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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기에 있었다. 영윤이 누운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노래는 느릿한 박자에 무난하고 단순하게 음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영윤은 금세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밥."



 항상 여자는 콧노래를 끌까지 잇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기 전 영윤은 잠에서 깨고, 아무리 자는 척을 해도 여자는 금세 그가 일어난 걸 눈치 채 버렸다. 영윤은 누운 채 두 눈만 뜨고서 여자를 보았다.



 "먼저 물어보는 말에 대답부터 해줘. 그러면 밥을 줄께."
 "대답은 이걸로 하면 충분해?"



 새까만 권총 총구가 영윤의 왼쪽 어깨에 닿았다. 싸늘한 금속이 살에 닿는 느낌에 영윤은 몸서리쳤다.



 "좋을 대로 해봐. 대신 밥은 없으니까."
 "그럼 나도 줄 때까지 쏠 테니까."



 이쪽, 다음에 오른쪽, 그 다음에 허벅지. 여자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총구의 예상 진로를 물 흐르듯 읊어댔다. 처음엔 그런 여자가 소름끼쳤지만 얼마간 같이 지내다보니 영윤도 금세 여자 행동에 익숙해졌다.



 "내가 다치면 밥은 누가 차려 줄 건데?"



 다시 반문하려던 여자, 다미는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총을 거두고 영윤을 보았다. 뭔가 기대하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그녀는 허락했다.



 "좋아, 대신 딱 한 가지만 들어주겠어."
 "그러면, 대체 넌 누구지?"



 다미는 몸을 일으켜 원룸 방 한가운데로 갔다. 창가에 붙은 침대를 향해 빙글 돌아 선 다음, 반쯤 몸을 일으킨 영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미야. 느와르 천사의 검은담비. 그리고"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소곤대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사라진 신들의 발키리, 라고.
 영윤은 다시 묻고 싶었다. 느와르 천사는 뭐고 검은담비는 뭔지. 또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무엇이었는지. 영윤이 입을 살짝 여는 순간 다미는 순식간에 그 앞에 다가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영윤의 입 앞에 세웠다. 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두어 발자국쯤 되는 거리를 그녀는 깔끔하게 생략해 버렸다.



 "질문은 한 가지만이라고 했지?"



 그리고, 하면서 다미는 영윤에게 보이지 않았던 다른 손을 살짝 움직였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영윤은 오른쪽 옆구리를 붙잡고 자리에 쓰러져 누웠다. 다미 손에는 어김없이 칠흑처럼 짙은 검정 권총이 들렸다.



 "괘씸해서 한 방 먹이는 거야. 이런 장난 계속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받아줄게. 그때마다 총알도 한 발씩 박아 넣어주겠지만."



 어서 일어나, 하고 다미는 영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총을 맞은 옆구리 통증 탓에 영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슬쩍 곁눈질로 보았을 때 그의 몸은 겉보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치면 내 밥도 못 챙겨줄 거 아냐. 한동안 쓰라리긴 하겠지만 치료는 했어.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 아침이나 내주란 말이야."



 영윤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 말대로 지독하게 아프긴 했지만 몸은 멀쩡했다. 아침부터 기분 잡쳤잖아. 행여나 다미가 들을까 영윤은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며 잠자코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텅 비다시피 한 냉장고 안에는 서너 가지 밑반찬과 계란 두 알뿐이었다.



 "오늘 아침은 뭐야?"



 뒤에서 다미가 묻는 말에 자연스레 대답이 흘러나왔다.



 "계란 프라이."


 


 "영윤 씨 이거 멍든 거예요?"



 점심 식사를 함께 하러 나온 여은이 영윤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오른쪽 광대뼈 부근이 시큰거린다 했더니 거울을 보자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여자한테 맞았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고,



 "아 어제 택시에서 내리다 문에 부딪쳤어요."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괜찮아요, 꽤나 아프겠는데. 신경을 써 주는 여은을 별 거 아니라면서 안심시켜준 후 두 사람은 회사 근처 밥집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 주문을 한 뒤 영윤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은 씨 혹시 마법 같은 거 관심 있어요?"
 "예, 물론이죠. 저뿐 아니라 여자들은 다들 조금씩은 관심 있을 텐데요?"



