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천사 날개는 당신을 먹고 자란다

2010.06.03 02:19

윤주[尹主] 조회 수:295 추천:1

extra_vars1 성주신과 수호천사 
extra_vars2
extra_vars3 1491-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방 안에 들어온 여자애, 자칭 성주신이란 소녀는 의외로 얌전했다. 좀 전까지 현관문이 부서져라 두들기던 기세는 방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녀의 외모나 인상도 그녀가 얌전한 성격처럼 보이는 데 한 몫 했다. 검은 머리칼은 일부러 기른 듯 허리춤까지 내려와 흘렀지만 구불거리거나 꼬인 데 없이 한 올 한 올 모두 곧았다. 약간 치켜 올라간 눈초리 탓에 다소 드세 보이는 인상임에도 금세, 아이 얼굴을 덮은 음울한 기색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소녀는 보기와 달리 차분하고 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해 보였다.



 여선은 그 애가 있는 게 불편했다. 초등학생이나 될 법한 애 하나 때문에 겁먹었던 사실이 부끄러웠고, 문고리를 붙든 채 그 애에게 제발 돌아가 주라며 애걸했던 기억 탓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 집인 양 편히 앉은 여자애 앞에서 여선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뜻 곁에서 보면 도리어 성주 꼬마애가 집주인이고 여선이 손님인 것처럼.



 "그래, 일단 뭐라도 좀 먹을래? 과자 어때? 뭐 좋아하는 거 있니?"



 성주 꼬마 애는 여선이 준 수건으로 비에 젖은 몸을 닦고 말렸다. 여선은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겸 먼저 친한 척 말을 걸었다. 찬장에 과자 몇 가지가 있는 게 가장 먼저 기억났다. 처음 만나는 어색함은 먹을 걸로 해소하는 게 제일 아닐까?



 쟁반 위에 보기 좋게 과자를 놓고, 냉장고에 있던 망고 주스를 컵에 따라 애 앞에 가져다 놓아 보았다. 성주 꼬마 애는 컵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고, 뒤이어 과자를 만져 보고 손가락으로 부서질 때까지 짓누르고 문질렀다. 여선은 대체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잠자코 놔두고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소녀가 결론내리기까지 시간이 어차피 그리 길진 않았지만.


 "난 곡주 아니면 입에도 안 대는데."
 "곡주? 술?"



 여선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꼬마는 여선이 무엇 때문에 이상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바라는 장난감을 말해놓고 그것을 주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녀는 여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선이 줄 생각을 갖기는커녕 자기 말을 채 이해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바로 눈을 감고 외면해버렸지만.



 "미안하지만 술은 안 돼. 미성년자잖아."



 여선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단정을 지었다.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냉장고 안에 넣어둔 맥주 캔을 가져다주어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했었단 사실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애한테 휘둘리다니. 여선은 이 소녀에게 좀 더 단호하게 대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차라면 줄 수 있어. 몸도 식어서 추울 텐데, 좀 마실래?"
 "차를 마시면 정신이 깨버리는 걸."


 여선의 제안을 소녀는 단번에 거절했다.



 "이런 세상사는 덴 전혀 도움 안 되잖아."



 이 애, 귀염성 없이 어른 흉내를 내잖아. 여선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아직까진 봐줄 만 했다. 애들이야 다 그러니까. 가끔 짜증날 정도로 심하게 어리광부리고, 어울리지 않게 다 큰 척 부모 흉내 내려 하고. 장난 심한 조카들에 비하면 성주신 꼬마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여선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솔직히 여선은 이 소녀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과자건 차건 내버려 둬. 몸이나 씻어야지. 좀 써도 되지?"



 허락을 구하는 건지, 아니면 확인을 하는 건지 소녀는 여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성큼성큼 화장실 겸 샤워실로 걸어갔다. 그래놓고는, 들어가진 않고 바깥에 선 채 문만 열고 안을 빼 꼼이 들여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는 불쾌하단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여자 혼자 쓰는 화장실이 이게 뭐야? 너 솔직히 손도 안 댔지? 벽이며, 천장이며……."



