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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Kakotopia : The God-Given Curse

2008.01.25 00:42

negotiator 조회 수:686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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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성의 외곽에 위치한 막사로 돌아온 레이넌은 로마노프 박사를 찾아갔다. 뭔가 물어볼 만한 것들도 꽤 있었거니와, 래이의 말에 따르면 장군이 로마노프의 연구실로 모두를 모이게 했다고 전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연구실은 일렬로 줄지어 세워진 막사들의 가운데, 중앙 본부의 안쪽 강당의 왼편에 있는 방이었다. 간밤에 래이가 돌아간 후 두 시간 늦게 귀환한 레이넌이었지만, 밤을 샌 것 같지가 않을 정도로 정신은 더없이 말짱했다. 칼리시스와 사이러스가 여전히 졸음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는 동안, 그는 래이와 함께 병영 내의 장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는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어떻게 돼 가나?"


 "아아, 마침 잘 왔네, 제군들."


둘이 도착했을 때, 꽤 늦은 아침이었는데도 연구실엔 로마노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칼리시스와 사이러스는 그렇다쳐도, 장군까지 늦으리라고는 생각 못 한 레이넌은 뭔가 허탈했다. 그가 시간을 지키지 않는 일은 대부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은 시간을 제꺼덕 지킨다고 들었는데, 다 그런 건 아닌가보군."


 "그런 건 관심없어. 왜 부른거지?"


래이가 책상 위에서 자신의 연구자료를 부산스럽게 챙기고 있는 로마노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로마노프는 그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지, 자신의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자 래이가 벽을 쾅 쳤다. 그러자, 로마노프가 조용히 그를 돌아보았다.


 "왜 불렀냐고 묻잖아!"


 "조금만 기다려보게나,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참이니까."


 "뭐?"


 [키잉- ]


 "아, 이제 됐나보군."


로마노프가 중얼거리며, 방금 '키이잉' 하며 이상한 빛을 일시적으로 뿜어낸 작은 회색의 크리스탈을 집어들었다. 레이넌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목소리나 영상을 기술적으로 송신하는데 실패하자, 마족의 지혜를 약간 - 사실은 대부분이지만 - 빌려 만든 물건이었다. 크리스탈에 인위적으로 마력을 담아, 멀리서도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물건이었다. 실용화된지 얼마 안 되어 딱히 이름이 붙진 않았다.


로마노프가 크리스탈을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 무슨 소리가 나기라도 기다리듯, 한참을 그렇게 안경 너머로 크리스탈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이넌과 래이는 말없이 그가 하는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십 분이 흐른 후, 래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야?"


 "쉿, 쉿! 조용히 해보게... 이상하군... 연결이 안 됐나...? 아, 됐군."


그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탈의 뾰족한 윗부분에서 뿜어져나오는 은색의 실줄기들을 바라보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 가는 은색의 실들은 서로 뒤엉키고 묶이는가 싶더니, 허공에 어떤 모습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셋은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점점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되었다. 맨 처음으로 바닥에 깔린 둥글넓적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뒤엔 죽은 나무들이 너댓 그루 서 있었다. 로마노프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영상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 실이 뿜어져나오지도 않았고, 그 풍경만이 형상화된 채 비쳐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던 레이넌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로마노프를 돌아보았다.


 "그냥 풍경 아닌가?"


 "이럴 리가 없는데...?"


로마노프가 쉰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마치 화면 바깥의 안 보이는 것이라도 찾는듯 크리스탈을 이리저리 돌리며 영상을 비추어보았다. 그러나 주변에 보이는 건 죽은 나무들의 숲 뿐이었고, 그 숲의 윗쪽으로 보이는 탑과 성의 뾰족한 지붕을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로마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뭐가 말이지?"


레이넌이 여전히 혼자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는 로마노프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로마노프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정찰대가 외부 상황을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 보게... 어디에도 정찰대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아..."


 "어쩌면 그 크리스탈을 흘린 걸 수도 있지 않나?"


 "흠... 어쩌면..."


로마노프가 짧은 회색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그시 크리스탈을 내려다보았다. 크리스탈에서 뿜어져나온 은색 실들이 풀리더니 빛을 내며 허공에서 분해되듯 사라져버렸다. 로마노프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래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찰대가 안전하다는 보고를 하면 우리를 그 다음 투입시킬 생각이었던 건가?"


 "비슷하다네. 그런데 이젠 보고가 없으니... 새 팀을 보내야 하려나?"


로마노프가 턱을 긁으며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자신의 연구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신경쓰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건 레이넌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이 일의 진상을 밝히고 싶은데, 사라졌을지도 모를 정찰대에게서 막연히 보고를 기다린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낭비였다. 게다가 그는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건 질색이었던 것이다.


