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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밤은 우리의 것이다

2010.05.12 02:58

윤주[尹主] 조회 수:237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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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능력. 어머니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우리 야수는 얼마든지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상대방이 총을 쏘려는 순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그들 중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품 속 깊이 파고들자 녀석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나는 재빨리 녀석의 다리 빈 틈을 노려 찔렀다. 방탄조끼에 팔, 다리 보호대까지 차고도 녀석은 칼날이 비집고 들어갈 그 작은 틈까진 막지 못했다.



 "아악!"


 칼을 맞은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는 칼로 그 녀석의 목을 그었다. 다른 녀석이 총을 쏘기 전, 나는 뛰어올라 지붕 가장자리를 붙잡고 훌쩍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총을 겨누던 녀석은 닭 쫓는 개처럼 나를 보았다. 인간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것이 두 번째 능력이었다. 야수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민첩하고 힘이 셌다. 상당히 빨리 녀석은 현실을 파악하고 지붕을 향해 총을 겨눴다. 나는 재빨리 지붕 위에서 굴러 녀석의 등 뒤로 뛰어내렸다. 방탄 조끼 아래 틈으로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칼날은 녀석의 옆구리에 닿았다.


 "끄아악!"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에게서 총을 빼앗았다. 총을 어깨에 매도록 달린 멜빵 끈을 풀어 그의 목을 졸랐다. 온 힘을 다해 조르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의식을 잃었다.


 보초를 서던 두 녀석을 처리했다 싶었더니 별안간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녀석들은 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밖을 향해 총을 쏴댔다. 나는 이미 지붕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건 모두 세 명이었다. 토굴에서 나오기 전 창고에 있는 인간 수를 어림해 보았다. 스물 두 명이 그 창고로 왔다가 15명이 나갔다. 죽은 보초 두 명에 밖에 나온 세 명을 빼면 창고 안에는 여전히 두 명 이상이 더 남아있는 셈이었다.


 철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세 녀석은 바로 그 문 앞에서 지붕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래 내려가 세 녀석들을 죽이면, 창고 안에 있는 두 녀석에게 표적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변칙을 쓰기로 했다.


 "앗, 뜨거!"


 아래 있던 인간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총을 떨궜다. 다른 인간들도 차례차례 자기 총을 떨어트렸다. 심한 화상으로 그들의 손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세 번째 능력, '형식'이었다. 그것은 '형태를 갖춘' 어떠한 공식을 의미했다. 야수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나처럼 불을 다룰 수 있는 야수도, 물이나 다른 것을 다룰 수 있는 야수도 있었다. 어머니 대지에 등을 돌린 인간들에겐 없는 능력이었다.


 아래 있던 녀석들이 모두 총을 떨어트리자 나는 지붕에서 내려왔다. 가장 먼저 열린 철문을 닫고 문고리에 총 한 정을 꽂았다. 안에 있던 녀석들이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총을 들고 밖에 나와 있던 세 녀석들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난사되는 총알이 방탄 조끼에 박히고 헬멧을 두들겼다. 인간 둘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 명은 간신히 총알을 피해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창고 안에선 여전히 쾅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형식 하나를 짜서 창고 안으로 보냈다. 그건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형식이었다.


 창고 안에 시뻘건 불개가 나타나자 인간들은 놀라 총을 쏴댔다. 순수하게 불꽃으로만 이루어진 커다란 개는 거기에 결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불개가 단 하나에만 관심을 갖고 거기에 달려들도록 꾸몄다. 창고에 들어간 녀석의 유일한 관심사는 화약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창고는 폭발해 버렸다. 뒤쪽 벽이 무너져 내리고 슬레이트 지붕이 산산조각나 날라갔다. 두꺼운 철문까지 밖으로 휠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잠시 자리를 피했던 나는 천천히 창고를 향해 걸었다. 창고 밖에 널부러진 시신들, 목이 베어지거나 총을 맞은 인간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숨이 남아 있는 인간들은 얼굴을 겨누고 쏘아 숨통을 끊었다.


