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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오컬티스트 퇴마 사무소

2009.07.29 04:24

Rei 조회 수:847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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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7월의 초입, 거리는 혼잡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내려쬐는 햇빛에 대항하여 반바지와 셔츠를 입고 시원함을 도모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바람은커녕 매연만 줄기차게 불어왔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지각을 하다니...』


내 이름은 강 철(强鐵), 이름 탓인지 주로 쇳덩이라 불린다.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있나? 어릴 적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주 원망했지만, doomsday이후론 원망할 어머니가 사라졌다.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아 넣고 노래를 들어 보지만 기분이 좋기는커녕, 더운 날씨에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니 짜증만 대폭 상승하는 것 같다.


투덜거리며 버스를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한 대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루루 올라탄다. 버스 안에선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버스 타이어가 걱정이 될 만큼 가득 들어찬 사람들 때문에 시원함을 모르겠다.


워낙에 사람들이 많이 탄 탓인지, 특별히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몸이 지탱된다. 덥고, 짜증나고, 땀과 이상야릇한 화장품 냄새 밖에 없는 버스 안에서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다.


한정거장 지날 때 마다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우루루 올라탄다. 지하철이라도 운행이 되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종로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마수(魔獸)가 출현하여 철로를 끊어 놓았다.


초현부(초자연현상관리부)에서 쳐놓은 결계를 재정비 하는 시간이 1시간쯤 늦어져서, 그 짧은 틈을 노리고 마수가 침입 했다고 한다.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흐느적거리며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버스에서 내리니, 복잡하게 움직이는 차 때문에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아마 더워서 그렇겠지.


『오컬티스트 퇴마 사무소라... 어디있는거지?』


호주머니에서 약도를 꺼내 살펴보니 아무리 빨리 걸어도 20분은 걸어야 할 것 같다. 에휴... 한숨을 내쉬곤 늘어진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정신없이 걷다보니, 번듯한... 아니, 유치해 보이는 간판에 'Occultist Shop' 이라는 간판과 '오컬티스트 퇴마 사무소'라는 편액이 걸린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여긴가?』


약도를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은 탓에 긴장을 했다. 넓은 오컬트샵은 기괴한 물건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어서,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1층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자니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여자 한명이 내려왔다.


눈 밑에 기미가 가득한걸 보니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꼬부라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연기도 담배처럼 꼬부라지듯이 피어올랐다. 후줄근한 청바지와 반팔 T셔츠를 입은 여자는 삐뚤어진 안경을 바로 쓰고 게슴츠레 눈을 뜨곤 나를 바라보았다.


『너냐? 이번에 온다는 알바생이?』


『예, 그런데요. 소장님이세요?』


『아니, 난 직원. 그나저나 소장님은 아직 꿈나라에 계신데... 1층 문 잠그고 2층으로 올라와. 』


20대 후반의 여자는 몸을 홱 돌이켜 돌아갔다. 처음 본 사이인데 꼭 이렇게 대해야하나?


어쨌든 계속 1층에만 있을 수는 없어, 문을 잠그고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은 샵이고 2층은 사무실인 것 같았다. 너른 사무실에는 직원용 책상과 손님 접대용 소퍼와 탁자. 소장이라는 사람의 것인 듯 한 책상. 정수기와 그 옆에 잔뜩 쌓여있는 티백. 그리고 대형 에어컨과 벽을 장식하고 있는 각종 부적, 그림 등등.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정상적으로 말하면 '이게 뭐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법한 인테리어였다.


『아무데나 앉아서 기다려. 뭣하면 저 구석에서 누워서 자도 되고.』


방금 전 날 맞이했던 여자는 소장이나 쓸법한 고급책상에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 소장 아니야? 아무튼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간이침대와 이불이 있었다.