 '대신 찾으러 나가면 모를까...'


레이넌이 무심결에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래이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래이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아주 가끔이긴 했지만, 마치 텔레파시라도 하듯 이렇게 생각이 딱 들어맞을 때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선 래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그가 로마노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박사. 우리 둘이 가지."


 "응? 뭐라고 했나?"


 "정찰대 기다리기도 지루하니, 우리 둘이 가서 보고하겠다고. 괜찮겠지?"


갑작스런 결정에 로마노프는 조금은 황당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래이가 "좋아!" 하며 손마디 관절을 꺾었다. 결정이 난 이상 얼른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로마노프가 레이넌의 등 뒤에 대고 외쳤다.


 "잠시만 기다리게, 세치브 군."


래이를 따라 병영 내의 그들 방으로 곧장 달려가려던 그는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서 그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로마노프가 그를 향해 기괴하게 생긴 저격총을 한 자루 던졌다. 그는 얼떨결에 받으며, 왜 이걸 나한테 주느냐는 식으로 로마노프를 쳐다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총을 잃었다길래... 그저 내 발명품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 뿐이네."


그는 그 저격총을 내려다보았다. 마법이라도 걸려있는지 가볍기도 했지만 튼튼한 티타늄제였고, 스코프는 레이넌이 사용하던 구식의 2단계가 아닌 3단계 확대 배율로 나눠져 있었다. 손잡이의 그립감도 그런대로 괜찮았으며 총신은 레이넌의 평소 취향대로 약간 두꺼우면서 길었다. 그리고 총구엔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색도 레이넌이 선호하는 은색이었다. 레이넌의 그 총에 대한 첫인상은 '멋지군.' 그 한 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방아쇠가 없었다. 탄창을 끼우는 곳도 없었고, 안전핀도 없었다. 레이넌은 이 박사가 지금 나와 장난치자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박사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아쇠는 필요없네. 탄창도."


레이넌이 더욱 더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로마노프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써보면 알게 될 거야."


 "어이, 레이넌. 서두르자고. 그 멍청한 장군 오기 전에..."


 "아, 오케이."


레이넌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 이상한 총을 내려다보며 래이의 뒤를 따랐다. 꽤나 고급스러워보이는 총이었지만, 이걸 어떻게 사용한다는건지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그는 래이의 뒤를 따라 급히 막사 뒷편의 비행정 대기소를 향해 달렸다. 아직 오른팔의 통증이 가시지 않아 싸우기엔 약간 무리였지만, 오랜만에 날뛰고 싶은 욕구가 그의 속에서 마구 솟구쳐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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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으... 읏...."


14명으로 구성된, 두 번째 성을 찾으러 갔던 제국 정찰대의 일원이 돌밭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가슴을 예리한 칼날에 베여 검붉은 피를 쏟아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피를 토해내며 힘겹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 남자가 햇빛을 가리고 서서, 검을 든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


[푸욱- ]


 "크허..."


검이 빠르게 그 남자의 목을 관철했고, 뽑아올린 검엔 피가 묻어나 비릿한 피냄새를 풍겼다. 세크로스는 한숨을 내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검집에 착검했다. 그리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세크로스는 에트리우스가 말한대로, 과거 시마 국의 성이 존재했던 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한바탕 전투 후에 올려다보니, 전과 다름없다는 사실은 그 수도였던 도시의 성이 아직 세워져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을 꼽자면, 주변에 울창하게 우거졌던 관목들과 무성하게 피었던 꽃들은 모두 시들거나 죽어있었고, 나무들도 하얗게 혹은 검게 색이 바랜 채 앙상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생명의 흔적이란 방금 죽인 한 무리의 제국군들을 제외하고는 없었고, 주변엔 호수조차 말라붙어 있었다.


음침한 회색 빛깔의 성이 그를 굽어보듯 웅장하게 서 있었다. 레이넌 일행이 향했던 성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약간은 다른 생김새였다. 그 때의 성이 굳건한 요새같은 이미지를 풍겼다면 이 성은 뾰족뾰족한 조형물과 조각들로 어딘지 모를 날카롭고 사나움을 강렬하게 뿜어냈다. 세크로스는 지그시 성을 올려다보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묵묵히 닫혀있는 그 성의 문을 향해, 시체를 넘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 안에 어떤 위험이 기다릴지 알지도 못 하면서, 곧 죽음을 앞둘지도 모를 그의 얼굴엔 기대감과 함께 쾌감이 숨김없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