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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트레델 - 1, 02

2008.05.17 01:36

백치 조회 수:687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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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델 






[Deleth: b∂riyth dam b∂riyth / Bor Za`aq] 1, 02






 


#1 . 계약의 피, 피의 안개






 


 


   ‘♪-’




평범한 사차선은 사다리가 연상되는 횡단보도를 늘어놓았다. 신호등에선 시각장애인을 고려한다곤 했지만 지나치게 고전적인 음색에 흘러나와서 학교의 종 멜로디를 생각나게 해 겨우 하교한 날 피곤하게 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길 초조히 기다림 중에 거친 옷이 내 어깨를 스친다. 신호등은 아직 붉은색인대도 건넌 것을 위험하게 생각할 즘 여성으로 보이는 그 인물을 봤을 땐 이미 거대한 화물차가 그녀 앞에 당면했고 기겁할 틈도 없이 치였다. 싸구려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치일 땐 기나길었지만 사람을 친 후엔 순간이 정상적으로 재생되었고 사람을 치면 멈춰야 할 그 큰 차가 느낌 없이 속력을 냈다. 그렇게 낯선 이는 깔리고 바퀴는 머리통에서 하찮게 새어나온 절망을 희롱해 무참히 짓이겨 전부를 뭉개버린다. 여러 차가 시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몇 차례 더 밟자 끔찍한 끄나풀의 연속 속에 허연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모양새는 탁구공만한 것이 날 향해 굴러왔고 발치에 닿는 순간 한 개의 시선과 한 사람의 시선은 마주보았다. 기어오르는 소름이 전신을 버둥대게 하고 의식은 몸서리치며 눈꺼풀은 띄워진다.




‘흐으그어억 거억 억 억’




가슴에서 올라온 숨이 막히자 기도氣道에 심한 통증이 밀려온다.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뱉을 것 같았지만 격한 것은 이내 수그러들어 아픔이 겨우 가라앉았다. 혼미했다가 제 기력을 회복하니 겨우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좁은 방의 연한 어둠은 아침이 아직까지 먼 새벽임을 깨닫게 해줬다.




“후우, 꿈이었군.”




피곤했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꿈자리에 정신만은 또렷해져 다시 잘 기분이 싹 사라졌다. 가뿐히 기지개를 켜 피곤을 쫒아내고 간단히 세안 후 학교에 나가려 집 문을 반 쯤 여니 등 뒤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린다.




“세정世情아, 조금 있다가지 그러냐. 너무 시간이 이르다.”


“아버지, 저 청소당번이에요.”




눈과 이마의 명확한 주름. 검고 짙은 눈썹을 가진 얼굴은 엄격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수심이 찬 모습이었다.




“그래, 그러렴. 학교는 일찍 오너라. 문중門中에서 너에게 맡긴 일이 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세정은 집 문을 닫았다. 양옥獽屋의 뜰을 벗어나 검정색의 철문, 자주색 벽돌로 된 울타리의 집을 보니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속한 문중에서 공헌을 해 생활이 보장이 되었다곤 하지만 어떤 공헌이었기에 생활조차 보장해주는 것일까. 고정된 시선을 거두고 희미한 일광日光이 비친 안개, 찬 새벽공기와 더불어 세정은 등교를 했다.




세정이 가고 남은 양옥. 베란다의 차장 너머로 자신의 아들이 보인다. 세정의 아버지는 울타리 끝으로 사라지는 아들을 본 후 힘없이 거실의 침구에 앉았다.




“대체 무슨 연유로 또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읊는 중 집안에 정적을 깨는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그는 텔레비전 옆 탁상에 올려져있는 전화를 다급하게 받아 두려움과 불안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통해 먹이를 가지고 장난감처럼 유린하는 사악한 짐승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원와原訛씨. 배는 부르고 계십니까?”


“당신의 비아냥을 들어줄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다네.”


“어이쿠,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아픕니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시겠어요.


“날 우롱하는 것도 정도껏 하게!”




「키키킥」대는 비릿한 웃음소리.




