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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꿈꾸는 마녀]마녀의 이름

2010.04.26 02:40

윤주[尹主] 조회 수: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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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이름>


 우리나라 어디서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의 시골 마을. 야트막한 산자락에 안긴, 네모반듯하게 구획 정리되지 않은 논밭이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고, 그보다 깊숙이 산에 안기다 못해 아예 산자락 끝을 조금 타고 오른 10여 채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승용차 한 대 겨우 들어가는 좁은 흙길로 논밭을 양 옆에 끼고 들어가면, 집집마다 성인 키에도 못 미치는 높이 벽돌 담장 안에 슬레이트 지붕과 좁은 마당, 감나무를 품은 모습이 예사인 마을.



 마녀는 그 마을에 살았다. 마을 가장 안쪽 기와집 한 채를 떡 하니 차지하곤, 제 반려란 아가씨와 하루 종일 뒹굴뒹굴 시간을 보냈다. 예스러운 한옥은 여기저기 낡고 바닥이 움푹 패여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대청마루에 앉아서도 보이는 마을 주변의 풍광을 담고, 또 거기 사는 사람들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타서 여전히 정갈하고 멋스러웠다.



 사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는 건 마녀뿐으로, 타고난 것이 부지런했던 아가씨는 매일같이 마녀와 이 집을 드나드는 수많은 젊은 손님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구석구석 청소하고, 빨아놓은 요가 봄 햇살을 받도록 마당에 너는 등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진연은 궁금해 한다. 어째서 저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못된 마녀 시중을 들면서도 함께 살 수 있는지.



 "당연한 거 아냐? 나랑 사는 게 행복해서지."



 어쩌다 마음속으로 품었던 생각이 입에서 튀어나오면, 마녀가 먼저 깐죽대며 아가씨가 말할 기회를 낚아채 버렸다. 그러면 아가씨는 늘 그렇듯 얼굴에 조용히 미소를 띤 채, 마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너랑 있는 게 뭐가 좋니? 곁에서 보면 만날 뒹굴 대는 거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인데."



 약이 오른 진연이 마녀에게 쏘아붙이면, 마녀는 대체 무엇에 대해선지 의기양양한 얼굴로 쯧쯧쯧, 혀를 차는 시늉을 하고는 더할 나위 없이 거만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답하는 것이다.



 "곁에만 있어도 행복하단 거야. 뭘 하고 있건,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거라고. 안 그래, 반려?"



 대답 대신, 마녀의 좋은 반려인 아가씨는 마침 다 깎은 사과 한 조각을 그대로 마녀 입에 넣어 주었다. 꽤 큰 조각을 손에 들지도 않고 우물거리며 먹느라 마녀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과연 반려자, 마녀를 다루는 법을 아는구나. 진연은 새삼 아가씨에게 감탄했다.



 "하긴 그 나이에 아직도 싱글인 넌 모르겠지, 그런 재미."



 무언가를 먹지 않을 때 마녀는 진연을 골탕 먹이기 바쁘다. 아픈 곳을 찔린 진연이 째려보는 걸 마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딴청을 피우며 아가씨와 시시덕거렸다.



 "아, 얘기 나온 김에 너도 아예 여기 들어와 같이 살자. 행복할 거야, 분명."
 "누가 들어와 산대! 여긴 원래 우리 엄마 집이거든?"
 "어머, 그럼 같이 살 생각은 있나보네?"



 진연은 말문이 막혀 그저 어이없단 눈으로 마녀를 쳐다볼 뿐이다. 대체 이 여잔 어쩌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담.


 "내가 뭐가 아쉬워 너랑 같이 사는데?"
 "행복해질 수 있대도?"
 "내가 바보야? 변태야? 식모살이에 구박받으면서 퍽이나 행복하겠다."
 "반려가 바보나 변태로 보여?"



 가끔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오르는 걸 진연은 겨우 참아 넘겼다. 정말 가끔이지만 진연은, 저 아가씨가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화장도 안한 생얼굴이 연예인 뺨치게 예뻐 보일 때, 안방과 부엌을 수시로 드나들며 언제 앉고 일어나는 줄도 모르게 소리 하나 내지 않을 때,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란 마녀를 위해 말 그대로 온 몸 바쳐 헌신할 때.



 평소엔 상냥하고 사람 좋은 아가씨지만, 가끔 칼을 잡으면 얼굴색부터가 전혀 딴 사람처럼 확연히 달라진다. 아가씨가 칼을 잡는 건 대개 두 경우였다. 하나는 자신의 원수를 만났을 때, 다른 하나는 마녀의 적을 만났을 때다.



 아가씨 같은 사람이 원수를 만들고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는 것도 진연에겐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건 바로 마녀가 '최대의 적'이라고 부르던 한 꼬마 애를 아가씨가 상대하는 걸 직접 보았을 때였다.'사랑하는 딸'이란 이상한 이름을 가진 그 여자애는 사람만한 삽살개와 유령을 부려 집을 습격해 거기 있던 마녀와 아가씨, 진연까지 위협했다. 그 와중에도 마녀는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이었는데, 스스로 '최대의 적'이라고 말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전번에 봤을 때 쟤한테 그랬어. 나야말로 네 최대의 적이라고. 내가 상대에게 최대의 적이라면, 상대도 나에게 있어 최대의 적이지 않겠어?"



 그러니까 소위 '최대의 적'이란 게 본인에겐 들리는 만큼 심각한 문제인 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아가씨는 사력을 다해 그 꼬마 애를 밀어붙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뜬 채로, 멀리서 삽살개와 유령을 부리는 '사랑하는 딸'을 아가씨는 평소 가지고 다니는 검 '장미 가시'만으로 수차례나 위기에 몰아넣었다. 어찌나 호되게 당했던지, 물러나던 '사랑하는 딸'이 아가씨와 '장미 가시'를 함께 뭉뚱그려 '검'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아가씨는 단순한 면이 있었다. 싸움에서도, 사랑에서도, 늘 아가씨는 검처럼 줄곧 한 방향만을 향해왔던 것이다.
 어찌됐건,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대도. 난 그런 존재야."
 "웃기셔, 대체 네가 뭔데……."



 실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대꾸했지만, 사실 그건 처음부터 줄곧 진연이 마녀에게 물어왔던 질문이기도 했다. 대체 너는 누구니?



 마녀니, 뭐니 하는 말을 진연은 사실로 믿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처럼 그녀가 해대는 실없는 헛소리라고 여겼다. 그래도 진연이 포기하지 않은 건, 언젠가 그 헛소리가 모두 바닥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면 아무리 마녀라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거나.



 "사망유희잖아. 생, 로, 병, 사, 모든 고통을 잊게, 오로지 행복과 즐거움만을 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야릇한 투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진연에게는, 그 이름을 들은 게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영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그녀는 마녀라고 불리는 게 훨씬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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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만에 글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쓰고 싶어져서, 생각나는 데로 어제, 오늘 적어봤네요.


 이것도 3 ~ 5회 가량으로 나누어 올릴 계획입니다. 사실상 설정이 많이 나오는 글이라 지루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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