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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tra_vars1 성주신과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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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녀는 밖으로 나왔다. 그동안 여선은 집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서 그 애가 입을 옷가지를 조금 사왔다. 직장 다니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어린애 옷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24시간 상시 문을 여는 마트가 고마운 건 이럴 때 뿐이다.



 공교롭게도, 여선이 집에 돌아올 즈음이 마침 소녀가 씻기를 마치고 샤워 실에서 나오던 때였다. 젖은 우산은 현관에 간신히 들어가게 펼쳐두고, 혹시나 비에 젖을 세라 품에 안고 가져왔던 옷가지는 봉지 채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젖지 않게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옷가지라고는 해야 겨우 당장 입을 속옷 정도. 웬만한 성인 옷만큼이나 비싼 옷을 선뜻, 그것도 그날 처음 보는 애를 위해 사기는 아무래도 부담되었던 탓이다.



 "별 일 없으면 내일까진 마를 거야, 네 옷."



 기껏 마음의 짐을 덜어본다고 하는 소리가 그거였다. 여선 스스로 생각에도 구차스런 변명이었다. 소녀는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딱히 여선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것 같진 않았지만, 구태여 그걸 긁어 부스럼 만들진 않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여선에게 있어 그런 반응은 그래도 고마웠다.



 "머리 말려줄게. 이쪽으로 와."



 보답으로, 여선은 화장대에 넣어둔 헤어드라이어기를 꺼냈다. 아이는 얌전히 그녀 앞에 앉아 잠자코 여선에게 제 머리를 맡겨 두었다. 젖은 그녀 머리칼을 말리고, 빗질을 하면서 여선은 문득 어릴 적 일을 떠올렸다. 아직 학교를 다니던 시절, 여선은 자기 동생 머리도 이런 식으로 말리고 빚어 주곤 했었다. 소녀의 머리를 빚어주는 지금도 그 때처럼,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고 몸에 긴장이 조금 풀려 나른해졌다. 흡사 지금은 각자 갈 길을 따라간 그녀 자신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때처럼 마음이 편했다. 어느새 여선은 창 밖에서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며 창가에 드리우는, 그 보기 흉한 얼룩무늬 그림자까지 잊고 있었다.



 "어째선지 기운이 맑아졌네?"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소녀가 여선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조금 모로 돌리고, 곁눈으로 여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마치 여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굴었다.



 "이제 좀 마음이 진정된 모양이네. 아까 전에는 나도 불안했단 말이야. 울상이었다가, 억지로 웃고, 다시 화내는가 싶더니 무리해서 참고. 보는 사람이 다 아슬아슬하던데? 언제 터질까 싶어서."
 "그래, 네 맘대로 말하렴. 어차피 포기했으니까. 너한테 좋은 말 듣는 건."
 "거봐, 이제야 솔직해진 거. 사실 불편했던 거, 잘 알아. 너만 그랬던 거 아니니까. 처음엔 다 겪는 일인걸."



 애늙은이 같은 소리만 하네, 라고 여선은 중얼거렸다.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 말은 꼭 산전수전 다 겪으며 늙은 노친네처럼 해댄다. 소녀가 과연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궁금했지만, 여선은 다음 기회에 천천히 묻기로 했다.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어린애들 고집이 어른보다 세단 건 그녀도 잘 알았다.



 다만 가볍게 한 번 떠볼 필요는 있었다.



 "너,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할 생각 없어? 네가 성주신이라느니, 그런 거짓말 말고."
 "더 할 말은 없어. 그거 사실인걸. 내가 이 집 성주신이란 거."



 성주신 꼬마는 여전히 시치미를 뗐다. 어차피 시간은 새벽 세 시다. 지금 와서 돌려보내긴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경찰서에 맡겨 버리긴 애가 너무 불쌍하지 않는가. 할 수 없이 여선은 하룻밤만 그녀를 맡아 보기로 했다. 하룻밤 남의 집에서 자고 나면 이애도 분명 생각이 바뀔 거라고, 진짜 자기 부모나 집 얘기를 해줄 거라고 여선은 믿었다.



 자살 기도가 허망하게 끝났던 그 날 이후 여선은 좀처럼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잠들었다가도 자그마한 소리에 쉽게 깨고, 혼자 몸을 뒤척이다 무엇엔가 놀라 벌떡 일어나기가 부지기수였다. 처음 보는 그 애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잔 바로 그 날 밤에야, 여선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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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천천히 진행합니다.


 부족한 상상력가지고 진행하다보니 어색한 부분이 있을지도...양해해 주세요;; 그러면서 왜 등장인물들이 여자냐면...아기자기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