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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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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틈을 두었다가 마녀는 다시 말을 계속 이었다.



 "여기까지 온 그 용기가 가상하니 두 사람은 살려 줄게."
 "신랑!"



 반려 여자가 다시 불만을 토로했지만 마녀가 쳐다보자 이내 입을 다물고 영윤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안 돼. 그러니까 선택하란 거야. 네가 잘 아는 이 얘와, 잘 알지도 못하는 검은담비 저 애 중에서 누굴 구할지, 누굴 버릴지."
 "나 대신 저 두 사람은?"



 조금 침묵 후 영윤이 묻자 마녀는 안 돼, 하고 잘라 말했다.



 "그건 룰 위반이야. 한 사람을 선택하면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돼. 나 또는 반려에게."



 그러더니 여전히 눈을 감은 다미를 보고는 말했다.



 "이제 슬슬 그쪽도 깨우는 게 어떨까, 반려. 난 좀 더 떠들썩하면 좋겠거든."



 반려 여자가 손을 쓰자 다미는 곧장 눈을 떴다. 어쩐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반려 여자에게 기대어 있긴 했지만 정신만은 또렷하고, 또 이제껏 마녀가 한 얘기를 모두 들었는지 힘없이 마녀에게 중얼대길,



 "당신,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뭘 이런 걸 다."



 원한을 잔뜩 담아 하는 말을 마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받아치곤 좋은 생각이 났단 듯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그래. 이게 더 재밌겠다. 네가 살리고 싶은 애한테 키스하면 어떨까?"



 그 말에 여은은 말이 없었고, 다미는 딱 잘라 영윤에게 말했다.



 "그 입 갖다 대면 죽여 버릴 거야."
 "그럼 내가 대신 해 줄까?"
 "신랑!"



 반려 여자가 마녀 말에 기겁해 외쳤지만 마녀는 들은 척 만 척이었다. 여은을 품에 안고서 뚜벅뚜벅, 천천히 반려 여자와 다미에게로 다가서는 마녀를 보며 반려 여자는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자리를 피하진 못했고, 다미 역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멍청하게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기만 했다. 영윤은 속이 탔지만 그 또한 선뜻 움직이지 못했는데, 마녀의 갑작스런 제안에 누굴 구해야 좋을지 생각하는 것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녀는 다미에게 서서히 입을 맞추었다.



 "어쩌니, 마지막 공주랑 키스하는 게 왕자가 아니라서."



 완전히 힘이 빠진 여은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마녀는 다미와 키스했다. 입을 떼자 다미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쓰러져가고, 영윤은 순간 무슨 생각에선지 그녀를 받아 들러 뛰었다. 거리는 예닐곱 발자국. 쓰러지는 다미를 받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영윤은 금방이라도 다미가 제 품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앞으로 뻗으며 그 방향으로 뛰었다.
 돌연 새하얀 것이 영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용서할 수 없어."



 반려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만큼이나 싸늘한 칼날이 영윤을 덮쳤다. 어느 순간 영윤은 땅바닥에 드러누운 제 몸뚱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받쳐 든 반려 여자가 그의 머리를 내려 보며 말했다.



 "선한 자가, 약속을 지킨 이가 누려야 마땅할 행복인데, 어째서 배신자, 도망자 따위가……. 너 때문에!"



 영윤의 목이 힘겹게 입을 떼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붉은 피가 목을 든 반려 여자의 손으로, 다시 바닥으로 빠져나가면서 그는 서서히 생기를 잃어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목이 잘려 나갔음에도 그는 여전히 정신만은 잃지 않은 채였다. '마법사의 장원' 안에선 그것이 당연한 일인 걸까.



 "반려는 행복하지 않아?"



 마녀가 그런 여자를 보고 물었다. 여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됐잖아. 반려가 행복하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던."
 "그러면, 신랑. 행복해진단 약속만 믿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너무 불쌍하잖아."



 죽은 인간 영웅들, 발키리들, 그리고 반려 여자 자신까지. 새하얀 옷을 입은 반려 여자는 들고 있던 영윤 목을 땅에 떨어뜨려두곤 선 채로 흐느꼈다. 마녀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껴안고 등을 토닥인다.
 품에 안긴 반려 여자가 신랑, 하고 마녀를 불렀다.



