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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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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영윤은 자기 집 안에서 눈을 떴다. 잘린 목을 포함해 그의 몸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왜 여기 있어?"



 시간이 흐른 뒤 다미가 영윤을 만난 곳은 어느 빌딩 옥상이었다. 그곳에서 영윤은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이 한때 일하던 회사 사무실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몸은 멀쩡하잖아? 원래대로 돌아간대도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모르는 건 아냐."



 여전히 사무실 한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영윤은 씁쓸함을 담아 중얼거렸다. 다미가 그 시선을 따라 눈을 옮기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불안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책상 앞만 지키고 앉아 시간 가기만 기다리는 여은의 모습.



 "그녀는 내가 죽은 걸로 알 테니까."
 "살아있다는 걸 알면 기뻐하진 않을까, 너도 알잖아. 저 여자도 널 좋아하는 걸."



 다미는 오른 눈으로 찡긋, 윙크하고서 영윤의 눈치를 살폈다. 영윤은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슬퍼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미는 영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여은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단호하게 자기 뜻을 얘기했다.



 "저긴 더 이상 내가 있어선 안 되는 곳이야. 여기도 좋고. 아슬아슬함, 색다름, 충격, 제대로 숨 쉬고 산다는 느낌들."
 "피를 튀기고, 살점이 찢기는 기분까지도?"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다미 말에 영윤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다미는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치켜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기억해둬. 내가 너를 지켜주진 않아. 네가 나를 지켜줘야지. 내가 가진 최고의 마법, 비장의 수로 말이야."



 다미가 영윤의 오른손을 제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영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하지 않고서 그저 그녀가 하는데도 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미는 영윤의 손을 제 입 앞까지 들어 올리더니, 마치 과육을 씹듯 입을 크게 벌려 그의 손을 씹었다. 영윤은 비명 대신 아, 하고 신음을 내었다. 그의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 내렸지만 영윤은 그 핏방울 속에 감돈 짙은 어둠을 두 눈으로 보았다.



 "나를 위해 언제든, 죽어줄 수 있지?"



 영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든 입으로 다미가 말했을 때 영윤은 선뜻 뭐라고 답할 수 없었다. 쭈뼛대는 버릇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며 다미는 시뻘겋게 된 입으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미와 영윤이 서 있는 건물 건너편 사무실에선 평소와 다름없는 업무가 계속되었다. 모두가 바쁘게, 혹은 골머리를 썩이며 무언가를 하는 그 속에서 유달리 넋을 놓고 멍하니 자리만 지킨 여은이 있었다.
 마법사들의 다툼에 잠시 말려들긴 했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거의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다미의 분투나 영윤의 희생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마법사들의 변덕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 모든 잔혹한 시간들을 보낸 후 집에 돌아온 이후로 그녀는 어딘지 얼빠진 듯 보였다. 이따금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자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달리 활기찼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축제가 끝나도 여전히, 그 열기와 흥분을 온전히 잊지 못하여 본래 있던 생기마저 모두 잃어버리는 그런 부류 인간이. 오늘날 여은의 표정은 바로, 그들의 모습 자체라 할 수 있으리라.
 의욕 없이 업무 매뉴얼을 꺼내어 뒤적이던 그녀가 한 순간이나마 생기를 되찾는 사건이 있었다. 새 책 빳빳한 종이에 실수로 손을 베인 그녀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따끔거리고 화끈대어서 그녀는 서랍을 열어 넣어둔 밴드를 찾으러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 때 여은은 문득 보았다. 뒤적이는 것을 그만두고, 여은은 자신이 본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붉은 구슬처럼 상처에 맺힌 자신의 핏방울이 손가락 위를 구르고 있던 것이다.
 데구루루, 구슬이 굴러 떨어져 내릴 듯 위태로워보였다. 처음 그것을 보고서 여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인질로 잡혔을 때, 자신의 목에 갖다 댄 서늘한 칼날의 느낌과 그 때의 긴장감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곧 그녀는, 왠지 그 핏방울이 아깝게 느껴져 자기 입에 가져다 대었다. 혀에 닿기 전 손가락이 바르르 나약하게 떨었다.
 피의 맛은 알싸하고 또 짭짜름했다. 그것을 여은은 달고 감미롭게 받아들였다. 목으로 넘기는 것조차 아쉬워 그녀는 한동안 그 구슬을 입안에 담아 두었다. 맛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눈까지 꼭 감았다. 맛은 금새 침과 뒤섞여 희미해졌다. 그제야 여은은 그것을 삼키고 두 눈을 떴다.
 방금 뜬 그녀의 두 눈 앞에, 자기 책상에 올려둔 거울이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본 여은은 자신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발견했다. 믿기지 않은 마음에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져 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다.
 방금 피와 상처를 사랑하게 된 그녀를 보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건너편에서 넘어다보던 영윤과 다미마저, 그 때는 서로를 보며 이야기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이상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여은도 알았다. 마법사와 같은 예민한 신경으로 여은은 그 사실을 알았고,
 다시 남들 모르게 혼자만 웃었다.
 여전히 그것을 눈치 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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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님 소설에 이어 제 글도 완결짓습니다.


 


 본래 보다 인간 관계를 구축하는데 신경써야 했을 글이 그렇지 못해 부족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다미의 등장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론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또 예정에도 없이 여은이란 캐릭터도 새로 만들었고요;;


 


 [꿈꾸는 마녀의 세계]에서 이제 소개하지 않은 건 '신부' 정도인거 같네요. 가장 스토리 내기가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좀처럼 다른 이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캐릭터고, 그렇지만 배경이 되는 인물관계는 밝혀야 할 것 같고.


 어찌보면 자질구레한 이야기도 감당못하는 제게 [꿈꾸는 마녀]의 복잡한 세계를 다루는 건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지껏 어찌어찌 하나씩 밝혀가는 걸보면 생각하는 만큼 힘겨운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죠.


 아무튼 다음에 올리게 된다면 되도록 '신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허접한 글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땐 더 잘 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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