『아뇨, 그냥 여기 앉아서 기다릴게요.』


『그래? 맘대로 해라.』


24인치도 넘어 보이는 모니터의 불빛은 커튼이 쳐져있어 어둑한 사무실 한쪽 벽면을 환하게 비추었다. 담배를 뻑뻑 피우며 게임에 열중하는 여자에겐,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컴퓨터 옆에 담배꽁초가 산을 만들어 갈 때 쯤, 3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


게임에 열심인 여자와 마찬가지로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내려왔는지 질질 끌리는 슬리퍼를 신고, 잔뜩 구겨져 쭈글쭈글한 반팔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는 정상적이라면 멋있었을 헤어스타일이겠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엉기고 떡져 추잡해 보였다.


『하암~, 어라 다혜야 쟤는 누구냐? 의뢰인 같지는 않은데.』


『아 몰라요. 소장님이 구인란에 올린거 보고 찾아온 알바겠죠. 바쁘니깐 말시키지 마요.』


『내참, 남의 자리에 앉아서 게임하면서 그런 말이 나오냐?』


『아, 바쁘다니까요! 보스몹 잡는 중이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역시, 저 자리는 소장의 책상이 분명했다. 소장은 투덜거리며 정수기로 다가가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곤 내게 다가왔다.


『으음, 학생이 어제 전화한 알바생?』


『예.』


『사람이지?』


사람이냐고 묻는 걸 보니, 이 소장이라는 남자는 유사인간을 꺼리는 모양이었다.


『예.』


『뭐, 좋아.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도둑놈 같은 녀석들만 아니면 상관없으니까. 오늘부터 일할거야?』


『아... 오늘부터 가능한가요?』


『음... 뭐, 그건 학생 마음대로. 오늘부터 일하면 아침부터 출근한 걸로 쳐주지. 시급은 얼만지 알지?』


『예.』


『그럼 됐어. 일하러 가든지 집에 가든지 학생 마음대로 해.』


그래도 사립 퇴마 사무소라 조금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이없을 만큼 간단하게 면접이 끝났다. 나는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카운터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시급 5600원짜리 일이니 열심히 해야지.


 


『...어째서 손님이 한명도 안 오는 거야?』


네 시간째 카운터 앉아 있었지만, 구경하러 오는 손님조차 없었다.


시계바늘이 6시를 가리킬 무렵, 문이 열렸다. 첫 손님인가!


『아! 철이 오빠, 진짜로 일하고 있네?』


『소미(小尾)잖아...』


반듯한 자세를 잡고 있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하루 종일 카운터에서 기다린 끝에 찾아온 손님이 소미라니...


『에에? 내가 오면 안 돼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학교 끝나고 바로 온 거야?』


『아니, 잠시 집에 들렀다가.』


짧은 핫팬츠를 입은 소미는 9개의 흰 꼬리를 흔들거리며 매장을 둘러보았다. 신기한 물건들에 감탄을 하며 구경을 끝낸 소미가 내게 다가왔다.


『꽤 큰 매장인데 손님이 없네?』


『응. 그러게 말이야. 지루해 죽는줄 알았다.』


지루하던 찰나 첫 놀러온 소미와 수다를 떨고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갔다. 고등학교 2학년인 소미는 착실한 학생인데다, 외모도 예뻐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


『어머나, 구미호(九尾狐)잖아? 그런데 왜 알바생이 두 명이지?』


처음 나를 맞이했던 여자는 단정한 모습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아까의 나른하고 쌀쌀맞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안녕? 난 지혜야. 이지혜, 그나저나 이렇게 어린 구미호는 처음 보는데. 알바생이니?』


이지혜라는 여자가 놀랍다는 듯이 소미의 꼬리를 쳐다보았다. 소미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슬쩍 옆으로 치웠다.


『아뇨, 저는 철이 오빠 알바하는거 구경하러 왔는데요.』


『그래? 그러면 그쪽 학생이 알바생?』


나는 아까와 전혀 다른 태도에 혼란을 느꼈다. 이지혜라는 여자는 착해 보이는 인상으로 자세히 보니 샤프한 인상을 주던 패션안경이 아니라, 온화한 느낌의 검정색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다.


