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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트레델 1, 04-01

2008.09.25 18:12

백치 조회 수: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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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델






[Deleth:  Bor Za`aq] 1, 04-01






#1 . 계약의 피, 피의 안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뒷목에서부터 머리까지 전해지는 아찔한 통증이었다. 그녀는 시들시들한 담쟁이가 휘감은 기둥 옆으로 나란하게 배치된 의자를 보고 나서야 이곳이 공원의 쉼터임을 알게 된다. 검푸름으로 달빛을 제외한 모든 빛이 죽어버린  어둑한 모래 터와 잔디와 경보를 위한 거리. 바람이 거리의 표면을 따라 활동하여 흐르고, 흐름은 잔디를 따라 살랑거린다. 쉼터도 밤바람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평화스러운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심각함에 가득 찬 그녀에게도 서늘하고 마른 바람이 살짝 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죽었어야 마땅할 사고를 당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문제의 답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님을 믿어보려 해도 불안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는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점진적으로 커지는 발자국소리가 그녀의 귀로 전해졌다. 그녀는 공원의 울타리를 봤다. 우측 길에서 움직이는 한 아이. 아인 벌이 꽃 위에서 맴돌 듯 공원 주위를 배회하는 것 같았지만 쉼터로 다가옴에 용무가 그녀에게 있는 걸 짐짓 알 수 있었다. 정체하는 곳은 짐작한 대로 그녀의 옆이다. 아인 슬쩍 그녀의 옆에 앉아 앞을 주시하고 말했다.




“어때? 다시 태어난 기분. 청미겸”




얼기설기 엮인 담쟁이가 윗 기둥들과 함께 달빛을 막아줘 어두운 그늘이 차도 미미한 빛은 틈을 비집어 아이의 일부분을 힐끗 비추고 있다. 걸친 빛. 노랗다 못해 밝은 아이의 머리칼을 도드라지게 한다. 그 지나친 도드라짐은 흉흉해 보이기까지 하다.




“누구니 넌?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알아서 뭐해, 『내가 널 알고 있다』로 의미 있지 않아?”


“그렇구나, 그 쪽의 명령을 받고 온 거구나.......”




생각은 포기한 상태지만 심경은 요동하고 있다. 미겸이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절대로 피신하고 자신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 말한 선생님의 충고가 생각나도 어찌하나. 결국 ‘규율’에서 벗어난 자를 즉각 처리하는 ‘집단’의 처방이 도둑같이 다가옴에 무력하게 맞이해야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선생님도 바로 처리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혹여나 생길 일말의 가능성, 1%를 말해준 것이다. 믿지도 않았지만 현실은 이미 1%를 대면시켰다.




“히이.”




미겸을 보고 살며시 웃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란 머리, 하얀 복장 아이. 미겸의 앞에 서서 아기 같은 작은 손으로 미겸의 볼을 쓰다듬어 온기를 스미게 했다. 하지만 볼에 스미는 것은 온기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 숨겨진 것은 온기를 가장한 불길한 감각, 불길한 감각은 피부를 파고들어 감춰진 본능과 가라앉아 있던 노이즈의 의식을 감응시킨다. 겹치는 악몽과 절규소리. 의식을 잃은 미겸은 긴 머리를 힘없이 숙이고, 의자 밑에 숨어있던 귀뚜라미는 더듬이를 배꼼 내밀어 더듬더듬 거리다 ‘찌르르’대며, 시멘트 바닥의 낭자한 잎 더미들은 서로 서로 스쳐 ‘바시락’ 거렸다. 언제까지나 조용할 줄 알았던 상태는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졌다.




“억어억, 억억 끄억”




구역질이 들린다. 의자 아래로는 무엇도 쏟아진 것이 없는데, 다른 여타의 소리가 구역질로 인해 숨죽여 두려워하고 피신한다. 재잘대던 귀뚜라미도, 노니던 낙엽도, 그 울림을 숨죽여 두려워하고 피신한다. 미겸은 혹한酷寒을 맞은 마냥 몸을 떨면서 아이의 목을 양손으로 힘껏 죄어 구역질하면서 운다. 상식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 공포와 고통이 서리는 것이 당연해야 할 아이가 일그러진 목의 상태로 평온하게 웃고, 미겸은 오히려 앞서의 것을 짊었다. 흐느낌과 버물어진 잦은 독백은 음의 크기를 더해가며 슬픔과 절망을 표출한다.




