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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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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연이 놀라고, 아가씨는 불안해했다. 그들은 곧 인적도, 차량도 별로 없이 한적한 대낮 거리 어느 모퉁이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한참 바라보던 진연이 말했다.


“잘못 본 건 아니고? 신부가 온 것치곤 너무 조용하잖아.”


신부는 항상 괴물들의 행렬을 몰고 다닌다. 신부는 항상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킨다. 신부가 지나간 자리엔 폐허와, 열병처럼 퍼지는 괴상한 신드롬이 남을 뿐이다. 지하철 무가지 국제 란에서 본 기사를 염두에 두고 진연이 한 말은 전혀 일리 없는 얘기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변두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정체모를 여자가 괴물들을 이끌고 여기저기서 출몰하며 전 세계를 공포에 빠트리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가씨나 마녀도 신부에 대해서 아는 건 그런 가십 기사에서 다루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였다.


단 한 가지 기자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아무렴 제 자식을 못 알아볼까봐?”


‘아이슬란드 신부’로 알려진 전 세계적 유명 인사를 서슴없이 제 딸이라 말하는 마녀 목소리엔 장난기가 듬뿍 묻어났다. 진연과 아가씨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마녀를 뒤따라 달렸다. 인도를 따라 세 블록 가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왼 편으로 꺾자 흔한 동네 음식점 및 상점이 늘어선 골목이 나타났다. 달려온 세 사람으로부터 두 블록 앞에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눈에 띄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 머리에 쓴 면사포.


“신부!”


마녀가 외치는 소리에 그것은 걸음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그들을 보더니 다시 가던 길을 따라 느릿하게 걸었다. 잠깐 걸음을 멈춘 것이 마치 그들을 향한 비웃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단 것처럼.


마녀는 손에 향을 들고 전처럼 가볍게 흔들었다. 피어오른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퍼졌다. 일부가 무게를 얻었는지 서서히 내려와 사뿐히 땅 위를 굴렀다. 마녀는 지면 위를 구르는 그 연기들에게 원했다.


“쫓아가.”


한 마디 말에 땅을 구르던 연기들은 서로 뭉쳐 바닥을 박차고 눈앞에 있는 신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여러 덩이 연기가 마치 개 경주처럼 서로 앞 다투어 다가오는 것을 신부는 전혀 눈치체지 못한 양 오히려 걸음을 끌면서 더 느리게 나아갔다. 마녀보다 조금 쳐져 달리던 진연은 문득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마녀는 신부에게 온 신경을 기울이고서 달렸다. 연기들은 금방이라도 신부를 붙잡아 물고 찢어발길 것처럼 달려들었다. 신부는, 얼굴에 막 떠오른 웃음을 바로 지웠다.


“안녕, 덧없는 것들아.”


신부가 손에 든 부케에서 꽃잎 한 장이 떨어지자 개들은 갑자기 발을 멈추곤 주위를 향해 킁킁대며 아무렇게나 컹컹 짖어댔다. 이상하단 걸 느낀 마녀가 그 자리에 멈춰서 마찬가지로 사방을 살폈다. 진연조차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로 골목엔 위화감이 가득했다. 무심코 올려본 하늘은 마치 편광 필름을 번갈아 끼우는 조명을 비추는 것처럼 온갖 색상으로 바뀌었다. 붉게 타오르던 하늘이 어느 순간 연녹색으로, 다시 노란 빛이 감도는가 싶더니 갑자기 진홍빛이 온 하늘을 가득 채웠다. 진연은 그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감청색이 자주색으로 변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마녀가 갑자기 양 어깨를 붙들고 한참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빨리 도망쳐!”


하늘에서 무언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진연이 그것을 알아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풀대면서도 의외로 빠르게 두 사람과 신부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것들은 각양각색의 꽃잎들이었다.


황홀해하는 진연을 억지로 끌며 마녀는 그 꽃비를 피했다. 마녀가 만든 개들은 그렇지 못했다. 제자리를 맴돌며 킁킁대고 낑낑대며 컹컹거리다 내리는 꽃비를 그대로 맞았다. 꽃잎들은 땅바닥에, 그것들 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미친 듯 춤추며 사방으로 날렸다.


“꺄악!"


깜짝 놀라 진연이 소리를 지르자 마녀가 품에 꼭 안고 등을 돌렸다. 손에 든 향에서 안개가 피어 나와 두 사람 주위를 감쌌다. 개들은 깨갱거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흩날리는 꽃잎은 칼날처럼 닥치는 대로 베어 그것들을 본래 연기로 흩어 버렸다. 심지어 향을 든 마녀 손까지 상처를 입혔다. 살짝 긁혀 손에 낀 장갑이 찢어지자 마녀 입에서도 가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축제는 끝났다.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흩날리던 미친 꽃잎들은 모두 사라지고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진연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마녀 품에 안겨 있었다. 마녀도 그 자리에 서서 진연을 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들은 모두 사라졌다. 신부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섰다.


“다 끝났어요. 어머니.”


“처녀한테 무슨 실례되는 소리니?”


