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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The Magic

2007.07.06 20:04

Rei 조회 수:642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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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때가 아마... 맞아 당신과 처음 만난 그 해였어. 난 그때 기사 서훈식을 받은 후 당신을 페어 레이디(Fair Lady)로 선택한 다음 당신에게 청혼했지 음, 지금 생각해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어떻게 했나 몰라. 아무튼 난 그 이후 잠깐 지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 젊은 시절의 치기인가? 아무튼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아마 남쪽으로 갔던 것 같아. 그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여행을 하던 중 ‘그녀’를 만났어. 아니 그 소녀라고 해야 할까? 이제 갓 열한 두어 살... 아무튼 그녀는 악마가 씌었다면서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있었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거든, 아마 단순히 그 사실만 가지고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녀는 아직 사리분별을 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아서, 자신이 읽은 마음을 그대로 말해 버린 거야. 자신만이 가지고 있던 비밀들. 웃는 얼굴을 하고선 속으로 욕하는 사람들. 그녀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대로 말해 버렸던 거지.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그녀를 꺼려하고 나중엔 돌까지 던지며 쫓아냈지. 그리고 이르니아에서는 그런 사람을 잡아 신전 같은 곳에 넘기면 악마를 잡아 왔다고 하여 큰 포상을 내려주는 게 일반적이야. 그래서 난 그녀를 우연찮게 발견한 다음 그 자리에서 그녀를 잡아 수도로 데려왔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뭔가를 주워 먹는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녀가 악마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잡아 갔을 때 돌아올 포상에 눈이 멀어버렸어. 아무튼 반항이 심한 그녀라 힘들게 수도로 데려와 신전에 넘겼지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이 ‘폭풍의 기사’인가 하는 유치한 칭호였던 것 같아. 아무튼 그 후에 당신에게 청혼 했으니 유치하긴 해도 도움은 됐었나? 그 후로 내가 당신과 결혼 한 다음 마리가 2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그녀가 신전에 넘겨진 후 3년이 조금 못되었을 때였어.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직자가 한명 찾아오더니 나더러 그녀가 악마라는 것을 증언해 달라는 것이었어. 자백은 받아 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내 증언이 필요하다더군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라 신전으로 갔지, 그리고...』
니스는 잠깐 말을 멈추고 가볍게 목을 축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신전 지하에 있는 고문실 이었어. 그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 안에 들어가 내가 잡아온 그녀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더군. 내키지 않았지만 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보았어, 그건, 그건, 그건... 후우,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 모습은...』


니스는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그 때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역한 비린내와 오물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니스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팔과 다리가 없이 몸뚱이만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끔찍했다. 온 몸이 칼자국으로 뒤덮여 있었고, 유방 같은 것은 진즉 잘려 나간 듯싶었다. 게다가 몸에 묻어있는 가루들은 분명 고통을 배가시키기 위한 소금과 고춧가루들이었다. 한쪽 귀와 눈, 혀를 남겨둔 것은 무언가 보고 듣고 자백을 받아 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죽어가는 흐릿한 눈빛으로 니스를 잠깐 바라보고는 사자(死者)가 생자(生者)로 부활하듯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너, 너, 너 야이 개-자식아!』
그녀의 눈은 광기로 뒤덮인 채 쉬어터진 목소리로 니스에게 욕설을 퍼 부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응? 이 악마 같은 개자식아!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죽여 달라고 했는지 알아?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기에 이런 곳에 날 팔아치운 거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지내면서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 넌? 이곳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더라, 폭풍의 기사가 악마를 잡아왔다고, 대체 누가 악마라는 거지? 이 개자식 히히히, 그냥 죽고 싶었어. 여긴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더라? 생살을 찢어 근육을 도려내는데 다음날이 되면 말끔히 나아 있는 거 있지? 응 넌 그런 기분 알아? 지옥 같은 고통이 한번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 된다는 거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그래, 이 지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그놈들이 시키는 건 모조리 했거든. 개처럼 기면서 발을 핥으라면 발을 핥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 단지 이 지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단 말이야! 그리고 어제 내가 내일 저녁에 화형 된다는 걸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넌 모르겠지, 히히히 난 여기서 늙어 죽을 때 까지 고문을 받을 줄 알았거든? 응? 넌 안타깝지? 악마를 좀 더 괴롭히지 못해서, 신의 이름으로 정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난 말이지 정말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어, 네놈 아내와 아들딸년이 나처럼 이곳에 끌려와서 제발 죽여 달라고 빌면서 그냥 빌어서는 안 되겠지, 내가 한 것과 똑같이 애걸해야 해 이 개자식! 지옥에 가서도 네놈이 울부짖는걸 보기 위해서 기어올라 올테다!』