“그렇게 대드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후우.......용건이 뭔가”


“부탁드리겠습니다. 키키킥”






*






까만 아스팔트는 후미진 곳을 향할수록 흐려졌고 보육시설건물을 돌아 골목으로 접어드니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엉성한 시멘트 길이 들어난다. 이리저리 낙서가 된 흰 벽돌 벽, 그 끝 경계 후 가시덤불이 대신 벽 역할을 했다. 이곳은 비 도시화 된 반쪽짜리 시골이다. 그래서 청廳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외진 주택가의 길엔 인도 포장이 엉망이었다.


어설픈 길과 차도를 건너니 학교가 보였다. 중간 중간 동창들도 있었지만 워낙 이른 아침이어서 많은 수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마침내 교실에 들어서도 조용한 것은 마찬가지다. 새벽이니 그러려니 하는 것도 조금 무리가 있었다. 당번도 보이지 않고 매일 일찍 등교하는 반장도 없다.




세정은 김이 새 팔짱낀 채로 책상에 엎어져 수업이 되길 기다리려 했다. 그 때 저 멀리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래된 이 학교의 복도바닥이 삐걱대는 소리였지만 그것이 어떤 소리건 알 바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세정에게도 적지 않게 다정한 여반장이 오는가 싶어 짐짓 기다렸다. 사실 학기 말이 되건만 어느 정도 마음에 있는 반장에게 변변찮은 말로 지내길 일 년이었다. 발자국 소리는 더 커졌고 마침내 교정문은 드륵 드륵거리며 젖혀졌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 정 반대의 사람이 보였다. 그렇게 평탄해 보이지 않는 세정의 인상은 한층 더 정색이 되었다.




세정은 모르는 양 반대편 창문을 본다. 그다지 이야기 나눌 상대도, 편한 상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동양적으로 보이나 희미하게 외국인 인상을 주는 옅은 노랑색 독특한 머리의 여학생이 날카로운 투로 말했다.




“한세정, 뭐 나한테 불만 있어?”




세정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런거 없어.”


“그럼 됐어.”




우영인, 그녀는 학년 중간고사가 있기 전에 전학 온 외국인이다. 외국인답지 않게 한국말이 유창한 것은 자신의 부모님이 한국에 거주하고 그녀 또한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짝 살을 태운 느낌의 뒷목과 약간 장발의 짧은 머리에 양 갈래 머리가 묶어져있는 그녀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칠판만 뚫어져라 보자니 지겨움이 밀려온다. 콧구멍을 간질거리고 뱃속에서부터 입까지 숨이 올라오니 세정은 아랫 턱을 덜덜거려 하품을 했다. 우영인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정에게 다가왔다. 한 손에 국어책을 쥐고서 세정의 책상에 놓았다.




“한세정, 너 심심하지?”




아직 마치지 못한 하품이 입에 머물러 약간 흉하게 대답했다.




“우왜에- 하암-”




 그녀는 상의 교복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갤 책 위에 얹었다. 그리고 작은 손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팡팡 소리를 내며 책을 치니 동전이 마구 뒤집히는 것이 아닌가.




“나랑 뻑치기하자.”




영인이 말한 규칙은 간단했다. 올린만큼의 동전을 모두 뒤집으면 승리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게임의 위험 부담이란 것은 단 한 가지. 뒤집은 동전 모두는 승자가 가진다는 것이다. 이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을 어디서 배운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이런 심심한 상황에선 물 불 따윈 가릴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는 아니고 세정은 이런 돈 내기를 무지 좋아했다.




그리하여 조용하던 교실은 책을 치는 소리로 가득했고 몇 몇 학생이 들어오자 그에 가세하여 성스러운 학교는 엄청난 도박판이 되고 말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일제히 모여 흡사 도박꾼들의 아수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을 가져왔지만 처음 배운 녀석들의 실력은 영인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기 전 세정과 영인은 수차례를 거듭하여 게임을 하였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된 세정은 몇 반을 주름잡으며 가방을 동전으로 메웠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다. 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는 학생의 시간이란 쏜살같은 것이다.




하늘이 홍조를 띄웠다. 슬슬 눈이 와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추위였고 그에 상반돼 뜨겁게 달궈진 하늘이 빨리도 해를 지평선 아래로 밀어 넣으려했다. 세정과 영인은 어느새 동성친구대하 듯 거침없이 대화를 하며 하교를 한다.




