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세계의 축

2008.01.20 07:37

드로덴 조회 수:714 추천:1

extra_vars1 실종 (1) 
extra_vars2
extra_vars3 132956-2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하아~이런 썅. 이런걸 숙제로 내주면 어쩌라는거야..."

 

태백은 수학문제를 가지고 몇분째 씨름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강이 반이나 지나가버렸지만 여전히 그에게 공식이 들어가는 과목들은 하나같이 그의 속을 뒤집어놓기 일쑤였고, 요 근래 들어 갑자기 나빠진 성적때문에 안그래도 압박이 심한데 하는족족 어려운 문제만 튀어나오니 이제는 눈이 튀어나와도 이상할게 없을것같았다.

 

"혜라~이 이놈의 세상은 뭐 이렇게 생겨먹었냐. 희망은 어디 고물상에 팔아먹었나? 꿈은 어디 엿장수한테 엿바꿔 먹었냐? 하유, 이런 썩을."

 

공부가 어려워서 짜증이 나면 공부를 요구하는 세상을 원망하는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한때 요리사니 소설가니 현실성이 없는 소릴 늘어놓긴 했어도 그땐 꿈이란것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 진로상담을 받으면서 사람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이제 그에게 사는건 그저 뻘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용케도 자살 안하고 버티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수학문제에서 눈을 떼자 그는 조금이나마 속이 편해졌다. 한참동안을 엎드려있어서 그런지 허리가 쿡쿡 쑤셔왔다. 몸을 돌려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멍하니 보고있으려니 아예 머리가 텅 비는것만 같았다. 시간이 아깝지 않느냔 소릴 듣기 일쑤였지만, 그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아무생각없이 시원한 바람을 맞는것이야말로 낙이었다. 물론 여긴 실내라서 바람이라고 해도 선풍기바람이나 기대하는데에 그쳐야하겠지만.

 

"으~~~~하! 아주 그냥 좋~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책장 하나가 붙다시피한 이 좁은 방은 사실 그다지 편안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 하나만으로도 그는 세상과 단절되는것이 가능했다. 문이란것이 어쩔땐 참 편리하구나 하고 그는 새삼 생각했다. 그래, 어쩔땐, 이었다. 두 주 전에만해도 형이 수도계량기 안에 열쇠넣는것을 깜빡하는바람에 새벽 한시까지 덜덜 떨었었는데. 그는 차츰 잡생각으로의 원정을 해나갔다. 어릴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 유치하기 짝이없던 옛날 일기장, 찐따한테 열받아서 한번했던 소리때문에 개망신을 당했었던 날, 누가 뒤로 넘어지다가 손으로 파이어에그(...)를 잡아버리는 바람에 (줄 잡을때 쓰던 악력이 파이어에그로 향했으니 누구도 그 고통을 상상할수없을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도미노처럼 쓰러졌던 가을의 캐안습 줄다리기, 어릴적 시소에 부딫혀 죽어버린 앞니등등... 지금 생각해보니 다 웃긴일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에게도.. 누구에게도 결코 추억일수없는것이 있었다.

 

태백이 열한살때의 일이었다. 태권도 도장에서 시작을 기다리고있던 그에게 별안간 시비가 걸려왔다.

 

「니 이름이 태백이라고? 웃긴다, 와...」

 

최근들어 이제 막 품띠를 딴 원칠이었다. 태백보다 나이는 한살더 많았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삐딱하고 싸가지가 없어 형소리 듣는건 어디 뒷골목에 굴러다니는 개똥같은소리고, 뒷담화가 시작되면 제일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오르내리는것이 원칠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주는게 있었다면 그건 바로 그의 태권도 실력이었다. 연습대련을 하는 족족 발차기 한방에 상급생들도 고꾸라지는 통에 그는 사실상 한방의 괴물이라 해 원칠이 아니라 원킬로 통하고있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 자기한테 시비를  걸어오는것이다. 태백의 이름에 대한 시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았다. 물론 유치하게 이름을 가지고 갈굼질을 하는것도 원칠 혼자만의 뻘짓이었지만. 항시 들어왔기때문에 상대하지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 일이 터진것이다.

 

「아 저 X새끼가! 야, 야, 어디가냐? 일로와라?」

 

원래부터 좋진 않았지만 이날은 다른때보다도 더 마이너스기운이 강했다. 태백은 원칠이란놈이 아무리 세봐야 어른들문제로 가면 꼼짝도 못할게 뻔할것임을 알고 그의 욕지꺼리를 흘려버렸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그의 뚜껑을 따버린 모양이었다.

 

「야이 개XX!」

 

팍- 하는소리와 함께 별안간 벽이 얼굴로 달려들었고, 잠시 멍해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원칠이 자신의 멱살을 쥐고 벽에 마구 부대끼고있었다. 계속 몸을 빼었다 들어댔다하며 사정없이 벽에 밀어넣는통에 뒷통수가 꿍-꿍 소리를 내며 아파왔다. 네번쯤 그러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나서 눈에들어온것은 원칠이 관장한테 죽도로 얻어맞고있는 광경이었다. 입속에 찝찔한 쇳맛이 느껴졌다. 아까 벽에 박았을때 코피가 난것이 입으로 흘러내려간모양이다. 뒤통수도 축축했다.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관장이 당장이라도 혼절해버릴것같은 얼굴을하며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저녀석을 풀어놔서...」

 

관장도 원칠의 삐딱한 행실을 알고있었지만 실력을 봐서, 그리고 그의 부모가 걸고있는 자식에대한 기대를 알기때문에 모르는척 해주고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터져버리니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렇게 되기전에 단단히 혼을 내놓는건데...하고.