『여보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보여』
『아, 아 괜찮아. 아까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아무튼 그 모습을 본 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그런 짓을 한 내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어서 죄책감에 시달리던 도중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참을 수 없어서 도망 친 거야. 그녀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니스는 말을 마치고 온몸에 힘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저주는 아직까지 귓가에 맴돌며 니스를 괴롭히고 있었다. 니스는 레이를 보살펴 주는 것이 그녀와 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레이가 우리를 따라 온다면 반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왜 반대를 하겠어요? 레이만큼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따라 와 준다면 오히려 고맙죠.』
슈리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미소가 죄책감에 시달리던 니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레이는 집으로 돌아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니스와 집사의 대화를 들어보니 니스는 귀족인 모양이다. 귀족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는 나하로를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모양이다. 레이는 진지하게 시에나가 올 동안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 좋을지 니스를 따라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니스를 따라 가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그것은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 큰 역할을 했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니스를 따라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참동안을 골똘히 생각한 뒤 레이가 생각을 마칠 즘 시에나가 돌아왔다. 레이는 확실히 생각을 전한 뒤 시에나에게 니스의 제안과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와! 그럼 우리 도시로 가는 거야?』
『응. 시에나만 좋다면, 네가 반대 한다면 난 여기 있어도 상관없어』
『응응, 아냐! 아냐! 난 오빠 말대로 니스 아저씨를 따라갈래!』
레이는 시에나가 니스의 제안이 나들이를 같이 가자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튼 반대는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그럼 언제 가는 거야?』
『아마 비가 그치면 간다고 했으니까 이르면 내일이라도 출발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짐을 정리해 두자』
집안에 짐이 될 만한 거라곤 옷가지 정도밖에 없었다. 집안에 있는 옷들을 몽땅 싸 놓고, 침대 밑에 숨겨둔 돈 상자를 꺼냈다. 몇 달 동안 조금씩 모은 돈이지만 쓸데가 거의 없어 월급을 받으면 작은 상자 안에 넣어 두었는데, 오랜만에 꺼내어 보니 꽤 묵직했다.
『음... 23실버 74코페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상자를 닫고 다시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딱딱한 빵과 야채수프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그동안 폭우가 내렸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날씨가 맑게 개어 있었다. 시에나는 일찍 일어나 하보레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하러갔다. 하보레는 갑자기 떠난다는 시에나의 말에 섭섭했지만 잘 가라고 했다.
모두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마차에 올라탔다. 집사는 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8인승마차를 가져왔기 때문에 꽤 넉넉했다. 마차가 막 출발하려 던 차 어제 묵었던 성직자 청년이 급히 뛰어왔다.
『이봐요!』
니스는 잠시 멈추라고 말한 뒤, 청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당신 혹시 수도 쪽으로 가는 겁니까?』
『수도 쪽이 아니라 수도로 가는 거요』
『오! 잘됐군. 그럼 좀 태워 줄 수 있습니까? 성직자를 태운 행운의 마차는 신의 가호를 받을테니 수도로 가는 동안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니스는 성직자의 말에 저 청년을 태웠다가 재앙이 내리지나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마침 한자리가 비었기에 흔쾌히 승낙 했다. 서로 다른 8명을 태운 마차는 천천히 수도를 향해 움직였다.


『이봐요 당신.』
점심을 먹기 위해 잠깐 마차에서 내린 일행은 마부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풀밭에 앉아 있었다. 레이와 시에나는 음식 준비를 거들기 위해 물을 뜨러 갔다. 청년은 아이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니스에게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요?』
『어디선가 본 듯한데. 혹시 술집에서 돈 떼먹고 도망간 적 있습니까?』
니스는 이 황당한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아니, 그런 적은 없는데. 혹, 폭풍의 기사라고 들어봤소?』
『폭풍의 기사?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아! 데빌헌터(Devil Hunter)?』
『데빌헌터라니 그 웃기지도 않는 이름은 뭐야 대체.』
『어어, 당신이 그 유명한 데빌헌터였다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악마가 쓰인 소녀 한명을 목숨을 걸고 잡아서 신의 품으로 돌려보낸 이후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저주를 풀기 위해 지옥으로 악마를 잡으러 갔다가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니스는 청년의 말을 들은 뒤 잠시 정신적 공황에 시달렸다.
'아니 저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는 대체 누가 지어낸 거지?'
니스는 거짓으로 얼룩진 헛소문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청년에게 단지 번잡한 곳이 싫어 외진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청년은 굉장한 영웅담을 기대했던지 니스의 말을 들은 후 실망한 기색으로 들판에 드러누웠다.
『쳇, 재미없군.』
'재미없는 이야기일 뿐인가.'
니스는 청년의 혼잣말에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