 그런가요, 영윤은 컵에 물을 따라 여은에게 건넸다. 여은은 고맙다며 컵을 받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갑자기 그건 왜요?"
 "아뇨, 뭐 친구 녀석이 관련된 일을 해서요. 그, 거래소에서."
 "신기하네요. 보통 남자들은 그쪽으론 잘 안 가는데."



 동조해주면서 영윤은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친구도 분명 비슷한 말을 했었다. '웬만한 여자들은 마법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다'고. 딸은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는 그 어머니에게서 전해 받은 마법을 여자들은 평생을 간직하면서 다시 자기 딸에게 유산처럼 물려준단다.



 "무엇보다 남자들이 마법에 관심을 갖는 일이 드무니까요. 저도 남동생이 있는데, 게임이나 축구 같은 데 빠져서 이런 건 신경도 안 써요. 아빠도 잘 모르고요. 감추려고 감추는 게 아니라, 관심을 안 보이니까 굳이 있다고 말해주지도 않는다고 할까요."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 마법이란 거."
 "말로 하기 곤란해요. TV를 켜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것처럼 되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평소에는 쓸 이유도 별로 없죠."
 "왜죠?"
 "굳이 쓰지 않아도 다 있는걸요. 전화나 인터넷, 자동차처럼."
 "더 대단한 것도 할 수 있지 않아요? 이를테면, 주위 사람이나 차량을 모두 없앤다거나."



 다미와 마주했던 날 그녀의 '장원'에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윤이 말했다. 어째선지 여은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설마요. 마법은 그런 거 아녜요. 더 평범하고, 어쩌면 정말 피식 하고 웃어버릴 정도로 사소한 거라니까요."
 "예를 들면요?"
 "이를테면,"



 잠시 고민하던 여은은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그 사이에 끼워둔 볼펜을 집어 들었다. 잘 보세요. 여은은 볼펜을 오른손에 들고 그것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패턴으로 오른쪽으로 몇 차례, 왼쪽으로 또 몇 차례, 다시 오른쪽으로 몇 차롄가 돌리곤 영윤에게 슬쩍 윙크를 보냈다. 영윤은 행여나 얼굴이 빨개졌을까봐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여은의 마법이 그 때 힘을 발휘했다.



 "손님 여러분. 오늘 제가 좋은 일이 있어서, 괜찮다면 여러분 몫까지 계산해도 되겠습니까."



 살집 좋은 중년 남성 한 명이 갑자기 이렇게 외치며 지갑을 열자 식당 안은 환호와 박수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영윤은 깜짝 놀라 여은을 보고 물었다. 이거 여은 씨가 한 거죠?



 "전 그냥 살짝 등만 밀어준 거 뿐이에요. 작은 행운을 얻을 수 있게요."



 여은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도 영윤은 그녀에게 마법에 대해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죠?"
 "작은 행운을 부르는 마법이요. 항상 되지는 않지만, 어쩌다 예감이 좋을 때 가끔 써요. 60점 맞을 시험을 80점 맞는 경우도 있고, 운 좋게 출퇴근길 덜 밀리는 차량에 올라타기도 하고. 뭐 그 정도예요."



 그것도 대단하긴 하지만, 영윤이 생각하는 만큼 굉장한 것은 아니었다. 다미가 간혹 쓰는 마법은 운을 조금 틔워주는 수준 그 이상이었으니까.



 "아까 얘기하신 거,"



 주위 차나 사람을 없앤다는 거 말예요, 하면서 여은이 말문을 열었다.



 "이를테면 '마법사의 성'같은 마법이 있대요. 그건 진짜 마법사들, 지금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마법을 연구하고 수련하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거죠. 저도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영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은에게 알아낼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가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 다미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머릿속엔 이미 한 사람 물어볼 사람을 정해놓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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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회정도 이런 식으로 짤막한 세계관 설명이 될 것입니다.


대략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마법이 존재하지만 영향력이 매우 약한 현대 사회가 배경이고요,


 마법은 남성보다 여성들에 의해서 이어지고 사용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성별간 성향이라던가 생활 환경 따위 차이로 인해서고요,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일정치도 않고요.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강력한 마법을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들에 관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만.


 


 솜씨가 없어서 얘기를 잘 이끌고나가진 못하지만서도, 재미있게 봐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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