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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오컬티스트 퇴마 사무소

2009.07.31 08:10

Rei 조회 수:648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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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 D그룹의 유령


 


7월의 초입,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내려쬐는 햇볕에 대항하여 반바지와 셔츠를 입고 시원함을 도모해 보았지만 쓸모없는 노력이었다. 건물 안은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어 긴 옷을 입어도 추위를 느낄 것 같았다.


『흐음……. 벌써 일 년이나 지났나.』


강철은 점심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오컬티스트 퇴마 사무소의 개업일도 일 년이 지났다. 요즘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손님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너른 매장을 혼자 도맡아 관리 하자니 몸이 두 개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다혜 누나, 누나도 그런 면만 먹지 말고 밥 좀 드세요!』


『시끄러! 바쁘단 말이야!』


다혜는 신경질을 부리며 왼손으로는 젓가락질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끊임없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Exorcist라는 글로벌RPG에 빠진 다혜는 고수 축에 속하는 유저였다. 한수민 소장도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다혜에게 말했다.


『다혜야, 게임은 좀 네 자리에서 하면 안 되니?』


『그럼 컴퓨터 바꿔 주던가요. 내 자리는 겨우 워드나 돌아가는 고물이면서!』


『그거야……. 네 월급으로 바꿔도 되잖아?』


『소장님도 시끄러워요! 집에 돈 보내고 나면 얼마나 남는다고.』


소장과 강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혜의 월급은 정확히 833만원.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송금하는 돈은 반절가량인 400만원. 그렇다면 남은 433만원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소장님, 그냥 저희끼리 먹어요. 어차피 저녁 되면 지혜누나가 밥 먹을 텐데요 뭘.』


『그래도 그렇지…….』


소장은 걱정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강철은 나무젓가락을 쪼개고, 볶음밥을 향해 수저를 놀렸다.


점심을 다 먹은 강철은 느긋하게 책을 꺼내 들었다. 올해로 국립 초자연현상 연구대학(國立 超自然現像 硏究大學) 3학년인 강철은 공부할게 많았다. 소장은 강철의 책을 힐긋 바라보곤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결계야?』


『예.』


국내에서 몇 안 되는 S급 마법사인 한수민 소장은 유럽에서 마법을 배운 정통파 마법사였다. 최근 들어 풍수와 결계에 관심이 많아 졌는데, 국지적인 결계보다 지혈(地穴)을 이용한 지역형결계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까닭이다.


『흐음, 확실히 대학교재가 정리가 잘돼있네.』


강철의 책을 빼앗다시피 하여 책을 뒤적거리던 소장은 곧 책을 돌려주었다.


『별 다른게 없던가요?』


『그래, 정리가 잘되어 있다는 거 빼곤 똑같네. 우리나라의 비술이나 비의는 일제강점기 때 거의 소멸했으니까. 민간신앙은 별 도움이 안 되고……. 그래도 풍수나 선도에 관련된 건 제법 남아있긴 하지만 역시 중국보다는 못해. 중국은 진짜배기는 내놓지 않고 버티고 있지. 유럽 쪽에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매직아카데미는 그렇게 폐쇄적인 곳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이방인도 비교적 쉽게 마법을 배울 수 있지.』


소장은 어깨를 으쓱하곤 말을 마무리 지었다. 강철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책으로 눈을 돌렸다.


1시간 30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간 강철은 가게 문을 열었다. 제법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오컬티스트 샵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 왔다.


강철은 쉴 새 없이 설명을 하고, 계산을 했다. 주인인 한수민 소장이 유럽의 매직아카데미 출신인 까닭에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 자주 들어왔기에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힘들다…….』


카운터 의자에 앉은 강철은 피로에 허덕였다.


'작년에는 알바비를 거저 타 가는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그때 일 안한 것 까지 하는 느낌이야.'


시계바늘이 6시를 가리키자 매장 안은 조금 한산해졌다.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물건 구경만 할 뿐 구입을 하지는 않았다.