 창고 안에 있던 두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거의 밀패된 공간에서 그 정도 폭발을 일으켰다. 아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굳이 넝마 조각이 된 그들의 시신을 살펴보고 싶지 않았다.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오르는 건 이 커다란 숲에서도 꽤 멀리서까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땅이 울리고 큰 소리까지 났으니 틀림없이 다른 인간들도 돌아올 터였다. 나는 멀쩡한 총 하나를 집어서 시체들 사이에 엎드려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안전한 장소가 없어진 걸 확인한 녀석들이 절망하는 걸 보면서 그들의 숨통까지 앗아갈 생각이었다. 설령 죽는데도 아쉬움이 없었다. 여기 온 처음부터 나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숲 여기저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총을 든 인간들이 하나 둘 숲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창고가 불타는 데 놀라고, 또 자기 동료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거기서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괴물들, 사냥만 알던 잔인한 녀석들이 눈물흘리고 있었다.


 문득 지난날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포프는 복수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집사는 인간도 우리처럼 선하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처럼 선한 이들이 어째서 우리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 몰랐고, 살인자에게 보복을 하는 게 왜 정의롭지 못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답은 눈 앞에 있었다. 눈 앞에 있지만 결코 이해할 순 없었다.


 내가 주저하는 사이 인간들은 시신들과 뒤섞인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서둘러 장전을 하려 했지만 안에서 총알이 걸렸다. 재장전할 시간은 없었다. 총을 장전하는 쇳소리를 들은 녀석들은 내게 총을 겨눈 채 조심스레 걸어왔다.


 그 때 앞장서 오던 녀석이 옆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인간들은 일제히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숲 속 여기저기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인간들은 우왕좌왕하며 숲 속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수풀에 숨어 총을 쏘는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인간들은 하나둘 쓰러져 죽어갔다. 소수의 인간만이 서둘러 도망친 탓에 목숨을 건졌다.


 인간들을 몰아내고 수풀에서 나온 건 탈리와 형제들이었다. 그들 역시 포프의 복수를 하겠다고 숲 속을 헤메다가, 창고가 폭발하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 시체들을 살피고 무장을 빼앗았다. 아직 죽지 않은 인간들을 총으로 쏘고 포로로 삼았다.


 탈리가 먼저 내가 멍하게 서 있는 걸 보고 다가왔다.


 "굿맨, 이거 네가 한 거냐? 대단한데! 이걸로 포프 녀석도 한을 풀 수 있겠어."


 그는 내 어깨를 두들겨 격려하곤 또다른 형제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러 떠났다. 나는 시체 사이에 서서 그것들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어쩌면 지금 여기서 싸우는 우리는 숲을 뛰놀며 식사를 하고, 흐르는 물에 목을 축이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꽃을 선사하며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저 비참한 꼴 시신들도 마찬가지진 않았을까.



 


 이상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간과 우리는, 좀 더 다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진 않았을까 하고. 그들은 우리 숲 속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우리는 그들의 펍에 앉아 함께 술잔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지금처럼, 인간과 야수 각자가 형제를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 그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선행이 아니었다면.


 포프를 죽인 이들에게 값을 치루게 하는 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선량한 행동이었다. 포프에겐 미래를 지켜주는 게 최선의 행동이었고, 탈리에겐 현재를 지키는 게 최선의 행동인 것처럼.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 우리 야수를 희생시킨 것처럼.


 우리 모두는 원래 선한 이들이다. 인간도, 야수도 의심할 여지 없이.


 


 


 다만 지금 이 밤만은 우리의 것이다. 누구라도 그것을 빼앗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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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우리의 것이다>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아직도 끝맺는 게 제일 서툰 듯;;;


 이제 또 한동안 눈팅이겠네요...제발 다음 번 글은 한가할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중간에 안 쉬고 꾸준히 끝까지 쓸 수 있게요.


 


 지루한 글 끝까지 재미있게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 쓰게 되는 글로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