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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천사 날개는 당신을 먹고 자란다

2010.05.29 08:17

윤주[尹主] 조회 수:123 추천:1

extra_vars1 성주신과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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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면, 직장으로 가라. 당신 회사 어딘가에 있을 당신 자리로 가서, 눈을 크게 뜨고 빤히 쳐다보아라. 여선은 실제로 자기 자리에서 제 죽음이 생긴 모양새를 보았으니까. 여선이 보기에 그것은, 무색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한 쌍 날개처럼 보였다.
 지금껏 못 보던 것을 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여선도 그랬다. 죽으려 들기 전까지 그녀는 단 한 번도, 제 죽음이 생긴 모양을 본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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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여선은 사무치도록 죽고 싶어 했다. 갑작스런 충동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변덕 탓이겠지만, 아무튼 여선은 그녀 남은 목숨을 통째로 덤프트럭에 실어다 매립지로 보내 폐기처분하고 싶어졌다. 추가 주문이 있긴 했다. 그녀는 남들처럼 칙칙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순간, 그녀는 화사한 꽃들 사이에 제 시신이 눕혀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살아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말자. 그건 그녀 일생에서 최고로 부끄러운 일이었으니까. 살짝 힌트를 주겠다. 마지막 순간이 임박해 그녀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치장하긴 너무 싸구려인 조화 바구니와, 얄팍한 그녀 지갑에 비해 너무도 비쌌던 생화 바구니 사이에서. 결국 마지막 순간 그녀를 살렸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허영심이었던 셈이다.


 


 여선이 죽기를 포기한 그 다음날부터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걸 눈치 챘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녀 눈에 어떤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출근하자마자 그녀는 가방을 자리에 놓지도 않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시끄럽게 내며 제 상사 앞에 다가가 섰다. 아직 이르다 싶은 나이에 벌써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상사는, 그의 앞에서 당혹감과 부끄러움, 수치심 따위로 새빨개진 얼굴로 서있는 여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자리에서 조금도 일어서지 않고서 말이다.



 "혹시 제 자리, 저 여자한테 준 거예요?"



 상사는 안경을 고쳐 썼다. 잠시 동안 그는 여선 너머 그녀의 자리를 한 번, 다시 여선의 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는 눈치였다. 그는 여선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 말이야?"
 "저기, 저 여자 말예요! 지금 내 자리 차지하고 있는 여자! 제가 또 누구 얘길 하겠어요, 이른 아침부터!"
 "내 눈엔,"



 상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안경을 천천히 벗었다. 그는 서랍에서 안경닦이 천을 꺼내 먼지가 시뿌옇게 내려앉은 안경알을 꼼꼼히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눈은 줄곧 여선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여선은 불쾌해졌다. 상사는 그녀를 정말 이상하단 식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자리엔 아무도 없는 것 같거든."



 여선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곧바로 홱 몸을 돌려 제 자리로 돌아가긴 했다. 머릿속으론 온갖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이건 신종 따돌림인가? 아니면 사직을 강요하는 은근한 압박? 더 따지고 들다가 정말 짤리면 어쩌지?
 물론 진실은 그녀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 날 아침 그 사무실에서 그녀 자리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본 건 여선 말고는 없었다. 그럼에도 여선은 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여자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전까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였다. 등에 한손바닥 크기 날개 장식 한 쌍을 달고 있었다. 무색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그 날개 말이다. 그것 외에 여자는, 겉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를 볼 수 있는 게 오로지 여선뿐이라는 것만 빼고는.
 여선은 될 수 있는 한 그녀를 피해 다니며 하루를 넘기려고 했다. 누구도 그녀가 자기들은 못 보는 환상의 여자가 보인단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야 했다. 간단한 일은 복사기 앞에 기대서서 대충 해놓으면 되었다. 문서 작성을 해야 한다면 출장 간 동료 컴퓨터를 빌려 쓰면 문제없었다. 상사 눈치만 잘 보면, 굳이 자기 자리에 앉아 해야 할 복잡한 업무를 해야 할 필요조차 없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 망할 여자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너 왜 네 자리로 안 와?"



 환청이다, 무시하자. 여선은 수차례 '이건 환각이다, 환각이다'를 되뇌며 여자를 쫓으려 했다. 여자가 여선의 그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얘, 아무리 싫어도 네 수호천사를 무시하면 안 되지."
 "뭐라고?"



 황당한 나머지 여선은 무심코 그녀에게 대꾸해 버렸다. 여자는 기다렸단 듯 눈을 빛냈다. 여선이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그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여선이 가장 잘 알았다.



 "네 수호천사란 말이지. 바로 이 몸이."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여자는 한껏 뽐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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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글 읽으면서 한 번씩 제 글도 올려 봅니다...오늘 써놓은 것도 타자 다 못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