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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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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아래 쓰러져 누운 아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녀는 걱정스러운지 자꾸만 그 쪽을 쳐다보았지만 동시에 시현 눈치를 보면서 제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한편으로 신부는 조금이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역시 시현 때문에 억지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은.”


그 가운데서 시현은 네 사람을 한 번씩 훑어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지목받은 두 명, 신부와 마녀는 조금 움찔거렸다. 어른 네 명이 아이 한 명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건 굉장히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제 입장에서 보면 불법입국자나 마찬가지에요. 물론 전 제가 맡은 이 지역을 딱딱한 잣대 들이밀면서 관리하고 싶진 않아요.”


그러나, 하고 시현은 말을 이었다.


“동시에 전 제 지역이 온갖 범죄자들과 불법이민자들의 천국이란 오명을 쓰길 바라지 않는다고요!”


“그럼 좀 더 일에 신경 쓰지 그래?”


“따지고 보면 당신이 가장 큰 문제란 거 알긴 해요?”


시현이 한 말에 마녀는 금세 다시 조용해졌다. 시현은 그런 마녀를 잠시 쏘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가씨는 정신은 차린 모양이지만 여전히 자리에 누운 채였고, 신부는 그런 아가씨에게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곁눈질했다. 시현은 그들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마녀에게 말했다.


“저기 ‘신부’는 당신 딸이라면서요? 또 저 여자는 당신 애인이고요. 전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주인이 살아 있을 땐 이렇지 않았잖아요. 당신이나 주변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 썩는 일 따위…….”


“당연한 거 아냐?”


시현이 한 말에 마녀는 불쾌해했다. 지난 밤 진연이 보았던 것과 닮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그녀는 이야기했다.


“살아 있는 동안 윤주가 관심 가졌던 건 나뿐이었으니까. ‘세상의 주인’으로써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윤주가 자기 맘대로 다루었던 건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당연하잖아.”


마녀는 다시 신부를 보며 비웃듯 말했다.


“모든 어머니를 미워한다고 했니? 갓 태어난 애송이 주제에? 윤주 얼굴 본 적도 없으면서?”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아 주실래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신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것도, 살아온 것도, 뒤늦게 찾아온 행운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봐야 했던 것도 모두 당신 때문이니까. 애초에 당신만 없었어도 난 이 세상에 없었을 테고, 그러면 그런 괴로운 일들, 슬픈 일들 따위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진연이 물었지만 신부는 대답 대신 진연을 무섭게 쏘아 보았다. 진연은 흠칫 놀랐다.


“신랑을 빼앗아간 너희 인간들을 난 절대 용서하지 않아. 하지만 그보다 더 용서하지 못할 건 바로 당신이야, 어머니.”


말을 마친 신부는 몸을 홱 돌려 걷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신부가 자리를 떠나자 시현이 총을 겨누며 외쳤다.


“멈춰! 가도 좋다고 누가 그래!”


“쏠 테면 쏘시죠. 주인 없는 비서 양.”


시현에게 신부는 비웃음을 흘렸다.


“어머니를 원망하는, 제 사랑스런 자식들이 이곳을 초토화시켜 버리길 바란다면.”


“‘웨딩 마치’를 말하는 거야? 널 따라다니는 그 괴물 무리들?”


마녀가 묻는 말에 신부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까닥 숙여 인사하곤 신부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시현은 끝끝내 총을 쏘지 못했다.


신부가 불과 몇 m 걸어 나갔을 뿐이었지만 마녀가 먼저 잔뜩 힘이 들어간 시현 어깨에 손을 올려 말했다.


“가장 멀리 겨냥해 쏴본 게 몇 m지? 25미터?”


“대신 그 안에만 있으면 확실하다고요.”


총을 든 손을 내리며 시현은 투덜댔다. ‘친절’이라고 불리는 대구경 권총은 아직 어린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게 크고 무거워 보였다.


신부가 떠난 뒤 진연은 겨우 아가씨에게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온 몸에 찰과상을 입은 데다 고열에 신음하는 아가씨를 보고 진연은 마녀를 불렀다.


“세상에, 이거 좀 봐! 몸이 불덩어리야!”


“괜찮아, 그게 정상이니까.”


반면 마녀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 그 태도를 보고 뭔가 눈치를 챈 시현이 말했다.


“당신, 애인한테도 뭔가 걸었어요?”


“그 계집애 수법하고 비슷해. 완전히 똑같이 따라하진 못해도.”


계집애란 말에 진연이 떠올린 건 커다란 삽살개를 탄, 이상한 옷을 입은 어린애였다.


“‘혼인’ 말이야, ‘사랑하는 딸’이 쓰는.”


“그건 네가 말했잖아.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놨다고.”


진연이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자 마녀는 의아해했다. 아가씨를 진연에게서 건네받아 안고서 그녀는 진연이 보인 반응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어쨌거나 대답은 했다.


“원래대로 돌려는 놨지. 그게, 장단점이란 게 있는 법이잖아. 이번처럼 쓸모가 있을까 해서 베껴둔 거야.”


“네가 싫어하는 걸, 네 멋대로 아가씨한테 강요한단 거잖아!”


게다가 이렇게 혹사시키면서. 열에 들떠 신음하는 아가씨를 보다가, 진연은 문득 방금 전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떠올렸다. 세상에, 하고 진연은 입을 벌렸다.


“너 그럼 설마, 아가씨한테 키스한 게.”


“맞아. 그 때 썼어.”


마녀에게 뭐라 하려다 그만두고 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구제불능인 인간을 보듯 마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될 수 있는 한 마녀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걸어 나갔다. 아가씨를 품에 안은 채 마녀는 진연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듯 바라보다 시현에게 물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뭘 신경 쓰는 척해요? 어차피 사람도 아니면서.”


그렇지, 하고 중얼대며 마녀는 아가씨 이마에 제 뺨을 가져다 대었다. 비꼬는 말을 한 건데 정작 마녀는 아무 느낌 없단 듯 반응하자 시현은 진연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시현을 보는 둥 마는 둥 아가씨 이마에 가져댄 제 뺨을 뗄 줄 모른 채 그대로 서서 마녀는 제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댔다. 생각보다 열이 많이 오르네. 걱정하는 거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마녀의 표정은 평소 태연한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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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좋네요.


 이상한 점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