 

그리고 한달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의사말로는 뒤통수가 깨지기 직전이었다고한다. 병원으로 이송된후 출혈이 다시 시작되서 수혈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태백 자신은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나 하고 되물어볼정도로 실감이 나지않는 상황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주위사람들이 자신을 과대보호 하는것이 느껴지자 그제서야 자기도 어느정도 상황을 이해할수있었다. 소뇌가 충격을 받아 운동신경이 급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부모님의 표정도 다시 생각이 났다. 그때 그것은 흡사 시체에 물감을 칠해놓은듯한... 너무 지독한것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여튼, 그 사건이 그의 운동신경을 망쳐놓는바람에 그는 졸지에 허우대 건강한주제에 체력검사 올 5등급이라는 불편한 경험을 하게되었다. 지금도 열이 뻗쳐오른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몸이 회복되어 본격적인 재활운동을 하자는 의도로 다시 그 도장을 찾아갔을때 태백과 그의 부모 앞에 펼쳐진것은 원칠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관장한테 욕을 퍼붓고있는 광경이었다. 원칠의 부모가 이쪽을 응시한것과 거의 동시에 그들은 시뻘건 얼굴로 연신 욕질 손가락질을 해대며 위협에 가까운 절규를 늘어놓았다. 얘기인 즉슨,

 

「이 죽여버릴 작것들아!! 내 아들을 돌려줘...이 살인자들아아아!!!」

 

그 사건이 있은뒤 얼마 안되어 원칠이 실종되었다는것이었다. 경찰한테 바로 연락을해 수사망을 펼쳤지만 단서는 개미새끼는 커녕 박테리아 똥구멍만큼도 없었다고한다.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의심할것은 태백의 가족들이 뭔가 해코지를 했으리라는 것이었으나, 증거는 없었고 알리바이도 있었다. 태백이 그것을 여태 모르고있었던것은 가족들이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말에 철저히 보호했기에 가능한일이었다. 이쯤되자 어린 태백은 어이가 없었다. 실종이 뭔지는 잘 알지만 왜 그것때문에 자기들한테 이렇게 헛투레질을 해대는건지. 잘못한건 그녀석인데 이제와서 그녀석이 어찌되었든 내가 한일도 아닌데 왜 우리가 잘못했다는것처럼 이렇게 욕을 얻어먹어야되는건지. 그리고 왜 그녀석이 갑자기 실종되었는지.

 

눈이 아파왔다. 형광등을 계속 쳐다보고있던 탓이었다. 팔을 뻗어 책상위의 시계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새벽 두시였다. 시간이 이렇게 될때까지 멍청하게 옛날 생각을 하고있었다니. 그는 시간을 버렸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옛날 생각을 한번 하고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져버렸다. 공부를 하기엔 글렀으니 자버려야지, 하고 생각하고는 그냥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고 침대위에 도로 누워버렸다.

 

"아.......씨발. 잠이 안와....."

 

생각이 너무 많았다. 몸에서 열이 나는것같은것이 옛날 재미있게 봤던 만화의 엔딩을 보았을때와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잠도 안오는데 그냥 게임이라도 할까, 했지만 관두었다. 괜히 그랬다가 또 키보드케이블 잘릴라.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오늘따라 이 음울한 기억들을 떠올리는것이 그다지 싫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나의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는것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상하게도 흥미가 느껴졌다.

 

태백은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기시작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36 [아.들.이]죽은자의 노스텔지아 [8] 크리켓≪GURY≫ 2008.03.15 725
3435 Synthesis War 하노나 2008.11.03 724
3434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1] 드로덴 2008.06.09 722
3433 [3] file [모비딕] 2007.05.23 719
3432 § Last Soul § 일렌 2007.10.09 719
3431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3] 드로덴 2008.05.11 719
3430 야왕(夜王) [3] 거지의깨달음 2008.09.28 719
3429 Synthesis War 하노나 2008.10.18 718
3428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드로덴 2008.06.19 716
3427 리 라그나뢰크 하하君 2008.08.16 716
3426 야왕(夜王) 거지의깨달음 2009.01.20 716
3425 Synthesis War 하노나 2009.01.22 716
3424 사건 [7] 검은독수리 2007.07.10 715
» 세계의 축 [5] 드로덴 2008.01.20 714
3422 Synthesis War 하노나 2008.11.03 714
3421 19禁 The Magic 1부 Rei 2009.02.12 714
3420 눈 부신 태양 아래 해바라기 클레유아 2007.07.08 712
3419 패러디를 다 알면 용자다! 소설 [2] 백치 2008.08.23 711
3418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1] 드로덴 2008.08.14 709
3417 용족전쟁#1 [4] file 비너스뽕브라 2009.07.30 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