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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Dark Ages

2008.07.28 02:31

Bryan 조회 수:684 추천:3

extra_vars1 Episode 2. Scotch 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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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도시. 시계탑과 가로등은 비에 젖어있다. 아직 어둠이 깔린 시간, 해는 지평선 너머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인후는 고인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드는군. 인후는 혼잣말로 늘 그런 소릴 뇌까렸다.


전신주에 오른 까마귀는 오늘도 썩은 시체의 살점을 쪼아 먹고 있다. 인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텁텁한 새벽 공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역겨움이 서려있다.


필시 시체 썩은 냄새일 테지. 인후는 동시에 사체에 들끓는 구더기 떼를 연상시켰다. 처음 그 악취를 접했을 땐 몇 날 며칠이고 식음을 전폐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네온 불빛으로 물든 거리. 인후는 환락가를 걸었다. 아스팔트 위를 걸으면서 솟구치는 이 고독감, 외로움, 공허(空虛). 그래도 불행 중에 다행이라면 이곳엔 먹을거리가 넘친다는 것이다. 환락가의 끝. 인후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회색빛의 칙칙한 빌딩이 세워져있었다.


인후는 옥상에 올라갔다. 아직 새벽의 안개는 가시지 않았다. 안개 속에 가려진 도시는 장관이었다. 주인 없는 도시는 마치 하나의 전시된 유적(遺蹟)을 연상케 했다. 인후는 긴 숨을 내쉬며 옥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암흑시대 전의 세계는 어떠했을까. 검은 머리의 사내, 인후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그리곤 자연스레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는 것이다. 인후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인후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새벽의 안개 속으로 뻗어나갔다. 인후는 늘 그러했던 것처럼 의자 옆에 놓인 망원경을 들었다. 적외선 망원경은 가시광선 덕분에 안개가 낀 날에도 유용했다. 인후는 항상 이 시간만 되면 이곳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었다. 일종의 경비와 정찰인 셈이었다. 인후는 매일 이 작업에 착수할 때 마다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악마를 발견한다손 치더라도 대항할 무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도시를 포기하고 도주하는 것이 그의 최선책일 뿐이었다.


“젠장, 사람인가?”


악마가 냉혈 생물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광선 안에 들어온 무리는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저 자들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들은 분대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군대의 모습 같기도 했으나 어쩐지 꺼림직 하였다. 하나같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기괴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뿔이 달렸거나, 가시 같은 것이 몸에 튀어나왔거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인후는 직감적으로 악몽이 닥쳤음을 알았다. 인후는 다급히 망원경을 챙기고 옥상을 내려왔다. 그 다음엔 상가를 개조한 자신의 아지트로 들입다 뛰어갔다. 무기라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차에 실은 다음, 담배 수십 갑과 약간의 보드카를 챙겼다. 식량도 빠트리지 않았다.


인후는 최대한 그들과 멀어지기로 했다. 도시를 빠져나갈 생각도 했으나 이미 익숙해진 곳이었다. 도시는 그만의 삶이 터전이 된지 오래였다. 몇 년째 바깥 세계는 구경도 못해봤다. 또 어떤 두려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후는 수로가 통하는 지하철로 향할 생각도 했지만 그것 또한 위험천만했다.


지상에서야 구울이나 좀비들을 모두 전멸시켰다지만 지하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도시에 정착한 이후 한번 돌아본 것 빼고는 말이다.


인후는 마천루로 향했다. 그래, 그곳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어차피 이곳은 도시다. 인간 한 명이 숨어있을 곳은 지천에 널려있다. 그들이 무슨 수로 나를 찾겠다는 말인가.


 


“서둘러라!”


남자가 소리치자 그의 주위에 있던 자들은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괴기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모두 마수를 흉내 낸 것들이었다. 개중에는 인간의 머리를 꿰뚫은 창을 달고 다니는 자도 있었다. 악마 숭배자…. 인후는 그런 게 있다면 꼭 저런 모습이려니 생각했다.


