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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밤은 우리의 것이다

2010.05.05 01:18

윤주[尹主] 조회 수: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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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변성기를 넘어섰을 때 일이다. 탈리가 갑자기 소년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때까지 탈리가 우리만 따로 불러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린 병사들은 항상 어른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그들을 돕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주로 명령을 내리는 입장인 탈리가, 어른들 보조인 우리에게 직접 무언가를 말할 필요가 있을 리 없었다.



 우리를 한데 모아놓고 탈리는 평소와 같이, 장황하지만 열기 가득한 웅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밤은 우리 것이다. 저 태양빛이 수풀 차양 사이로 새어들어 우리 몸을 덥히며 서로 사랑하게 하던 낮은 빼앗겼어도, 지금 유일하게 우리에게 남은 차가운 밤만은 온전히 우리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이 낮을 빼앗았으므로 우리는 밤을 지켜야 한다. 밤처럼 차갑고 냉정해야 한다. 탈리는 자주 그런 말을 했다. 그의 생각에 우리 야수들은 지나치게 선량했다. 심지어 우리의 적들, 침략자들에 대해서도 야수들은 간혹 인정을 베풀고 용서해 준다. 그래서 탈리는 우리에게 잔혹해지라고 계속 요구했다.



 "너희도 곧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그 전에, 우선 각자의 자격을 시험해 보지."



 그가 부르자, 근처 수풀 어딘가에서 우리 형제 하나가 무언가를 끌고 와 바닥에 내팽개쳤다. 우리는 순간 숨을 죽였다. 우리의 발치에, 눈을 가린 채 온 몸이 단단히 묶인 소녀가 누워 있었다. 겉모습은 우리 또래로 보였지만 독특한 체취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 여자애가 우리와 다른 인간이란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탈리는 자기 권총을 빼어 들었다. 총알 한 발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풀며 그가 말했다.



 "이 총은 내가 평생 함께 한 녀석이다. 전장에서 몇 번이고 내 목숨을 구해줬고, 수많은 적들을 쓰러트린 총이지. 사실 지금은 내 분신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우리 중 하나에게 그는 그 총을 건네주었다. 총을 받은 그 녀석은 생각보다 그것이 무겁다는 데 놀라면서도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깨닫고 무척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탈리가 그 다음 내릴 명령이 무엇인지를 짐작한 탓에 긴장한 낯빛을 감추지 않았다.



 그 불쌍한 어린 녀석에게 탈리는 별 감흥도 없는 어조로 짤막하게 다음 말을 던졌다.



 "내 분신을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총을 든 녀석은 부들부들 손을 떨며 방아쇠를 당겼다. 반동 탓에 총이 심하게 들떴다. 모두가 무슨 일인지 어안벙벙해했다. 그 작은 철물에서 쏟아진 벼락같은 소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단 한 명, 탈리만이 크게 웃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고 바닥을 뚫는군."



 탈리가 가리킨 곳을 모두가 보았다. 과연 여자애 머리로부터 10여 cm 가량 위쪽 바닥에 새로 생긴 작은 구멍이 있었다. 총을 쏜 녀석은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첫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몸서리쳤고, 탈리가 바로 그 손에서 총을 빼앗자 바로 울상이 되어버렸다.


 탈리는 우리를 한 번 쓱 둘러보더니 두 번째 열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곤 양 팔을 넓게 벌리며 다가왔다.



 "굿맨, 여기 있었군. 어때, 한 번 해보겠어?"



 주위에 서 있던 녀석들이 물러서 공간을 내주었다. 나와 소녀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과 같이, 탈리는 내 손에 총을 쥐어주곤 조작법을 설명하며 친히 장전까지 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내 등 뒤로 다가가 앉은 채 그 큼지막한 손을 내 양 어깨에 올려 몇 번인가 두들겼다.



 "자신감을 가져. 너라면 반드시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든 총을 보았다. 총구는 정확하게 소녀 방향을 향했다. 긴장감 탓인지 평소보다 호흡이 빨랐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박자에 맞추어 총구는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이번엔 심장 박동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박동마저 죽였다. 총구는 더 이상 들썩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총알은 틀림없이 소녀의 머리를 뚫고 나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가까운 풀숲에서 누군가 불쑥 고개를 내민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쥔 손을 풀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우리들과, 우리 앞에 쓰러진 인간을 바라보는 포프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총구를 그 인간 여자애에게 겨누었다는 데 진심으로 놀란 눈이었다.