평소처럼 넉살좋게 대꾸하곤 마녀는 눈을 떠서 상대를 노려보았다. 끌어안았던 팔을 풀어주자 진연도 조심스럽게 눈을 떠 주위를 살피곤 마녀에게서 떨어져 섰다. 평범할 뿐인 진연에게 이 모든 상황이 힘에 부쳤다.


“왜 우릴 두고 가지 않았어?”


“그걸 바라고 계신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사실이 그렇겠지만, 하면서 신부는 씩 웃었다. 마녀 꿍꿍이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하는 수 없지. 마녀가 감춘 걸 털어놓기도 전에 신부 목덜미에 예리하게 날선 칼이 와 닿았다. 신부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고 마녀도 기뻐하지 않았다. 아가씨는 무표정하게 신부에게서 조금 떨어져 서서 금방이라도 칼을 휘두를 것처럼 ‘장미 가시’를 바로 잡았다. 마녀는 무미건조하게 아가씨에게 말했다.


“반려, 그건 내 생각하곤 좀 다른데?”


“알아. 이건 내 생각이야.”


“좋은 생각 같진 않네요.”


“목이 떨어지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몰라.”


어때, 하면서 아가씨는 더 가까이 신부 목덜미에 칼날을 대었다. 칼날이 내뿜는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신부는 조금도 움찔거리거나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마녀는 그것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말릴 입장은 아니지만 반려, 조심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신랑은 가만있어.”


“어쩌려고요? 아버지 흉내라도 내시게요? 애인 주제에.”


신부가 비꼬는 게 ‘아버지 흉내’를 내려는 아가씨인지, 자기가 ‘어머니’라고 조소 섞어 부르는 마녀인지 분간하긴 어려웠다. 혹시 둘 다일까? 진연은 아가씨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 변화도 읽지 못했다.


자칭 부부란 마녀는 조금 달랐다.


“아, 반려 화났다.”


“저도 이 상황이 재미있진 않거든요?”


신부가 대꾸한 것을 계기로 아가씨와 그녀 사이에 긴장감이 커졌다. 아가씨는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고 신부는 눈을 감았다. 처리하지 못한 폭탄을 보듯 진연은 겁에 질린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남은 건 누가 먼저 터트릴지 하는 문제일 뿐이었다.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은 몸을 움직였다. 아가씨는 재빨리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찌르듯 내질렀다 끌어당기려 했다. 신부가 든 부케에선 다시 꽃잎이 한 장 바닥에 떨어졌다. 신부가 등을 뒤로 크게 젖히자 ‘장미 가시’는 빈 공간만을 찢고서 되돌아왔다. 아가씨는 동작을 바꿀 틈도 없었다.


“이젠 재미있죠?”


등을 젖힌 채 아가씨를 올려다보며 신부가 말했다. 동시에 신부 주위로부터 다시 방금 전 그들이 보았던 것과 같은 꽃 폭풍이 일어나 아가씨 팔을 삼켰다. 아가씨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장미 가시’를 놓지 않고 손을 빼었다. 양 팔이 너덜너덜해지고 깊은 상처가 여러 개에 계속해 피를 쏟았다. 아가씨는 칼을 놓지 않고서 서둘러, 그러나 신부를 경계하며 마녀와 진연에게로 되돌아왔다. 마녀가 뛰쳐나가 아가씨를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난 어머니란 것들은 모두 싫어요. 제멋대로에 욕심 많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는 대단한 일인 양 떠벌리는 족속들 모두가.”


무수히 많은 꽃잎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신부가 세 사람 앞에서 선언했다. 원한에 가득 찬 두 눈은 마녀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벌벌 떠는 아가씨를 껴안고 뺨을 마주 댄 채 잔뜩 화나서 신부를 노려보던 마녀가 대꾸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안 그럴까봐?”


마녀 말은 신부를 포함해 자신과 아가씨, 진연까지 모두를 가리켰다. 반쯤 정신을 잃은 아가씨나 먼저 말을 뱉은 신부와 마녀는 물론이고 듣고 있던 진연까지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거 보란 듯 마녀는 신부를 보며 웃곤, 품에 안은 아가씨와 입을 맞췄다. 반쯤 장난처럼 굴던 평소와 달리 오랜 시간,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진한 키스를 하면서도 마녀는 두 눈을 뜬 채 신부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마녀가 입을 떼자 아가씨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가씨 두 눈은 무언가에 취한 듯 완전히 풀려 있었다.


마녀가 아가씨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곤 옆에 나란히 섰다. 아가씨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고통에 신음하지도 않았다. 찢어진 옷은 그대로였지만 상처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게다가 여전히 ‘장미 가시’ 또한 예리하게 빛났다.


“그럼 2차전을 시작하자.”


마녀가 하는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아가씨는 제자리에서 쏜살같이 신부를 향해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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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를 소설에 빗대면,


발단, 전개에서 위기로 들어가는 시점에 위치한 느낌이랄까...


암만 생각해도 위험해요, 장래며, 당장 학점이;;


 


물론 소설 쓰는 건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별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