 이유도 없지, 말도 없지. 그러면서 혼자 토라지고 시비 걸고.”


“누가 제멋대로래? 제멋대로인 건 너 아냐!”


“하! 함부로 말하지 마. 내가 제멋대로건 아니건 그게 다 누구 탓인데! 애당초 윤주 그 얘가 아니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어.”


“엄마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소리를 꽥 지르자 진연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그걸 보고도 마녀는 말싸움을 계속 붙였다.


“얘 좀 봐? 뭐가 서럽다고 우니? 내가 윤주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싫어? 치, 웃기지 마. 네 엄마인 것만은 아냐. 내 엄마기도 해. 내가 뭐라 부르건 네 상관할 바 아니잖아!”


“자매라면 때로는 좀 양보도 하고 이해도 해주고 해요.”


언제 왔는지 시현이 마녀 앞에 다가와 말했다. 그녀가 내민 비닐봉지를 보고서 마녀는 투덜댔다.


“설레임? 비싼 것도 샀다.”


“애인도 좀 챙겨요. 머리에 대주면 좀 더 나을 거예요.”


여전히 펄펄 열이 끓는 아가씨를 곁눈질하며 시현이 말했다. 마녀는 서툴게 고마워, 하고 말하곤 비닐봉지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꺼냈다. 그 중 하나를 아가씨 머리에 대자, 불편한지 계속 인상을 쓰던 아가씨 표정이 조금 풀렸다.


시현이 다시 비닐봉지 째 들고 진연 옆에 가 앉았다. 자기 입에 하나를 물고, 나머지 하나를 봉지에서 꺼내어 진연에게 내밀며 얘기를 걸었다.


“자기도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괜히 짜증내는 거예요. 알죠? 그러니까 기분 풀고 이거 좀 드세요.”


진연 손에 반 강제로 아이스크림을 쥐어 주고는, 시현은 열심히 제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녹여 빨았다. 소란스럽던 동네가 조금은 조용해졌다. 그제야 시현은 여유를 찾고 조금 구름 낀 새파란 하늘을 올려보았다.


“오늘 날씨 좋네요. 어디 놀러 가면 딱 좋을 텐데.”


시현이 탄성을 지르자 마녀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1년 365일 내내 놀잖아, 넌.”


“대신 일도 1년 365일 매일이거든요?”


“뭘 하는데? 순찰? 감시? 기껏해야 그뿐인 주제에.”


“그거 당신 때문인 거 잘 알죠?”


“내가 뭐.”


“오늘만 봐도 그래요. 당신이 신부랑 싸우는 거 내가 못 보고 안 말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런데 당신을 그냥 없는 척 놔두라고요? 저도 좀 더 고상한 일 좀 하고 싶다고요. 말만 주인 대행이지 사실상 다 큰 애보기나 마찬가지니까.”


“아이고, 그래? 고생한다. 그냥 나한테 신경 끄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


“윤주 씨가 주인일 땐 그랬죠. 지금은 저 아니면 누가 당신 사고치는 거 일일이 따라다니며 봐주겠어요?”


“됐네요. 어차피 말해봐야 나만 힘들지.”


“흥, 웃겨. 자기 아니면 이 동네에서 사고 칠 사람이 누가 있다고.”


한참 입씨름하고서 더 할 말이 없어지자 마녀와 시현은 둘 다 입을 닫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투덜거리던 마녀나 시현 기분도 덕분에 조금은 나아지고, 열에 들뜬 아가씨나 계속 훌쩍이던 진연도 기분이 살짝 풀렸다. 마녀가 먼저 진연에게 말했다.


“윤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걔한테도 물어봐. 그 얘가 네 엄마 비서였으니까.”


“아틀라스ATLAS라고요! 비서가 아니라.”


“하는 일은 똑같잖아.”


시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조목조목 자기가 하는 일을 대면서 비서와 다른 점을 끝없이 나열했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결국 주인인 윤주가 하는 일을 분담하거나 조언하고, 위임받는 것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나열된 예들은 시현에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얘기를 듣고 난 마녀가 끝에 대꾸한 말이 그 증거였다.


“그게 결국 비서 아냐.”


“아악! 아니라니까요, 글쎄!”


“됐어. 진연이 얘기나 들어줘.”


마녀는 손을 내젓곤 고개를 돌려 이 일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현은 기분나빠보였지만 마녀 말대로 진연에게 물었다.


“어쨌거나 궁금한 게 뭐에요”


잠시 만요, 라며 진연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눈물 탓에 화장이 뭉개져 묻어 나왔다.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시현이 조금 손을 대 주자 금방 정돈이 되었다.