『아, 예... 강철이라고 합니다.』


『반가워. 난 이지혜야. 아까 널 맞이했던 건 다혜인데 내 동생. 애가 좀 쌀쌀맞아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다고 하더라. 너도 그랬다면 내가 사과할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웃고 있는 이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표정을 이해했는지 설명을 해 주었다. 나와 함께 설명을 듣던 소미도 놀란 듯 꼬리를 세웠다.


『우와, 그러니까 한 몸에 두 영혼이 들어있는 거예요?』


아까의 불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감탄한 얼굴을 한 소미가 말했다.


『그래, 한 몸을 두 명이서 쓰다보니까 몸이 조금 혹사당하는 것 같기도 해. 그래도 뭐, 건강에는 별 문제없어. 간혹 며칠씩 내리자곤 하지만.』


난 조용히 뒤에서 소미와 이지혜의 대화를 들었다.


30분가량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지혜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끝을 맺었다.


『흐음, 역시 세상엔 신기한 사람들이 많아.』


『너도 충분히 신기해.』


소미는 입을 삐죽이며 조금 토라진 얼굴을 지었다. 아... 귀여워라.


이후로 8시까지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2층에 올라가 퇴근하겠다는 말을 했다. 소장은 소퍼에 누워서 자고 있다가 잠깐 일어나 잘 가라는 말을 했고, 이지혜는 먼저 가지 말고 1층에서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소미와 함께 1층에서 10분여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이지혜가 허둥지둥 아래로 내려왔다.


『미안해~ 클랜원들에게 인사한다고 좀 늦었어.』


이여자도 게임광인 모양이다. 가게는 손님이 한명도 없고, 소장은 늦잠과 낮잠만 퍼질러 자고, 직원은 근무시간에 게임에만 열중하는데, 이 사무소 어째서 아직 안 망한 거지?


『자, 나가자. 첫날이니까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나와 소미는 이지혜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결을 취하더니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우리 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커다란 가오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와, 언니 소환사예요?』


『그래, 이래봬도 1급 소환사 자격증도 있단다.』


이지혜는 소미의 감탄에 조금 우쭐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커다란 가오리 위에 올라타곤 나와 소미더러 타라고 했다.


『이거 안전한 거예요?』


『물론이지, 거기 뿔만 꼭 잡고 있으면 돼. 그럼 출발한다!』


나와 소미는 앉은 곳 바로 앞에 있는 손잡이처럼 솟아오른 뿔을 꼭 잡았다. 가오리는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미의 안내에 따라 5분도 걸리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소미가 빠르다고 호들갑을 떨자, 이지혜는 손님이 타고 있어서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 거라고 말했다. 가오리에서 소미는 조금 거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멀미라도 난건가?


『집이 꼭 동굴 같네? 그럼 잘 들어가, 언니는 이만 가볼게.』


『예... 잘 가세요.』


이지혜는 손을 팔랑거리며 인사를 하곤 가오리를 타고 날아갔다. 소미를 돌아보니 아까보다 안색이 더 창백해 진 것 같았다.


『괜찮아?』


『아뇨, 토할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걸 타고 다니는 거지?』


소미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바위에 굴을 뚫어 놓은 것 같은 집은 불이 켜져 있어 환했다. 나는 소미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미의 어머니 미호(尾狐)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은 구조가 특이했다. 산에 살던 시절의 동굴이 그리워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비는 방이 너무 많아 하숙집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미호 아주머니의 하숙집은 방세가 대단히 비싸다. 그래도 인기가 많아서 거의 빈방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미호 아주머니와 아버지의 인연이 깊어서 어쩌다 보니 공짜로 지내고 있긴 하지만.


『방세까지 내야 했다면, 얼마나 암울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을 벗어 던지며 침대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