인후는 마천루의 전망 좋은 곳에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저격 총의 스코프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망원경보다는 저격 총이 안심이 되었다. 그나저나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스코프 안에 들어올 정도라면 생각보다 가까이 있던 셈이었다. 게다가 몇 년 만에 만난 인간들이 악마 숭배자였다니…. 인후는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내심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숭배자들의 모습이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자 인후는 저격 총을 거뒀다. 그리곤 총신이 긴 저격 총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쉰다.


새벽의 안개는 서서히 걷혔다. 해가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일출로 인해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숭배자 무리는 검은 사제복을 선두로 광장으로 모였다. 마침내 그들은 사제복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선 그들의 모습은 사뭇 엄숙하기까지 했다.


“악마 왕국의 제후시여….”


사제복의 노인이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노인은 주문을 외면서 동시에 피로써 방진(方陣)을 그렸다.


“…탐식과 탐욕, 시기와 나태, 불의와 분노, 교만과 정욕의 영도자시여! 그리고 저 불 못의 끝에선 불의 마차를 끄는 파괴자여! 불의의 마르스(Mars)! 정욕의 아그니(Agni)! 파괴의 아스타로트(Astaroth)!”


그 주문을 끝으로 노인의 등 뒤로 심연처럼 거무스레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숭배자들은 그 경이로운 광경에 감복한 듯 했다. 곧 입에서 선혈을 토한 노인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는 거무스름한 빛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노인이 그렸던 방진 또한 한층 붉어졌다.


퍼엉!


살점과 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노인의 몸이 갈가리 찢겨지더니 이내 폭발한 것이다. 숭배자들은 모두 피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땅에 쳐 박고 있었다. 어떤 이는 두려움에 떨었다. 과연 거대한 악마가 노인의 몸을 매개로 삼아 물질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기이하게 뒤틀린 외양, 성인키의 몇 배나 될법한 거대한 덩치. 거친 피부는 지옥 불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붉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숫염소처럼 아래로 굽어진 뿔은 악마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켰다.


“너희들이 날 불러냈구나.”


악마의 몸에선 유황빛의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그렇습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숭배자들의 걸음을 재촉했던 바로 그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자 악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로 남자의 몸을 들어 올렸다. 남자의 몸에 찼던 해골들이 동시에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의 위용에 찬사를 보내기 바빴다. 두 동강 난 남자의 몸은 바닥을 굴렀다. 악마의 입에선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 광경을 스코프로 비춰보던 인후는 경악 했다. 놈들은 악마를 불러냈다. 안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악마가 가득한데…. 인후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악마를 소환한다는 인간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 마치 마조이스트들의 도착 행위를 보여주는 듯한, 놈들의 행색을 보았을 땐 그저 그런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갈증이 나는구나.”


악마가 그렇게 말하자, 숭배자들은 스스로 저희들의 피를 짜냈다. 그러나 성질 급한 악마는 숭배자 한 녀석을 들어 올렸다. 악마는 녀석의 머리를 으깨버렸다. 악마는 뇌수와 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이쯤 되자, 숭배자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악마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불러낸 것이 착오였다.


“어둠의 군주시여. 저희가 당신을 불러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숭배자 중 한 명이 용감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만용이었다. 머리가 있었던 부분에선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이제 그들은 몇 남지 않았다. 몇 십 년을 은둔하며 암흑시대의 문을 연 자신들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가. 숭배자들은 악마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제 말해 보거라. 나를 이곳으로 불러냈다면, 응당 이유가 있겠지.”


숭배자들은 그제 서야 악마가 자신들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예…. 저희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이제 현신(現身)하셨으니 이곳에 지배자로써 군림해주시는 것과…. 하잘 것 없는 저희의 약간의 소망을 보태자면…. 약간의 힘과 영생을 원하옵니다.”


“호오, 그렇군.”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유감스럽군. 나는 너희들에게 힘을 주기는커녕 이곳에 군림할 수조차 없다.”


“예?…. 어, 어째서 입니까.”


숭배자들은 패닉 상태에 휩싸였다. 그들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 이었다.


“보아하니 네 놈들의 수장을 매개로 삼아 날 소환 한 것 같은데, 놈의 영력이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내가 물질계에 남아 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숭배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만 악마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목이 타는구나. 너희들이 제물이 돼 줘야겠다.”


일대는 일순 아비규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