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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단테 백작

2008.07.06 09:54

다르칸 조회 수:82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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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씨는 어느 강변에서 태어났다. 그는 놀랍게도 약간이지만 태어났을 때 부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가장 처음 기억은 강변의 진한 물냄새였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혹은 그의 착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그가 강가와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었단 사실은 분명했다. 그의 옆에는 항상 신체가 건장한 부랑자가 붙어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 부랑자가 단테씨의 아버지이거나 친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본인은 그런 사실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 부랑자는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김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단테씨의 성이 김씨일 확률이 무던히도 높겠으나, 이것 역시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다.


 단테씨의 기억이 확실해질 무렵은 그가 아홉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그 때까지 그는 김씨를 쫓아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안 가본 곳 없이 전국을 주유했고, 간혹 어디서 났는지 모를 배를 타고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등지로 간 적도 있었다. 그가 외국에 갔었던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을 하지 않는데, 그를 아는 이들이 그 때의 일을 물으면 정색을 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 그는 누구에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엔 항상 아홉사 즈음 때부터 시작했다. 그 때는 마침 김씨와 함께 원주를 찾은 때였고, 지독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추운 곳이나 때에 김씨는 항상 그에게 따스한 신문지 뭉치로 만든 코트를 주고, 자신은 개털로 된 점퍼를 입고 다녔다. 그는 항상 단테씨에게 '신문지는 무척 비싼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고, 그 말에 넘어간 단테씨는 신문지 코트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심지어 그는 주위의 이상한 시선조차 부러움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저기가 좋겠구나."


 잘 곳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김씨의 몫이었다. 단테씨는 아직 어렸고, 추운 때에도 잘 수 있는 따뜻한 곳과 눈만 붙여도 입이 돌아가거나, 사경을 헤매게 되는 자리를 구분할 줄 몰랐다. 그들이 잘 곳은 어느 대학교의 오래된 듯한 건물이었다. 그는 단테씨를 데리고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사람도 없음직한 시간이었지만, 지하의 불은 환히 켜져 있었다.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단테씨는 지하의 각 방문마다 현란히 붙어 있는 글자들을 신기해했다. 긴 복도를 몇 번이나 두리번거리던 김씨는 문이 비스듬이 열려 있는 방을 발견했다. 깨알같은 글씨들 외에도 큼지막하게 '영미어문학부'라는 글씨가 써져 있는 방이었다.


 "오늘은 여기가 좋다."


 마치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매처럼, 한껏 고무된 말투로 방을 선정한 김씨는 조심스럽게 방 안을 살펴보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방을 접수했다. 단테씨를 서둘러 데리고 들어가서는 방문을 잠궜다. 바닥은 방바닥처럼 장판이 깔려 있었고, 신발을 벗어둘 곳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방 구석에는 작지만 한명 정도는 충분히 잘 수 있는 만한 담요도 깔려 있었다.


 "그럼 정해졌네, 꼬마씨. 난 이 위에서 잘테니, 넌 어디서든 자."


 김씨는 항상 단테씨를 꼬마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단테씨가 자신의 이름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뭐라 부르든 상관 없었고, 그 주위에는 또래 아이들이 없었던 탓에 꼬마고 불릴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다.


 김씨는 담요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단테씨도 그 미지의 자리에 누워보고 싶었지만, 이미 잡아먹히든 그 자리는 덩치큰 부랑자의 것이 되어 있었다. 드러눕자마자 그는 코를 드드렁대며 잠이 들었다.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잠 든 그는 무척이나 더럽고 흉했으나, 단테씨에겐 평상시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김씨의 옆으로 다가가 그 담요라는 것을 만져보았다.


 "오오!"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람의 살결이나, 꺼끌거리는 신문지 따위와는 비교도 안됐다. 보들거리는 느낌은 그 생전 처음 느껴보는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단테씨는 도저히 그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가끔 그가 부드럽기 때문에 끌어안고 자는 주인없는 똥개보다도 훨씬 부드러웠다. 이런 물건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는 참말로 몰랐다. 그야말로 경이적인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편히 자는 김씨가 부럽고 질투가 났다. 결국 단테씨는 아주 소극적인 복수로써 김씨의 옆에서 담요를 조금씩 빼앗으려고 들었다. 그러나 작고 어린 몸으로 큼지막한 몸을 밀어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마치 혼자 기둥에 대고 레슬링을 하듯이 단테씨는 그 날 자정까지 험상궂게 몸을 이리저리 뒤척혔다. 그러나 김씨는 어김없이 코를 골며 잤고, 지치는 것은 작은 부랑아 꼬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