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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2008.05.06 03:26

드로덴 조회 수:1128

extra_vars1 버스기사 정씨의 화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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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딴딴~굿모닝~ 딴딴딴~굿모닝~]


 


"우음, 음, 음..."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음에 정씨는 눈을떴다. 눈꼽이 끼어 뻑뻑한 눈가를 비비며 일어나자 속옷뿐인 몸에 차가운 공기가 감겼다. 으드드드드... 그는 한기때문에 저절로 떨리는 입술을 달래기 위해 보일러를 켰다. 곧 따듯해지겠지. 창밖에선 아직 이른아침의 푸르스름한 새벽기운이 흐르듯이 새어들고있었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여보~일어났어?"


 


이불을 털고 일어나 정성껏 개어놓고 침실문을 여니 아내가 설거지를 하며 넌지시 아침인사를 건넸다.


 


"응~우리 여보도 잘 잤어?"


 


정씨는 잠이 덜깬 얼굴에 베시시한 웃음을 띠며 주춤주춤 아내곁으로 갔다.


 


"오늘 아침은 뭘까~ 오!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네? "


 


"당신 주말에도 못쉬잖아. 주구장창 밖에나가 교통신호나 살피면서 뼈빠지게 일해주는것도 고마운데 하다못해 이런거라도 해줘야지~"


 


"아웅~우리 사랑스러운 여보야!"


 


정씨는 아내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정겨운 모습이다.


 


"아익, 뭐해~ 밥하고있잖아. 얼른 씻어~"


 


"예예~분부대로 합죠 여보님!"


 


"후후후후.."


 


슬리퍼를 신고 세면대 앞에 선 그는 동년배의 30대 초반 남자와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 주름없는 이마, 핏대솟은 손, 아주 조금 튀어나온 뱃살등등. 웃음이 좀더많고, 금슬이 좋고, 아이들 잘 가르치고 매사에 신중하다는것, 즉 인품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많이 달랐지만. 자는동안 떡진 머리를 감고 등허리에 슬쩍 배인 땀을 한번 씻고 하는동안 잠은 확 달아났다. 낭만적인 아침의 시작이었다.


 


그에게는 열살된 딸아이와 일곱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공부는 어쩔지몰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는것은 신통하리만치 잘했다. 작년 딸아이의 생일잔치만해도 어디서 이야기를 들은건지 본적도없는 언니오빠들까지 와서 축하를 해주지않았던가. 그덕에 정씨는 그날 예상한 지출보다 세배이상을 더 써야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것임에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아들이 밥에서 콩을 몰래 덜어서 숨기는 모습은 정씨에겐 귀엽기 그지없었다. 편식하는게 좋은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것이 먹기싫다고 투정부리는것도 가끔은 정말 귀여운것이다. 거기다 정씨가 궂이 뭐라하지않아도 딸이 어려도 누나라며 요것저것 다 바로잡아주는게 정말 미소짓게되는 모습이었다.


 


한톨도 남김없이 한그릇을 비운뒤, 속옷을 갈아입고 옷을 걸치는동안 그는 이 축복스런 매일매일이 계속되길 바랬다.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신이 아닌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기도같은건 필요없다. 가톨릭이었던 아내도 정씨의 생각에 감탄해 무신도가 되어 살고있다. 이 고달픈 세상에서 믿을 신조차 없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잔인한것이지마는, 정씨에겐 얼마 안되더라도 그 고달픈 세상을 막아내고 신을 믿지 않아도될만큼 보호해줄수있는, 그럴 능력과 힘이 있었다. 시험치러 간 자식걱정에 기도하거나 불문을 외는둥 어쩌는둥 하는것은 다 헛소리다. 누구는 인간의 힘은 한정되어있고 신을 믿어야 그 한정된것 이상의 것을 받을수있다고, 신에게 성의를 보여야한다고 그러고있는데, 신은 애초부터 인간이 기댈것을 찾다가 만들어낸 허상의 존재라는것을 다들 망각하고있는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라면 불심이론이 딱 알맞다. 모든 사물 안에는 부처가 될수있는 마음이 있다고 하던가. 이 세상에 정신이 제대로 되어 성인(性人) 으로 불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이젠 종교를 잡신으로 만들어 팔아먹는 몰지각한 이들마저도 대량 발생한다. 제대로 되었다면 아는것 훨씬 적고 할수있는 일 더 없었던 옛날사람들이 훨씬더 제대로 되었다. 세상은 썩었다. 자신은 운이 좋아 행복한 하루를 맞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완벽하게 만족하는 이는 아마 없을것이다. 정말 만족하면 뭐하러 그깟 돈, 그깟 부에 그리 집착하겠는가? 정말 행복하게 살고싶으면 기대할게 아예없는 불모지에서 혼자 살아가는게 더 좋을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아주 현저하게 떨어질테니까.


