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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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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소리 없이 가고 어느새 창으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줄곧 영윤 곁에 나란히 누워 지키던 다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영윤은 깊이 잠들어 눈을 뜨지 않았다. 다미는 일어선 채, 어느새 다 나은 영윤의 팔을 내려다보았고 다시 시선을 찬찬히 옮겨가며 잠든 그의 모습을 훑었다.


 


"얘, 그거 아니? 나, 어제 잘난 듯 떠들어댔지만 사실 그런 얘길 할 입장도 아니었을지 몰라. 지키려고 태어났다는 주제에, 이제껏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제대로 보호해본 적 없어. 발키리일 때도, 담비였을 때도. 난 결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이런 약속도, 어쩌면 해선 안 되는 걸지 모르지만."


 


어제 입은 그대로인 옷차림으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검은 권총 한 자루를 장전해 든 채 다미는 현관문을 소리죽여 열었다. 틈새로 불어오는 찬 공기에 영윤이 조금 들썩였지만 잠을 깨진 않을 모양인지 몸만 조금 돌려 벽을 마주본 채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뒤돌아 누운 그 등을 바라보며 다미는 나직이 말했다.


 


"다녀올게. 이번엔 지킬 수 있도록."


 


다미는 문을 닫고 골목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서, 어젯밤 다투던 마녀의 반려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행복해 보이네?"


"아직은 아니야."


 


다미는 내뱉듯 말하곤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대문을 열고 나와 그녀는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행복해지겠어."


"난 그 꼴 절대 못 봐."


 


나도 알아, 다미는 퉁명스레 답하곤 곧장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자는 웃으며 검을 빼들고 뒤로 물러서며, 주위로 자신의 '장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원이 영윤의 집을 조금 벗어나 자리를 잡은 이후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전날 밤과는 달리 여자는 단검을 빼들지 않고 오로지 '장미 가시' 하나만을 휘둘러댔다. 다미로서는 훨씬 상대하기 쉬웠지만, 그녀는 오히려 경계를 더욱 늦추지 않았다. 그녀가, 다미가 상대하는 첫 마법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숨겨둔 패가 뭐지?"


 


장미 가시를 가로막은 다미가 묻자 여자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묻지 말고 어디 한 번 막아보지 그래?"


 


다미를 밀어낸 여자는 다시 '장미 가시'를 눕혀 찌르듯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다미는 몸을 슬쩍 피한 뒤 여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보통 총알이 아니라 다미가 힘닿는 한 얼마든 쏘아댈 수 있는 마력 탄이었지만 특별한 효과가 실려 있진 않았다. 여자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애써 피하려들지 않고 그것을 칼을 휘둘러 쳐냈다.


도시의 좁은 골목길이었지만 어느 누구에게 더 유리하다거나 불리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미는 날렵하게 담장 위와 가로등, 도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피하고 공격을 해댔다. 여자는 보다 움직임이 적었지만 이따금 틈을 노려 예리하게 치고 들었다. 영윤이 끼어 있던 전날보단 둘 다 몸놀림이 가볍고 편해 보였다.


수차례 맞붙으며 관객 없는 격투에 열중하던 두 사람이었다. 서로의 공격을 견제하고 거기에 몰두하느라 두 사람 모두 그들 가까이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마녀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을 때 다미는 물론이고 상대를 해주던 여자 역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녕, 여전히 친해 보이네. 조금 질투 나는데, 반려?"


 


다미가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마녀는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두 손을 붙들린 다미는 어떻게든 몸을 빼보려 애썼지만 마녀는 손목을 꼭 쥐어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신랑, 이게 무슨 짓이야?"


 


마녀의 반려 여자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따지듯 마녀에게 물었다. 마녀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그게, 두 사람만 싸우는 걸 보니까 그렇게 재미도 없어 보이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한 사람 더 끼우자, 어때?"


"한 사람 더?"


 


마녀가 말하는 게 영윤이란 걸 알고서 다미는 더욱 몸부림쳤다. 마녀는 붙든 손목을 힘을 주어 뒤로 비틀어 꺾었다. 다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를 뻔한 걸 애써 참았다.


 


"아가씬 선택 여지가 없는데. 반려도 가만있어. 이제부턴 내 맘대로 할 테야."


 


마녀 말에 여자는 이를 갈면서도 장미 가시를 집어넣었다.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다미도 어디선가 풍겨온 향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모두 서로 싸움붙이는 거야. 그게 진짜 재밌는 거거든."


 


정신을 잃는 와중에 다미는 마지막으로 마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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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용한 하루였습니다.


남은 주말, 다른 분들도 잘 쉬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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