 "그 여자가 맘에 들어? 나보다도 더?"



 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언했다.


 "신부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신부 없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걸."



 널브러진 자들과 시신에 둘러싸여 마녀는 반려 여자에게 입을 맞췄다. 키스를 받은 신부는 기뻐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는 눈뜨지 않을 것처럼 숨죽여 고이 잠든 그녀를 보면서 마녀는 웃었다.



 "어쩔 수 없이 애구나, 반려는."



 그리곤 이제야 몸을 가누기 시작해 상체를 일으키려는 다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약속대로 두 명은 살려줄게. 원래 생각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



 다미는 말이 없었고, 여은은 여전히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녀 목에 난 가는 상처를 보던 마녀는 품에서 향을 꺼내어 피웠다. 이내 마녀와 반려는 향 연기에 묻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버려진 공장 안은 다시 정적에 싸였다. 다미는 가까스로 윗몸만을 일으키고 팔로 기어서 영윤의 목을 끌어안았다. 부릅뜬 그의 눈을 마주한 채 다미가 말했다.



 "기분은 좀 어때? 총 맞은 곳은 이제 다 나았니?
 저기, 이제껏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어? 어째서 총을 맞았는데도 다음 날이 되면 깨끗이 나아버리는지. 설마 그것도 모른 거야? 그렇게까지 무신경한 건 아니지?
 그래,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그네들이 아니더라도, 나와 함께 있으면 언젠가 너도 크게 상처 입을 거란 걸. 그럴 만도 하지. 나는 느와르 천사의 검은담비, 죽음을 모시는 어둠(noir)이니까."



 그늘진 구석, 군데군데 진 그림자로부터 검은 물이 여러 줄기 스멀스멀 배어나와 다미와 영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진주보다 깊고 황홀한 심연 속 어둠이 역류해 올라온 것처럼 빛 한 점 품지 않고 순수하게 검은 물은 뱀처럼 느릿하게 기어 영윤의 몸통과 목으로 천천히 빨려들었다.



 "이그드라실, 세계를 온통 감싸고도는 세상의 어둠에는 이제 거부감이 들지 않겠지. 그동안 네가 몸으로 받아낸 숱한 내 총탄들 말이야."



 본래 자신의 피처럼, 살처럼 온몸을 통해 스며든 검은 물줄기는 다미 말처럼 아무런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흘려 죽어가던 영윤은 이제 더욱더 생기를 차려가고 있었다. 놀란 영윤이 입을 뻐끔거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미는 그런 영윤의 이마에 자신의 왼손을 대고 무언가를 중얼댔다.



 "미미르, 이그드라실 샘물에 감춰진 지식의 보고, 현자의 머리. 이젠 보이니? 네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리의 마법, 내 '형식' 말이야."



 순간 영윤은 아, 하고 탄성을 내었다. 그리고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놀랐다. 그보다 감탄스러운 건 그의 눈앞에 드러난 형형색색의 기운과 문자, 수식들이었다.



 "이건 정말, 끔찍이도 어둡고 짙은 검정."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색을 보고 영윤이 이같이 내뱉은 것을 듣고서 다미는 서글프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래, 그게 내 색깔, 나의 느와르야."



 다미가 손에 든 영윤의 목을 조심스레 들고 그의 몸통에 올바르게 맞추어 대자, 그의 목과 몸통 사이 잘린 단면으로부터 이그드라실 시커먼 검은 물이 배어나왔다. 촉촉한 물기들은 서로 섞이고 뒤엉켜 상대를 끌어당기더니 접착제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목에 난 보기 흉한 상처도 서서히 사라져가고, 영윤의 얼굴에도 보다 혈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그의 표정도 훨씬 편안해져갔다.



 "환영해, 악마가 사는 마을에 어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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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종일 체해서 뒹굴다가 이제야 좀 정신차립니다.


 대체 뭘 먹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별거 아닌 걸로 한참을 앓았네요;


 


 그건 그렇고 다음 회가 마지막입니다. 꽤 오래 올렸다 했는데 겨우 15회 채우네요. 장편은 너무 어려워요. 수십 회씩 되는 걸 전부 통제하는 것도 어렵고...대개 써서 올리는 글들이 이 정도 분량인것 같네요.


 다음 회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저녁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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