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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어둠의 검사

2010.05.24 10:07

비터스틸 조회 수:242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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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덕구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자에 발길질해서 덕구는 잠에서 깨어났다. 덕구는 엎드린 자세에서 고개만 들었다. 덕구에게 자주 빵 심부름을 시키는 같은 반 친구 고남일이었다,


 


"소시지 빵 두 개 사오고 백 원은 너 가져."


 


고남일은 덕구의 책상에 천 삼백 원을 내려놓았다.


 


"이제 쉬는 시간 다 끝났는데."


 


덕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빨리 갔다 오면 되잖아. 너 지금 꼬라보냐?"


 


"아, 아니"


 


고남일은 왼손으로 덕구의 뒷목을 붙잡았다. 덕구는 몸을 움츠렸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고남일이 체중을 실어 목을 누르자 덕구는 숨이 막혀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덕구는 목을 누르고 있는 남일의 팔을 붙잡아 떼어내려고 했지만 남일이 오른팔을 뒤로 빼고 때릴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만두었다.


 


"캑. 알았어, 갈게."


 


"1분 남았어. 빨리 가."


 


덕구는 돈을 집어들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고남일이 덕구의 발목을 발로 찼다 덕구는 고개를 숙이고 매점으로 뛰어갔다.


 


 


- - -


 


 


덕구는 수업종이 치고 한참 지나서야 교실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덕구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덕구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구의 생각에는 선생님은 이제 덕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덕구는 교문 앞에서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떤 눈으로 덕구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덕구는 자리에 앉았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빵 봉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덕구는 빵을 교과서 밑에 감추고 책상 서랍에서 판타지 소설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덕구의 자리는 반에서 제일 구석진 자리라서 조심만 하면 들키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종이 두 개를 나눠줬다. 하나는 2학기 들어서 추가된 특별활동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특별활동 신청서였다. 특별활동 명단 중 하나가 덕구의 눈길을 끌었다, '싸울아비인술'


 


 '삼국시대 백제에서부터 전해지는 민족 전통 무술로 민족정신과 심신단련 및 지능개발, 지도자 한국전통무술보존협회 공인 싸울아비인술협회 나정호 회장. 싸울아비인술 13단 비금생법 4단 공법 4단. ' 수련 내용을 보니 쌍검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덕구가 마침 읽고 있던 판타지 소설에서 주인공이 쌍검술을 사용하는데, 쌍검술이 매우 화려하고 멋있는 검술로 묘사 되어 있어서 덕구는 쌍검술에 구미가 당겼다.


 


 소설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쌍검술은 익히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고 수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단 익히면 매우 강한 검술이다. '나는 한민족 혈통이니까, 백제 검술에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 덕구는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나정호 사범은 매우 뚱뚱한 사람이었다, 하지민 팔다리는 이상하게 가늘어서 마치 감자에 이쑤시개 네 개를 꽂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자, 먼저 출석 체크를 하겠다. 일 학년 사 반 김동수?"


 


출석 체크를 하는 동안 덕구는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싸울아비인술을 배우기 위해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덕구까지 합해서 모두 열한 명이었다. 주로 다른 아이들의 빵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몇몇 아이들은 심부름시키는 아이가 돈이 모자라면 자기 돈을 보태서 빵을 사오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저 애 보다는 나아.' 덕구는 언제나 백 원이나 오십 원씩 배달비를 받았다. 가끔은 십 원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출석 체크가 끝나고 나정호 사범은 싸울아비인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너희들 닌자가 뭔지 알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정호 사범은 말을 이었다.


 


"일본에서 검은 옷 입고 수리검 같은 암기를 다루는 암살자들 말이다. 영화에 많이 나오는 거. 그런 특수부대의 기원이 뭔지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백제의 싸울아비들이다. 싸울아비들이 익혔던 무술이 바로 닌술이고. 나중에 일본인들이 싸울아비들의 인술을 베껴갔고, 싸울아비에 대한 모든 기록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에 의해 불태워져셔 원조인 싸울아비들을 잊혀지고 닌술 하면 모두가 일본 닌자만 기억하는 것이다. 닌술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틀렸어. 정확히 말하면 인술이다."


 


나정호 사범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백제가 망하고 싸울아비인술은 일인 전승으로 이어져 왔는데, 나정호 사범은 싸울아비인술의 32대 전승자인 어떤 노인에게 싸울아비인술을 전수받았다. 5년 동안 제주도 한라산에서 노사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마침내 모든 인술을 익힌 나정호 사범은 한국에 한민족의 전통 무술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하산했다. 나정호 사범은 싸울아비인술은 원래 일인전승이지만 전통 무술의 부흥을 위해 자기 대부터는 그 전통을 깨트리기로 했고, 덕구를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첫 제자이니 영광인 줄 알고 열심히 배우라며 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은 단전호흡과, 싸울아비인술의 신라사야 제 1식인 아검파천을 배우겠다. 아.검.파.천. 자신의 검으로 하늘을 가르는 검술이라는 뜻이다. 이 검술은 신라사야로 한다. 신라사야라고 들어본 사람?"


 


나정호 사범은 도복 벨트를 느슨하게 풀고 바지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짧은 목검을 꺼냈다. 일반적인 목검과 달리 검신과 칼자루 사이에 작은 방패가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일본 말로 시라사야라고 한다. 어원은 신라의 검이라는 의미인 신라사야지. 싸울아비들은 민첩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무겁고 불편한 코등이가 없는 이 신라사야를 사용했다. 앞으로 한 달간은 신라사야 검술을 배울 테니 모두 신라사야 목검을 사야 한다. 일단 지금 나눠줄 테니 돈은 일주일 안에 이 사범님한테 내. 짧은 건 삼만원 긴 건 오만원이다. 도복은 주문해놨는데 아직 안 왔으니까, 일단 내일부터는 체육복을 가져와라."


 


오만원이니 삼만원이니 하는 말은 덕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덕구는 목검을 쥐어보았다. 옅은 갈색의 목검은 새것이라 표면이 매끄러웠다. 거기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덕구는 목검을 만져보는 것도 처음이고 검술을 배우는 것도 처음이라서 흥분이 됐다. 검을 쥐고 있으니 뭐든지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