“죽.,,싫    어.      죽 싫.  죽기 싫”




평온히 미겸을 바라보는 물기어린 아이의 눈이 잠시간 지긋하게 감다가 뜨자 확연히 샛하얀 흰자위, 흰자위 심어진 검정색 동공은 대상을 생물로써 인식하지 않는 시선으로 무감정하게 돌변해있다. 그런 칼날보다도 날카로이 벼려진 눈총이 행동을 시작하려 하자 목을 조르던 손은 그 섬뜩한 느낌에 질려 더욱 더 목을 조르고, 엉망진창으로 울어 눈두덩 주변이 붉어지는 것으로 모자라, 이는 입술을 씹어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생에 대한 발버둥을 아이는 보며 차가운 시선과 행동을 거두고 목 조름을 멈추길 묵묵히 기다리니 미겸의 격정은 서서하게 사그라진다. 입술에서 흐르던 짙은 암적색 꿀이 마르고 지나친 출혈로 미겸은 힘이 빠져 진득한 웅덩이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는 제 목에 깊게 눌린 자국과 생채기를 쓰다듬곤 말한다.




“나중에 올게, 그땐 준비해줘”




금발머리 아이는 공원을 벗어났다. 기절한 채 싸늘하게 누워있던 미겸은 어둑한 밤 동안 쓰러져 있다, 에오스가 하룻 일을 준비할 시간 돼서야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리는  공원 주변을 벗어나기 위해 달음박질친다. 갈색 겉옷은 왜 피를 흠뻑 먹었는지 모르고, 아랫입술은 왜 헤져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당장의 생각은 집단의 손을 잠깐 벗어날 기회가 생겼다는 것과 오해하기 좋은 모양으로 옷에 피가 번져있다는 정도다. 미겸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주인을 떠올렸다. 옷의 주인이 이 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되자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실소했다. 허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만난다고 했던가, 하필 미겸의 집으로 가기 위해 지나칠 수밖에 없는 후배 집 근처 잠깐의 구간에서, 등교 길의 후배와 만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앗!”




약간 얼뜬 표정과 손가락의 가리킴이 바보 같아보여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마음 같아선 아는 척을 해야겠지만 자신과 더 이상 관련되면 그와 동생을 곤경에 빠트리게 됨으로 미겸은 도망치는데 주력했다.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담, 페인트가 녹아내린 담, 붉은 벽돌의 담을 몇 번이나 넘었는데도 끈질기게 따라온다. 그렇지 않아도 무리하면 통증이 심해지는 심장을 터지게 해 죽일 작정인가 싶었다.




“허억, 어억, 흐으억 헉...헉”




담 없는 2층 집의 개방된 계단 구석. 그 곳에서 웅크리고 숨을 헐떡대니 미겸은 기억 속 숨바꼭질이 떠올랐다. 지금은 후배에게 내어준 집에서 어머니와 가끔 했던 숨바꼭질. 숨으면서도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이 어렸을 때처럼 드는 건 왜일까. 술래가 된 후배가 자신 옆을 지나가서 멀리 떨어지는 걸 본 후에야 안도했다, 아니 안도하는 줄 알았다. 가져서는 안 될 아쉬움과 섭섭함이 안도감을 훌쩍 넘어 넘친다. 눈물짓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게 한다.




“천치네”




안전한 걸 확인하고 구석을 나와 겨우 몸을 이끈다. 다행하게도 의식을 차린 새벽부터 지금동안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미겸의 아파트는 산 위 중턱에 개발되어 있어 가파른 오르막을 이뤘다. 아파트 3동 다 달아 계단을 오르려 했는데, 이사 오고부터 계속 고장이었던 엘리베이터가 미겸이 없는 사이에 고쳐져 있었다. 폐 아파트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고쳐졌다는 의외의 사실에 놀란 한편 힘겹게 오를 필요 없이  808호 앞에서 도착한 것으로 인생의 운이 다할 날이라고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뜨거운 물을 마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차 항시의 습관을 중얼거렸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냐, 미겸아”




언제나처럼 울리는, 방의 메아리 대신 익은 얼굴, 익은 말투가 날 반겨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자주 흘리지 않는 눈물을 또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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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소설쓰는게 이상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