 "이리 내놔!"



 포프는 손쉽게 내 손에서 탈리의 총을 빼앗았다. 나는 대체 그가 어째서 여기 있는지를 고민했다. 틀림없이 탈리의 자리에서 난 총소리에 놀라 달려온 거다. 그는 곧바로 상황을 모조리 파악해버렸고 평소와 달리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와 탈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놈들은 애답게 놀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랬지! 어린애잖아, 이 녀석들도, 저것도!"
 "어린애라고?"



 탈리는 피식 웃더니 우리에게 물었다.



 "이 녀석들! 너희들이 어린애냐!"



 다른 상황, 다른 장소에서라면 그 자리에 선 모두가 '아닙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최소한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처럼 입조차 벙긋하지 않았을 린 없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애들을 어른 대접해주겠다는데 싫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탈리가 그 질문을 던진 바로 그 때 우리 곁에는 포프가 있었다. 포프가 우리를 보살펴준 건 우리가 어른이 아니라 애였기 때문이었다. 실컷 특혜를 받고선 이제 와서 그 좋은 사람을 배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자 탈리는 또 한 번 코웃음 쳤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주눅 들었다. 성인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우리는 여전히 포프 말대로 어린애였다.



 "제정신인가, 탈리? 이 애들에게까지 총을 들려줄 필요 없어! 어린 녀석들 말고 사지 멀쩡한 놈들도 많은데, 왜 이 녀석들까지 전장으로 몰아세우려하나?"
 "전쟁터에서 아이고 어른이고 구별이 있을 것 같아? 녀석들은 그런 것 보지도 않는다고. 포프, 너도 '그 날' 봤겠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들인지."



 '그 날', 우리 세계에 인간들이 나타나고, 인간들의 세계에 우리가 나타난 이상한 하루 동안, 인간들은 우리를 찾아내 죽이고 자신들이 심은 가로수와 화분, 심지어 길가에 난 민들레까지도 모조리 뽑고 자르고 뭉개 버렸다. 무슨 이유였는지, 그런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건간 아닌 나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어쨌건 그 날 이후 인간의 도시에서 어머니 대지의 일부분이라도 엿볼 수 있는 여지조차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도시는 야수가 숨어 살기에도 지나치게 삭막한 곳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낮을 인간에게 빼앗겼다. 낮에는 우리보다 인간이 훨씬 많았고, 흙과 돌과 모래를 밟을 수 있는 땅도 적었다. 반면 밤에는 그 많던 인간들이 대부분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의 도시도 폐허로 변해 갑자기 자라난 숲에 파묻혀 버렸다. 인간이 비워준 세계에서 우리는 밤도깨비처럼 신나게 달빛아래 뛰놀고 미처 사라지지 못한 인간들을 습격해 죽였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그렇게 죽인 인간 이외 모든 것이 다시 전날처럼 되돌아왔다.



 사실 탈리가 틀린 것도 아니다. 이건 인간이 먼저 불러온 전쟁이다. 무자비한 파괴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학살도 모두 그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다. 여기는 전장이고, 우리는 어린이기 이전에 병사였다.



 다만 포프는 이 전쟁 양상에 대해 탈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그리고 있었다.



 "그래, 저들은 괴물이다. 그렇다고 너는 우리 형제, 아들딸까지 괴물로 만들 셈이냐? 저들은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자식들이야. 이 미친 전쟁이 끝나면 평화로운 삶을 이어나가야 할 평범한 애들이라고!"



 채 식지 않은 감정을 추스르면서 포프는 제 말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탈리, 괴물은 우리뿐이면 족하다."



 아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포프는 말없이 쓰러진 소녀에게 다가가 그 애를 일으켜 세우더니 가볍게 그것을 안아들고 자기가 나왔던 그 풀숲으로 되돌아갔다. 가만히 있던 탈리가 그를 향해 물었다.



 "그건 어떻게 할 셈이냐?"
 "신경 꺼. 이제 얘는 내 거다."



 약해 빠진 놈, 이라며 탈리는 혀를 찼지만 포프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인간 여자애를 안고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생각해보면 포프야말로 진짜 야수였던 셈이다. 탈리가 늘 그랬으니까. '우리 야수는 사실 너무나 선량한 사람들이다.' 포프는 우리 야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선량한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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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처음 바랐던 모양새는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같은 거였다죠;; 길이도 훨씬 짧았고...


 정말 써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