『철아 열심히 하고 있니?』


지혜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왔다. 강철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예, 오늘은 클랜전 없어요?』


『없긴, 물론 있지!』


RPG광인 다혜와 달리 지혜는 FPS를 좋아했다. 게임내 클랜원들에게 지혜가 오컬티스트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지혜의 클랜원 몇몇이 실제로 사무소에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냥 너 열심히 하라는 말 하러 왔어.』


『아, 예……. 좀 도와주시면 안돼요?』


『어머, 이런 편한 일에 시급을 5600원이나 받으면서 그런 말이 나오니?』


강철은 찔리는 구석이 있던지, 자신감 없는 말투로 되받아쳤다.


『누나는 월급이 833만원이잖아요.』


『억울하면 너도 퇴마사나 해보렴.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직업이란다. 특히 사설 퇴마 사무소는 더 그렇지. 잔챙이들은 초현부에서 다 처리해 주지만 진짜 위험한 것들은 우리들이 맡으니까. 그리고 833만원이 받으면 뭐하니? 부모님한테 송금해드리고 일 할 때마다 쓰는 물품 값이 좀 비싸야지.』


『네, 네. 알겠습니다요. 에휴... 저도 졸업 하고나면 여기로 취직이나 할까요?』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3급 워록(warlock)인 철이가? 글쎄……. 월 200에 어시스턴트정도라면……. 소장님도 S급 마법사고 나도 1급 소환사인데 철이로는 힘들지 않을까?』


『누나, 너무 정곡을 찌르는 거 아니에요?』


지혜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8시까지 일을 끝마친 강철은 소장에게 퇴근 하겠다는 말을 하곤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 나도 누나처럼 타고 다닐 수 있는 마수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강철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러움을 가득 담아 중얼 거렸다. 다혜와 지혜의 마수들은 계약하기 힘들거나 거의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긴 강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현부가 몇 겹으로 쳐 놓은 결계 때문에 지하에서 마수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못미더워 하다가, 차츰 지하철 이용객이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이전과 비슷해졌다.


지하철 내부 곳곳에도 부적들과 보호 마법진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지하철보다 주문이 더 비싸다는 게 사실인가?'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초현부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다. 20분가량 지하철을 탄 강철은 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왔다. 지하철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주변의 건물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역에서 내려다보면 저 멀리 숲처럼 우거진 나무와 커다란 바위처럼 생긴 하숙집이 보였다.


천천히 하숙집을 향해 걷다보니, 맞은편에서 목욕탕에 다녀온 소미가 나타났다. 막 목욕을 끝마친 듯 머리칼과 꼬리에는 물기가 촉촉했다.


'그러고 보니, 소미는 지하철에 타면 꼬리를 만지는 치한이 많아서 싫다고 했던가.'


구미호인 소미는 다른 사람이 함부로 꼬리를 만지는 것을 대단히 싫어했다. 강철은 손을 흔들어 소미에게 인사를 했다. 소미도 강철을 발견하곤 손과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했다.


『목욕 갔다 오는 길이야?』


『응, 목욕탕에 갔는데 꼬마들이 자꾸 꼬리를 잡아 당겨서 좀 기분이 나빴어.』


『아예 여우로 변해서 씻지 그래?』


소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면 제대로 씻기 힘들단 말이야. 아무튼 애들이 개념이 없어서, 왜 남의 꼬리를 함부로 만지는 거지?』


강철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곤 소미와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도착한 소미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둥근 거실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커다란 TV를 보고 있었다. 소미와 강철이 들어오자, 저마다 소미를 보고 인사하기에 바빴다. 소미는 하숙집에 오래 지내 친한 몇 명에게만 인사를 해주었다.


『소미, 인기 많네?』


『시끄러워요 오빠.』


소미는 강철을 찌릿, 노려보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강철은 곧장 식당으로 걸어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든든히 배를 채운 강철은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같은데 살더니 취미도 닮아가나?'


강철은 모두들 똑같은 TV프로그램에 열중 하는 모습을 보며 아리송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계 교과서를 펼쳐, 한동안 커다란 책장을 펄럭이며 공부를 한 강철은 전자시계가 12:03분을 가리키자 기지개를 켜곤 졸린 눈으로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