“윤주 씨도 가끔 이런 거 부탁한 거 알아요?”


시현이 대뜸 꺼낸 말에 진연이 몰랐어요, 라고 답했다.


“윤주 씨, 이런 건 좀 서툴렀잖아요. 그래서 가끔 화장하다가 저보고 도와 달라 하기도 했어요. 몇 번 하고 나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그전까진 몇 번씩 화장하고 고치고 반복해야 했지만.”


시현이 키득대고 웃자 진연도 엄마 윤주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가끔 윤주는 정말 어이없이 간단한 것에서 서툴렀다. 맛있게 끓인 찌개 속에 야채들이 전부 깍두기처럼 썰어져 있다든지, 공과금 액수는 기억하는데 요일이 떠오르지 않아 번번이 납입 일을 넘기기도 했고 복잡한 지하철 노선을 잘 따라서 원하는 역에 도착하고도 정작 건물에 들어가면 몇 층에 가야할 지를 몰라 엉뚱한 층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진연이 벌써부터 치매 끼냐고 놀리면 윤주는 그런 가보다 하면서 자기도 우스워 같이 키득거렸다.


“엄만 정말 가끔 보면 어린아이 같잖아요. 왠지 전 그게 싫지 않았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무턱대고 공부해라 성화이지도 않았고, 뭔가를 심하게 강요하거나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신기하게 항상 곁에 있었어요. 마치 제가 원하기 전부터 이미 알던 것처럼.”


“그런 게 윤주 씨 방식이었을 지도요. ‘세상의 주인’이 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이 가진 그 엄청난 힘으로 뭔가 해보려고 애썼어요. 원하는 건 거의 무한정, 어떤 것이건 가능했으니까요. 제 생각엔 윤주 씨만큼 원하는 게 없었던 주인이 있었을까 싶어요.”


“원하는 게 없지는 않았어.”


마녀가 갑자기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


“윤주 걔는 항상, 나 하나만 원했어. 세상에 요구한 게 아무것도 없을 진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요구했다고.”


“또 그런 피해망상을.”


“잘 생각해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리를 하고 주름이 생기는지. 어째서 내가 죽은 윤주 딸내미를 돌봐줘야 하는지.”


“난 돌봐주라고 한 적 없어.”


“윤주가 그랬지.”


마녀는 처음으로 진연에게 윤주가 죽을 때 얘기를 꺼냈다.


“나 죽으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라고 걔가 물었을 때 난 당연히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했어. 알아, 그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윤주도 그 말 했어. 그럼 죽기 전에 네가 날 돌려 놔야지, 라고 했더니 씩 웃더라. 한참 있다가 다시 말을 꺼내. 그 때는 네가 대신 우리 애들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라면서, 지나가는 투로. 그게 그 전날이었어. 여느 때처럼 자리를 깔고 불을 끄고서 잠자리에 든 그 후로 윤주는 깨어나지 못했거든.”


“잠들었다고? 그냥?”


“어. 그냥 잠들었을 뿐인데, 이튿날 일어나 보니 그렇게 돼 있더라고.”


“잠깐만요.”


시현이 마녀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 제가 윤주 씨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뭐라 했는지, 기억나요?”


“초월했다, 고 했을걸.”


“맞아요. 그러면 말이 안 맞잖아요. ‘초월’이라면, 당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죠?”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마녀에게 말했다.


“세상에, 그럼 당신은 지금 윤주 씨가 잠든 동안, 자기가 의식하지도 않은 그 때에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빠져나갔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사실이잖아.”


“이건, 이건 인정 못해. 말도 안 돼요.”


시현은 고개를 몇 차례나 가로저었다. 혼란스러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젓고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뭔가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는지 제 머리를 감싸 안으며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진연이 왜 그러는지 묻자 시현은 고개를 홱 들었다.


“왜 그러냐고요? 어째서냐고요? 그렇죠. 진연 씨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모를 수밖에요. 어째서 이 세상이 악몽인지, 이 악몽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빠져나가길 원하는지 말이에요.”


“간단히 얘기하면 말인데,”


마녀가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가 모든 세상 중 가장 불행한 곳이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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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슬슬 두려워집니다...이게 계획보다 너무 많은 걸 다루게 되는건 아닌지;;


일단은 조금 모험을 하더라도 이 제목 아래서 다뤄지는 내용들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제공하려고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너무 부담스러울까 걱정이 되네요. 매 화마다 새로운 얘기를 하게되는 거같아서요.


이 점도 그렇고 다른 점도 그렇고, 아무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런저런 지적 부탁드릴게요.


 


이번 화 조금 길어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대부분 말싸움이 위주라 실제 내용은 많지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그대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