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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밤은 우리의 것이다

2010.05.08 07:49

윤주[尹主] 조회 수: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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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우리 형제들과 싸웠다고 들었어요."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대화를 이었다. '집사'는 형제란 말이 익숙지 않은지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혹시 어제 그 녀석들 말인가? 힘없는 남자애 하나 해보겠다고 네댓 놈씩 달려들던 쓰레기들."



 표현은 다르지만 아마 지난밤 당했던 습격 조를 떠올리는 건 맞으리라.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집사'는 조금 뭔가 생각하더니 내게 물었다.



 "얘, 넌 왜 인간과 싸우니?"
 "뻔 하죠. 저들이 나쁘니까요."
 "어째서?"
 "먼저 우릴 공격했잖아요."
 "누가? 이 늙은 부부랑 어린 남매가?"



 '집사'가 가리킨 건 마당에 묶인 인간들이었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 집사는 비겁했다. 우리는 '인간들'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었지, 특정 '인간'에게 개인적 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저들은 낮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뻔뻔하게 밤까지 자기들 것처럼……."
 "내가 보기엔 너흰 문 닫아걸고 쥐죽은 듯 지내던 힘없는 일가족을 억지로 끌어내 쏴 죽이려던 것 같던데."



 나는 스스로 말솜씨가 없단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집사를 납득시키는 건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집사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명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그렇게 믿었다. 40명이 넘는 우리 형제들이 그것이 정의롭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은 모두 야수들을 위한 것이 분명했다.



 그 때에 집사는 내 눈동자를 보았다. 찬찬히 그것을 살피고는, 돌연 잦아든 목소리로 흘려 말했다.



 "착한 애구나, 넌."



 그건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계기도, 전조도 없었다. 그저 불현듯 맥락 없이 튀어나온 결론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너라면 이해할지도 몰라."



 집사는 내가 자신을 이해할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어떻게 위스류페와 피에크람, 인간 옹호자와 그들을 몰아내려는 무리가 서로를 믿을 수 있겠는가. 노인과 젊은이, 혁명가와 박애주의자. 방 한 칸에 한데 몰아넣은 고양이와 쥐가 무슨 근거로 서로 화해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하는 걸까.



 "크게 보렴, 꼬마야. 우리랑 저들은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아."



 내가 동족을 사랑하는 만큼, 인간도 분명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집사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그때 그녀가 한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항상 용서받지 못할 적이었다. 그 얘기를 듣기 이전에도, 심지어 그 후에도.



 집사가 물러가고, 정신을 차린 탈리가 다른 녀석들을 깨웠다. 우리는 왔던 길을 따라 패잔병처럼 힘없이 되돌아갔다. 탈리는 내가 집사와 뭔가 얘기를 나눈 걸 알고 있었다. 난 내 존경하는 영웅에게 집사와 나눈 대화 전부를 빠짐없이 말했다.



 "어쩌다 시시한 녀석이 되었담, 그 년도."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탈리는 몹시 투덜거렸다. 힘 있는 중재자가 별 볼일 없는 이상주의자가 된 것에 그는 굳이 분개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에게 집사는 조금 귀찮긴 하지만 별 볼일 없는 날벌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탈리에게 말해 준 집사의 얘기를 내 아버지나 다름없는 포프에게도 전해 주었다. 불쌍한 포프는 탈리와 달리 이야기를 끝까지 모두 들어 주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한 끝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며 나는 펄쩍 뛰었다. 포프는 탈리와 정반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혼란스러워했다. 내 유일한 영웅은 집사가 하잘것없는 존재라고 말했지만, 내 영혼의 아버지는 그 집사가 한 말이 중요한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어째선지 나는 그 차이가 무섭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포프는 집사처럼 내게 말하고 있었다.



 "굿맨, 너는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동족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는 너라면, 그래서 그들을 위해 어린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라면 반드시 알 수 있어. 눈을 돌리지 마라. 그녀 말이 맞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그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 탈리와 의견 차이가 심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날 포프가 한 말은 단순히 의견 차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한 데가 있었다. 누가 잘못 알아듣기라도 했다면 포프가 탈리를 배신하려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포프에게 화를 냈다.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대들었고, 왜 적을 두둔하느냐고 비난했다. 포프가 놀란 나머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그는 평소처럼 차분한 어조로, 자기가 어째서 인간과 싸우게 되었는지를 얘기해 주었다. 사실 이유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의 날'에 그들 손에 형제와 가족을 잃었고, 상심 끝에 탈리를 만나 힘과 의지를 얻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싸우는 이유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복수심 탓이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 차이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해둬라. 살해당하지 않고선 우리는 아무도 죽여선 안 돼.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정당하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몇 마디 말만으로 포프는 내 영웅과 형제들을 살인자, 범죄자 집단으로 격하시켜버렸다. 충격을 받은 나는 방금 전 한 말을 취소하라고 악을 썼다. 취소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얼굴 보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날따라 포프는 내 어리광을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거의 애걸하다시피 그에게 매달렸다. 거짓말이라고 해주라고 울었다. 처음엔 나를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그를 위해서 바란 게 되었다. 포프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진짜 그의 얼굴을 못 볼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누가 살인자들을 벌 줄 수 있겠어요?"



 울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물었다. 산 사람 가운데 정당하게 살인자를 심판할 수 있는 이가 없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순 없는 노릇이니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탈리는 짤막하게 답했다. 아무도 없다.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그 두 음절 말에 나는 갑자기 성이 났다. 더 이상 그 고집불통 노친네 따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진정 내가 사랑했던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포프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반복해 웅얼대며 화톳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지, 아무도. 세 번째인가 돌아보았을 때도 그는 계속 그런 상태였다. 그러다 멀리 떨어져 네 번째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째선지 포프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 없이 울며, 무언가 애도하듯 자꾸만 뭔가를 중얼대면서 그는 거기에 붙박인 듯 있었다.



 나는 다시 덜컥 겁이 났다. 그때 어처구니없이 떠오른, 어떤 생각 때문이었다. 불쌍한 포프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지금도, 간혹 그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포프는 뭔가 알았던 게 아닐까? 우리가 미처 못 보고 지나친,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한 어떤 진실을 그는 봐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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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두려운 건, 이 글 끝을 맺을수 있을지 하는 거네요...


 다행히 비축분 빼고 남은 건 마지막 신까지 어떻게 유도하느냐뿐입니다. 이번 주말 중에 마무리해봐야겠네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