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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윤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앞에 펼쳐졌던 몇몇 장면으로만 그 섬뜩했던 때를 기억할 뿐이다. '장미 가시'는 슬쩍 들렸다가 싸늘한 빛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탕, 하는 총소리가 한 발 늦게 들렸고 목 언저리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영윤은 눈을 감았다 떴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다. 서서히 긴장을 풀자 참았던 숨이 일시에 몰려 나왔다. 그제야 영윤은 깨달았다.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그리고 비로소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미와 여자 외에 희뿌연 것이 둘, 그 앞에 있었다. 원반처럼 생긴 하나는 여자와 다미 사이에서 달리는 수레바퀴처럼 빙그르 돌며 총알을 잡아둔 채였고, 커다란 개처럼 생긴 다른 하나는 '장미 가시'를 덥석 물고서 놓지 않았다. 영윤의 목에서 불과 몇 cm 남겨두고 멈춰선 칼날이 바르르 떨었다. 여자는 조금 놀란 듯 표정을 짓고선 그것을 내려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인물이 그녀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반려,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 혹시 바람이라도 피워?"
 "신랑, 대체 어느 새……."
 "방금 왔어. 상대가 누구야? 이 남자애? 그럼 좀 실망인데? 저 여잔가? 아니면 설마, 둘 다?"



 여자를 반려라 부르는 그, 커다란 차양을 한 검은 모자 아래서 장난스럽게 말 걸고 웃는 인물이 한 손을 튕기자 희뿌연 것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원반 같은 것은 총알을 삼킨 채, 개와 같은 것은 아지랑이와 같이 흩어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새로운 마법사가 나타난 것을 깨달은 영윤은 다시 긴장했다.



 "어머,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난 자유주의자거든. 사랑이건, 연예건. 다 같은 소린가?"



 반가워, 라며 검은 모자를 쓴 인물이 손을 내밀었다. 끼고 있는 장갑도, 입고 있는 옷도 온통 검정 색이었다. 영윤이 손을 잡지 않자 그 인물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아, 신경 쓰지 마. 항상 끼고 있다 보니 맨손으로 착각한단 말이야."



 그 수상쩍은 인물이 내민 손을 잡기 전 영윤은 먼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누구냐니?"



 너무도 당연하단 듯 여자는 답했다.



 "나, 마녀거든?"
 "마녀요?"
 "그래, 마녀라고. 넌 그런 것도 모르고 반려한테 작업건 거야?"
 "누가 작업을 걸었다고……."
 "당연히 너, 하고."



 너, 하며 자신을 가리키는 그녀의 손가락이 영윤은 무척이나 얄밉게 보였다. 그 손가락이 자리를 옮겨 여전히 담 위에 선 다미를 가리켰을 때, 그녀를 본 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누구야. 담비잖아?"
 "우리 서로 꽤나 잘 아는 사이죠? 이름뿐이지만."



 어째선지 다미도 마녀란 여자를 곱게 보진 않았다. 반려라는, 방금 전까지 칼을 휘두르던 여자 역시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마녀가 나타난 이후론 입도 벙긋하지 않아서 실제로 즐거운 듯 떠들어대는 건 마녀 혼자뿐이었다.
 어찌됐건, 하고 마녀는 다시 떠들어댔다.



 "꽤나 시끌벅적했나봐? 반려가 장원까지 펼치고, 이렇게 여기저기 긁히고."



 반려란 여자 뺨에 난 상처를 힐끗 보던 마녀는 말을 도중에 끊고 그 상처를 혀로 할짝 핥았다. 여자는 살짝 떨었고 영윤은 슬쩍 고개를 돌려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그만 하자. 나랑 반려, 지금부터 야식 먹을 참이었거든."
 "그게 이유가 될 것 같아!"



 다미가 총을 겨누자 마녀 품에 안긴 여자도 칼자루를 꽉 쥐었다. 마녀는 그저 웃으며 다미를 보고 말했다.



 "언제 죽든 상관없는 주제에 굳이 오늘 아니면 안 될 게 뭐야?"
 '뭐?"
 "넌 이제 죽건 다음에 죽건 관계없겠지. 얜 어떡할래? 죽는 것은커녕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광경조차 생소할 꼬맹이 말이야. 얘도 그냥 죽일까?"
 "안될 게 뭐니?"



 다미가 정색하고 대답하는 말을 듣고 영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소에도 총을 겨누고 위협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난생 처음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해본다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설마 정말 그러리라고 하면서 안이하게 여겼다. 마녀가, 그녀의 반려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끝내 몰랐으리라.
 마법사는 항상 진심이었다는 걸.



 "내가 허락 못 해.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마녀는 그렇게 말하곤 돌연 껴안은 여자에게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듯 표정을 짓던 여자는 점차 온 몸에서 힘을 풀고 마녀에게 온전히 기댔다. 두 눈까지 완전히 감은 여자는 마치 잠든 것처럼 고요했고 시체처럼 창백했다.



 "다음에 보자. 단, 그땐 정말 재미있는 데서 다 같이 보는 거야."



 희뿌연 연기가 두 사람을 서서히 감쌌다. 다미가 그것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연기가 채 온전히 가리기도 전에 그녀는 권총을 마녀를 향해 겨누고 쏘았다. 그럼에도 연기가 모두 가라앉았을 때 자리에는 떨어진 핏자국조차 없었다.
 어느새 반려란 여자의 장원은 사라졌는지 왠지 모르게 답답했던 공기가 훨씬 상쾌해졌다. 영윤은 자리에서 일어서 보려다 다시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총이 관통한 허벅다리가 몹시 아렸다. 그런 그에게 다미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손 줘."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줘."



 갑자기 영윤이 그렇게 말하자 다미는 어처구니없단 듯 그를 보았다.



 "웃기지 마. 이렇게 당해 놓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래. 영문도 모르고 당했어. 이렇게 다리에 총도 맞았고.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아도 될 것 같지 않아?"
 "모르겠니? 나한테서 신경 끄라고! 단 하루 마법사와 마주쳤는데 그렇게 당했잖아. 다음번이 있다면 정말이지, 목숨 내놔야 될지 모른다니까!"
 "너야말로 몰라!"



 평소답지 않게 영윤은 소리를 질렀다. 다미는 움찔거리곤 그를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목숨은 아깝지 않았어. 그때도 말해지만, 알고 있었다고. 너랑 있으면 분명, 목숨 여럿 있어도 모자랄 거란 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검은 총구가 영윤의 이마를 찔렀다. 양 눈썹 사이를 꾹꾹 눌러대는 검은 총 때문에 영윤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방아쇠에 손을 걸쳐놓은 채 다미는 말했다.



 "다 잊어버린다고 약속해.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어차피 네가 나나 다른 마법사와 관계되면 언젠가는 죽게 될 거야."
 "친절하기도 하셔. 잘 알지도 모르는 마법사 아무개에게 죽느니 네게 죽는 걸 내가 더 기뻐할 것 같아?"
 "천만에. 어차피 죽을 건데 기왕이면 날 기쁘게 하고 죽어줬으면 해."



 화난 얼굴로 영윤은 다미를 노려보았다. 다미는 무표정하게 선 채 그에게 들이민 총 방아쇠를 만지작거렸다. 방아쇠에 올린 검지를 자꾸만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그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영윤은 그런 다미를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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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올라왔습니다.


 허술한 글인데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격려도 되고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덕분에 마지막까지 잘 끌고나갈수 있는것 같네요.


 아직 많이 남은 글입니다만 미리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네요.


 한 번 튕겼다 다시 올리는 글인데 뭘 잘못했는지 보기 좀 불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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