 


뉴스에선 오늘 일조량이 많고 더울것이니 선크림이나 모자를 쓰는것이 좋을거라고 충고까지 해주었다. 이쯤되면 정씨도 불만이 없지않다. 소식알려주는 통신매체가 어쩌다가 선크림 발라라마라 이런것까지 얘기해줄정도로 관심사가 넓어졌나. 요구하는 인간이 있으니까 그런것이겠지만 그것보단 그걸 요구하게 만든 세상이 더 문제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든것은 인간. 세상에 대한 믿음이란건 대략 이런것이다:세상은 순수한것이다. 죄스런 인간이 멋대로 지배자라 나서며 살기때문에 타락한것이다. 언젠가 세상은 인간에 의해 타락하고, 타락한 세상은 스스로를 망쳐 모든것을 무로 돌린뒤, 다시 순수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세상이 망해버리는것은 슬픈일이고 정신머리 제대로 된 이들까지 휘말린다는것은 분명 슬픈일이지만 그리될것이라 생각하고 살기에 원래대로, 도로 순수해질 세상을 믿는다는것. 즉...어떤 의미에선 종말을 믿는자다. 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이야기인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를 든것뿐이다. 사실 정씨의 믿음이란게 이정도로 엽기적인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내면엔 이런것이 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것이다. 그래, 하란대로 해주마. 정씨는 차단지수가 제일 높은것을 찾아 얼굴과 팔에 문질렀다. 오늘은 또 어떨지. 좀전까지의 불쾌감을 싹 잊고 그는 즐겨쓰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나섰다.


 


그는 버스기사다. 고로 일단 운행을 할 버스가 있는곳까지 가야한다. 직업이 운전사인데 차를 타고 일터로 간다는게 참 이상한일이다. 버스 한대를 주차해놓을정도로 집이 넓고 버스를 다니게 할정도로 길넓은 동네에서 산다면 있을수도있겠지만.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그는 17번 버스를 몬다. 토요일. 상업지구로 향하는 버스라서 상행노선만 되면 곧잘 만원이 되버리기가 쉽상이다. 아침엔 출근하는 손님들, 통학하는 학생들로 북적일테고 오후엔 놀러나가는 사람들로 즐비할 버스. 활기차다. 먼저 나와서 운행하던 동료와 바꿔앉고나서 시계를 보니 일곱시였다. 퇴근은 다섯시정도가 될것인가. 하행노선 고개앞 역에서 버스를 세우자 교복차림의 학생 몇명이 들어왔다. 카드를 찍고 올라서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너무나도 무서운 눈이라고 해야할까. 의도하지않든 의도했든 상대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얼굴이었다. 건장한 체구와 안경밑으로 치뜬 매서운 눈은 그의 고개를 확 돌리게만들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거나 하는것은 별다를게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것을 할때조차도 그 무서운 외모는 사그러들지않았다. 슈퍼앞 역에서 소년이 내리는것을 보고 그는 그나마 안도하는 눈치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태우고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기사식당에서 된장국을 훌훌 넘기고 매콤한 파전 몇개를 뜯으며 TV를 보는것은 제법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있을수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파전때문에 값이 좀더 붙은탓에 만원을 깨고 나온 정씨는 짤랑거리는 동전 무더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갑이 두꺼울라면 종이로 두꺼울것이지 동전으로 묵직해서야 원. 식당에 세워둔 버스에 다시 오르며 그는 혀로 입을 한번 다셨다. 기사식당이라도 맛집은 역시 좋다.


