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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노래하는 자는 언제나..

2007.07.12 19:34

RainShower 조회 수:683 추천:2

extra_vars1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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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화창했던 날이었다. 그때 나는 겨우 12살. 장난기가 넘치던 시절이었기에, 태양이 웃음짓는 날이면


마을 주변을 뒤적거리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날은 더 신이 나있던건지, 마을을 나와버렸다.


 


 어른들이 볼일을 보거나, 아니면 동네형, 누나들이 몰래 놀러가려고 지나다니는 작은 길. 그 길은 이 주변에서는 알아주는 큰 번화가가 있는 마을로 통하는 길이었다. 번화가를 본다는 생각에 난 휘파람을 불며 종종걸음을 했었다.


 


 리듬과 기대에 취해버린 어린아이는 마냥 신났었다. 그리고 곧, 보기만해도 사람들의 땀이 생각나는 높은 돌담이 보였다. 돌담 입구를 지키는 자경단 아저씨조차도 없었다. 몰래 돌담을 넘어갈 생각을 하던 나에게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잽싸게 입구를 달려 지나 들어갔다.


 


돌이 촘촘이 깔린 길이 시원하게 마을의 광장으로 뻗어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진열대가 쭉 늘어서 있었다. 그곳엔 먹을것들, 과일, 호밀빵, 보기드문 발명품, 망원경이나 바퀴달린 신발.. 등.


 


 그리고 내가 있는 마을과는 차원이 틀린 깔끔한 돌벽집. 하지만 그건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번화가가 우리 마을과 다르다는 것, 더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


 


 하지만, 이 넓고 복잡한 번화가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도 이상했다. 아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북적대는 분위기를 바라고 왔는데, 오히려 쥐죽은 듯이 조용했었다. 어디하나, 부서지거나 망한 분위기는 없어보이는 마을에 사람 그림자라고는 내 것밖에 없다는게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어린나이의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기에는 너무도 어렸다.


 


텅텅빈 큰길을 발소리도 안나게하면서 걷는다. 사람이 없는 마을은 왠지 생기가 없고, 어느 시점에서 멈춰버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생기가 느껴지는 광장의 분수.


 


그곳에 가면 왠지 안심이 될것같았는지 나는 분수를 향해 걸어갔다.


 


광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분수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안심이 되었다. 마치 광장밖으로 나가면 왠지 나도 사라질것 같은 느낌이 든건지...


 


조심스레 분수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뒤쪽에서 물소리랑 뒤섞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


 


 "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펴 입술에 대는 백발의 소년. 동네의 형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조용히하라는 그의 제스쳐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제야 그도 입술에 댄 손가락을 치운다.


 


 그 흰머리의 형은 옅은 갈색의 로브를 걸치고 후드는 등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검집을 차고 있었다. 보기엔 매우 얇은 모양의 검인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그 형은 눈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눈을 다친건지 검은색 안대로 이마아래와 콧등위로 칭칭감고 있었다.


 


 "왜,왜.. 마을에 혀......"


 


 "좋을대로 불러."


 


 "형밖에 없어...?"


 


 형은 대답은 하지않고 갑자기 허리에 걸린 검집의 벨트를 풀고 검을 뽑아든다. 순간 나는 겁을 먹고 움찔했으나,


그 형의 동작이 너무도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정신을 잃고 쳐다보았다. 유연하게 휘는 가느다란 검.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레이피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에페같은것도 아니였다.


 


 맑은 금속성이 검집속에서 울려퍼진다. 그는 흔들리는 검신을 다스리는 듯 검을 조심스레 가슴앞에 새운다.


검신의 떨림이 잦아들자 그는 검집을 왼쪽 어깨에 기대어 놓았다.


 


 ...


 


 


 그리고 검신을 검집에 댄다.


 


 그렇게 그의 신비로운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치 검집은 노래를 하고, 검신은 그위에서 춤을 추듯이..


 


 


 


 돌아가고 싶어요.


 이곳은 시간을 보는 작은 새장이네요.


 우리의 시간을 가지는건 좋아요.


 하지만 돌아갈 수 없어져요.


 이미 돌아갈 수 없네요.


 


 새장에 있는 새는 작은새예요


 지저귀고 작게 날개짓하는 가련한 앵무새랍니다.


 저는 보고있지만 어쩔 수 없네요.


 보고 있어도 손내밀 수 없어요.


 


 찢어지는 울음과 아련한 통곡이


 새장을 철창으로 바꾸네요.


 


 그래요. 저는 언제나 노래를 불러요.


 제발 저의 말을 누군가 들어주길.


 제발 이런 저를 누군가 용서해주길.


 


 


 지금 보면 그것은 연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그렇다고 노래라고 하기에도 어색했다. 연주동안, 검집은 노래가 아니라 통곡을 검신은 몸부림을 치고 있던것이다.


 


 "..니가 처음이야. 내 노래를 듣는거.. 하지만 너무 어려...."


 


 무슨 말을 해야되는 건지 알수 없는 말에 나는 그저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잘들어.. 이 말을 믿던지 말던지.. 나는 상관안해.."


 


 나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그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너와 내가 있는 곳은 '유리구체'라고 불리우는 곳이야. 쉽게 말하면, 미래와 과거를 볼수 있는 곳이야."


 


 그는 이해할수 없는,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물처럼 이야기를 해나간다.


 


 "세상은 머지않아 끝나버릴꺼야..지금 우리가 있는 '유리구체'처럼 세상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사라지는 큰 재앙이 올꺼야.. 이곳에 있으면서 시간개념, 감각이 다 엉망이되어서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어. 이유는 작은 장난... 정말 너무도 작은 장난때문에..."


 


 그는 말을 흐리더니, 몸까지 흐려지게 변했다. 점점 투명해져가는 그의 몸.


 


 "...너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해... 절대로... 하지만 이것도.. 시간의 장난, 운명인걸....하지만 이젠.. 괜찮아..나는


 속죄를 마쳤으니까..."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남겨졌다. 그가 버리듯이 남기고간 검집과 검신... 그들과 함께.


 


 이곳은 시간의 미로. 한번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끝없는 길. 나는 시간의 미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멸망의 미래를 내려다보며, 누군가 와서 이걸 듣고 알려주길 바라는 시간의 죄수.


 


 


 


 그 누군가가 또 자신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