“너, 보기와는 다르게 재밌네.”


“보기와는 다른 것이 어떤 건데.”


“전번에 반장이 여자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것 네가 도와줬잖아. 나도 말리긴 했지만 네가 그 애들에게 뭐라고 말하니까 기겁하고 도망가던걸? 그래서 무서운 애라고 생각했지.”


“아,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닌 것에 애들이 한 달 동안 떨었던거냐? 그것 참 별거 아닌 게 참 무섭군. 닐 보기만 하면 눈을 피하고 도망치더라.”




영인은 약간은 섬뜻한 웃음 지으며 『네게도 말해줄까』라고 했지만 세정은 필사적으로 거부의지를 보였다.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말이 얼마나 공포스럽길래 지금 말하지 않았던 피해자 아닌 피해자, 반장을 괴롭혔던 아이가 그 자리에서 영인의 귓속말을 듣고 다리를 떨며 오줌을 지린 것을 세정은 분명히 봤기 때문이다.




얼마큼 걸었고 영인과 세정은 나뉜 길에서 헤어졌다. 삼 사십여 미터를 앞둔 집 근처 횡단보도에 들어서니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




불길한 느낌은 횡단보도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울리는 멜로디가 학교 종 멜로디와 비슷해서도 아니고 이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몇 초 느려서도 아니고 이 상황 자체가 심신을 흔들어 놓도록 불길했다. 마음이 균형을 못 잡고 멀미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순간은 세정을 예정대로 급습했다.




무언가 스친다. 반응해야한다. 뛰었다.




그 스침과 동시에 스친 자를 잡고 훨씬 빠른 속도로 다른 차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찰라가 인간이라는 기준의 존재가 반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온전하게 다른 차선에 옮겼지만 세정은 왼쪽 팔이 거대한 화물차에 부딪쳐 몸 전체가 직선상으로 쓰러졌고 쓰러져 뉘인 왼 손은 10톤이 넘는 화물차 바퀴에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 세정에게 몰렸다. 그가 살린 자의 머리 대신 왼 손의 혈관이 파열, 조직과 뼈는 수차례 대형 차의 바퀴에 으스러져 고통에 그는 정신을 잃었다.








*








눈이 띄었다. 침대에 누어있는 자신, 또 다른 여러 침대들과 코를 자극하는 소독약 냄새. 왼 팔은 들어져 있다. 손목 위가 허전한 것을 보니 아마도 내가 기절한 사이 이미 한 쪽 손은 웃기게도 직역하여 손 쓸 방도가 없어진 모양이다. 오른쪽 맡에는 세정의 아버지가 잠을 자고 있다.




“아버지”




사실 세정은 어머니가 없다. 있었지만 세정의 아버지 들려준 사실은 자신을 낳는 도중 운명하셨다는 것뿐이다. 혼자 세정을 키워나가던 아버지도 수 차례 자식 때문에 결혼을 시도했으나 새어머니는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세정 부자를 버렸다.




 “여어- 꼬맹이 이제야 깨어났군.”




옆 침대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양 볼은 움푹 페인 것이 눈은 쳐지고 머리는 붕대로 감겨 초췌해 보였지만 입만은 모든 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살아있는 입 같다고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 남잔 내가 한 달 동안 의식불명이라고 했다. 왼팔이 심하게 뒤틀려 공포영화의 괴물 같았다는 평까지 내려주며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웃음마저 나오게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을 이야기 주고받으니 문득 자신이 구했던 여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아! 그 여자 말이지? 안타깝게 됐네. 그 여잔 죽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한 팔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자초지정을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답은 후두부가 깨져 뇌 수술괴 심폐소생술을 병행해도 진작 가망성이 없어 결국 주검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사내는 덧붙혀 말했다.




“네가 자는 사이에 이 곳이고 저 곳이고 난리법석이야. 아까 말했던 여자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둥, 뉴스에선 살인마가 나타났다는 둥. 그것도 피가 다 빨린 채로 말이지. 시대가 어느 땐데 어떤 미친놈이 흡혈귀 흉내를 내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