 


그는 상행노선을 타고 고개앞에 버스를 세웠다. 날은 기상캐스터의 말대로 덥고 햇빛이 쨍쨍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던 아침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5월인데도 이런다고 생각하니 몇년전의 5월이 그리워 쓴웃음을 지었다.


 


'....'


 


버스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오는것은 아침때의 그 소년이었다. 시험기간이라고 주말에 공부하는것을 보면 분명 착실한것일텐데. 행동이 여실히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뭐라 말못할 불쾌감 비슷한것을 느끼었다. 거기다가 자리가 없었는지 자기 뒷자리에 앉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정말 불안했다. 역을 두어개 정도 지나자 초등학생 열몇이 우르르 올라탔다. 좌석은 없었어도 넉넉했던 버스는 순식간에 답답해졌다. 타는 사람마다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정씨의 모습은 모범적이었고, 그 소년이 탈때도 그는 인사를 건넸다. 뭐라고 넌지시 인사 비슷한것을 되받은 느낌이었지만 확실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그게 뭔 대수인가. 그는 에어컨을 켰는데도 버스안이 묘하게 더운느낌이 들었다. 초등학생 여럿이 공간이 없었는지 앞에 몰려 서있었다. 그는 웃고 떠드는 초등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가니?"


 


"수영장!"


 


"어디 수영장."


 


"어...어디였지?"


 


"사회체육센터 아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녀석들 어디로 가서 어디로 내리는건지 알기는 하나. 거기다가 노선표근처에 사회체육센터는 없었다. 실내체육관이라면 또 모를까, 그나마 거기에 수영시설같은건 전무했다.


 


 개중 몇은 눈치없이 에어컨바람을 맞으려고 서로 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친 사람이 몇인지. 같은 아이들이라도 상황에따라 귀여울수도 있고 못마땅해보일수도 있는것이다. 당연히 지금은 못마땅하다. 그래도 다치는것은 자기들 탓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엑셀을 밟았다.


 


"그래 너덜 많이 쐬어라.."


 


뒷자리의 소년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푸념하듯 중얼거리며 머리위의 에어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바꾸자 곧 소년에겐 한줄기 바람도 불지않고 대신 옆에 있던 애들에게 바람이 갔다.


 


"아 시원해-"


 


시원하다고 하면 하지 굳이 말까지 할필요있을까. 애들이니 그런것이다. 그나마 욕같은것도 안하고, 정씨에게 있어서는 보기힘든 착한 승객이다. 뒷자리의 소년도 그렇다. 더운 날씨에 애들을 보고 조그만 에어컨바람 너덜 쐬어라 하고 딱 돌려주는것을 보아라. 그는 그날따라 없던 웃음을 지었다. 소년은 에어컨을 돌려놓은뒤 나이에 안맞는 쓴표정을 지으며 들릴락말락 하는 중얼거림을 시작했다. 원래 저런성격인가. 어쩌면 장애인지도 모르겠다. 모세로 삼거리를 오르던중 소년이 일어섰다. 이제 내리려는것이려나. 가까이 앉아있던 아이들에게 손짓을 하며 양해를 구해 일어나고, 뒤를 살피더니 그는 정씨옆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사람이 많으니 앞으로 내릴게요."


 


그것은 꽤나 정많은 목소리였다. 톤이 너무 낮아서 듣기는 어려웠지만. 그래서인지 목소리는 컸다.


 


"앞으로?"


 


"예, 사람이 많으니까 앞으로."


 


광명시청에서 버스를 세우자 소년은 앞문으로 내려서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반대로 돌아 횡단보도앞에 섰다. 그러고보니 있군, 학원이. 아마 저기에 가는것이리라. 하지만 고등학생 가르키는 학원도 있었던가? 크게 상관은 없다. 그의 화창한 하루에 모처럼 웃음을 짓게한 손님은 내렸다. 이제 남은 몇시간을 또 때워야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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