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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밤은 우리의 것이다

2010.05.07 08:35

윤주[尹主] 조회 수: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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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탈리가 나를 비롯해 소년병 네 명을 조용히 불렀다.



 "집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야겠다."



 우리 네 명은 각자 총기와 나이프 한 자루씩을 지급받았다. 탈리 자신도 총과 탄약을 챙기고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리는 어색해했다. 탈리가 소년병 넷만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깐 나갔다 오자."



 그날따라 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믐이라 달빛도 없어서, 우리는 온 몸의 빈약한 감각에 의존해 길을 나섰다. 중간 중간 탈리는 라이터를 켜서 지도를 확인했다. 인간들을 죽이는 우리에게 인간들의 도구는 항상 유용했다.



 "여기서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주택가다. 대충 서너 집만 돌다보면 한 놈이라도 걸리겠지."



 그제야 우리는 탈리의 계획을 이해했다. 스스로 소년병만을 이끌고 인간을 습격해서까지 그가 확인하고 싶은 건 아마 이것이었다. : 집사가 포프처럼 나약한 인도주의자가 된 건지, 아니면 그저 리렌드같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인간을 옹호하기로 결심한 것뿐인지. 나를 비롯한 소년병들에게 그 문제는, 상황에 따라선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인간의 도로는 모두 나무와 수풀에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탈리가 지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상당 부분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갈 길을 결정해야 했다. 경험 많은 탈리에게도 그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간판을 단 수많은 상가 건물들 사이에 골목길들이 보였다. 탈리는 그 중 어느 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극도로 긴장한 우리는 조금만 바삭거려도 흠칫 놀랐다. 심지어 방아쇠를 당기는 녀석까지 있었다. 다행히 탈리는 우리 총에 탄환은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붉게 칠한 어느 철제 대문 앞에 서서 탈리는 우리를 불러 모았다.



 "한 사람씩 담 위로 올려주마. 안으로 들어가 수색해. 인간을 보면 마당으로 끌어내라."



 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인간들의 시멘트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담장 안에는 좁은 마당이 있고, 계단 층계가 바깥으로 둘러진 이층집이 있었다. 우리 중 두 명은 1층을 뒤지고, 나와 다른 한 명은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탈리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먼저 앞서 올라가 이층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 보았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안에선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감각이 발달한 야수라도 숨을 죽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약한 기척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곧 케이블선 다발이 옥상을 거쳐 내려와 이층 창문으로 들어간단 사실을 알았다. 다른 녀석더러 문 앞을 지키도록 한 후, 곧바로 옥상으로 뛰어올라가 그 두꺼운 선 다발과 벽에 의지해 묘기하듯 그 창문 앞까지 내려왔다. 잔뜩 흥분한 나는 기세 좋게 그 유리창을 발로 걷어찼다. 평소 그토록 무겁고 딱딱하던 군화가 제 역할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창이 깨어져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에 있던 건 젊은 여자였는데, 창을 깨고 들어온 게 어린아이라는 사실에 다소 놀란 모습이었다. 그러다 내가 총을 든 것을 보고 표정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밖으로 나가."



 여자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나가 잠긴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밖에 기다리던 녀석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여자는 꼴사납게 쓰러져 코를 땅에 박았다. 이층에 딸린 나머지 두 개 방을 뒤지던 녀석은 기어이 우리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남자애를 끌어내 마당으로 데려왔다.



 첫 수확치곤 훌륭했다. 일층을 수색하던 두 녀석은 노부부를 끌어냈다. 이층에서 끌어내린 두 남매와 함께 그 노부부도 묶여 마당 한가운데 모았다. 탈리는 우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감, 이 집에 또 누가 있지?"



 탈리가 묻자 노부부는 잔뜩 겁에 질려 말했다.



 "아뇨, 저희밖엔 없어요."
 "정말이야? 거짓말이라면 애들까지 다칠 거야."



 가장 어린 남자아이에게 탈리가 총구를 들이밀자 부부는 혼비백산해 아이를 끌어안고 탈리에게 사정했다. 탈리는 무표정하게 그들이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조금 전 그에게 받은 칭찬에 들떴던 나는 갑자기 그가 두려워졌다. 평소 영웅처럼 우러러보던 그가 어째선지 무슨 괴물처럼 느껴졌다.



 탈리는 그 부부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 말했다.



 "알아둬. 총을 쏠 땐 상대 눈을 가급적 보지 마라. 경험상, 눈을 본 녀석들은 한 번씩 사고를 치더군."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탈리는 총알을 장전시켰다. 부부는 울먹이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비명과 탄식, 사정 등이 뒤섞여 나오는 그 괴상한 소리는 어린 아이의 투정 소리보다도 듣기 싫었다.



 그 때 누군가 공중에서 뛰어내리며 탈리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그의 전신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우리는 놀라서 당황했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대항하려 했지만 총은 비어 있어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 사이 그것은 우리를 가볍게 하나하나 제압했다. 빈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저항하는 녀석들을 매다 꽂거나 내던져 하나하나 무력화시킨 다음, 그것은 마침내 내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나는 간신히 그것을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여자였다. 게다가 야수의 체취가 나는!



 "피에크람 쓰레기들은 이제 어린애들한테도 살인을 가르치나?"



 여자에겐 표정이 없었다. 오로지 말투에서 한심함, 슬픔, 안쓰러움 따위 감정이 겨우 묻어나올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나는 그녀가 우리에게 생각보다는 덜 적대적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집사'세요?"



 문득 탈리와 포프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나 물었다. 여자는 조금 입을 벌렸다.



 "제대로 대화가 이뤄진 건 네가 처음이네. 맞아. '집사'지."



 그제야 나는 방금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 놀라움을 표현한 것임을 깨달았다. 집사는 그 정도로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그것 빼고는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젊은 여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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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분량은 아직 못썼네요...과연 연재 끝나는 게 먼저일지 중간에 비축분 떨어지는 게 먼저일지;;


 


 날씨가 제멋대로입니다. 건강하세요. 아는 사람들 중 유독 몸이 안좋은 분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