 불평을 듣고 여선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더러워진 타일, 샤워기 호스의 물때 자국 따위를 보며 소녀는 일일이 짚고 넘어가며 불만을 표시했다. '집에 애정이 없다'느니, '당장이라도 몸만 갖고 나갈 셈이냐'느니 하면서, 시시콜콜한 걸 가지고 대단한 일인 양 떠들어댔다. 여선이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한참을 떠든 끝에, 소녀는 마뜩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은 옷을 하나씩 훌훌 벗었다. 소녀의 옷은 비를 맞아 속옷까지 젖어 있었다. 여선이 욕실 안에 놓은 플라스틱 대야를 가리켜 말했다.



 "옷은 거기다 벗어놓고 나 줘. 지금 빨아서 말려놓을 테니까."
 "어차피 기계로 대충 돌릴 셈이지?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서툴게 하면 물만 더 쓴단 말이야. 그냥 줘. 어차피 나도 빨래해야 되니까."
 "잔소리 하고는."



 그 때부터였다. 머릿속에서 퓨즈가 갑자기 타 툭 끊어진 것처럼 여선의 인내심에 한계가 온 건. 사사건건 시비 걸고 귀엽지도 않게 구는 꼬맹이가 대체 뭐라고? 잔소리? 자기가 한 건 잔소리 아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겨우 여선이 억누를 수 있던 건 딱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상대는 명백히 자신보다 최소 열 살 이상 어리다는 것.



 여선은 최대한 만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버텼다. 이래 뵈도 명절 때마다 자식욕심 과한 친척 분들 덕분에, 어린 조카들 돌보느라 온갖 못 볼 꼴 다 봐온 몸이 아니던가. 좀 건방떨긴 하지만 소녀 역시 애일뿐이다. 참자, 정여선. 지금은 그냥 참자. 아니꼬워도 참자.
 여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욕실 안에서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여선은 제발 옆방이 비었거나, 최소한 옆집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기만 바랐다. 무리하게 원룸으로 개조한 건물은 옆집 화장실 물소리가 벽을 타고 들리고, 이웃집 쓰는 에어컨 배출수가 여선의 집 화장실로 빠져나오게 호스를 빼 두어둔 등 구조가 엉망이었다.



 "이렇게 방치해두니 질려서 안 떠나겠어? 아무 데다 집짓고,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쓰지도 않는 방은 사방 천지면서, 길거리 나와 자는 인간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내가 성주신만 아니면 진작 도망갔을 텐데 말이야."
 "샴푸랑 린스는 네 왼쪽에 있어. 구석 쪽에 있는 게 샴푸. 칫솔은 여기 둔다. 치약은 이거 쓰면 되고."



 꼬마애가 쓸 수건을 수납장에 놔두고, 마찬가지로 수납장 한쪽에 넣어둔 세제를 꺼내 들고서 여선은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성주 꼬마에게 받은 옷가지를 넣고, 또 자기 빨래까지 몇 벌 더해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화장실 안에서 소녀가 떠드는 소리가 밖까진 들리지 않았다. 여선은 잠시 동안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신이 있다면, 저 꼬맹이가 얘길 꺼냈으니 말인데, 진심으로 빌고 싶었다. 제발 오늘 밤이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


 투표 슬슬 마무리되가네요. 딱히 정치인 분들께 관심있던 건 아니지만, 왠지 개표 때는 좀 설레는 듯해요. 과연 누가 되고 누가 안 될지. 물론 주로 유명한 사람에게 아무래도 눈길이 가지만;;


 


 글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쓰는 중이긴 하지만, 덕분에 탄력을 받네요.;; 될 수 있는 한 끝까지 즐겁게 보실 수 있도록 할게요....전혀 걱정되는 일이 없진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