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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The Magic

2007.07.06 20:03

Rei 조회 수:692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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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비가 그치는 걸까』
니스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씨에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매출이 크게 줄었던 것이다. 사실 여관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묵는 경우는 드물고 저녁 무렵 마다 일을 마치고 온 장정들에게 파는 술이 주 수입원이었다.
『흐음, 심심한데』
니스는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레이를 보며 나도 책을 한번 읽어 볼까, 라고 생각 했지만 책을 읽는 것은 지루한 시간을 늘릴 뿐이었다. 딸랑 딸랑-! 현관에 매달아 놓은 종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제길, 이놈의 비는 언제 그치는 거야!』
자주색 로브를 입은 청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옷을 입고 수영하고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주인장, 여기 혹시 남는 옷 있소?』
『있긴 한데』
『아, 그럼 그거 좀 준비해 주시오』
그 청년은 대답도 듣지 않고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젠장 비는 질색이야!, 라는 말을 하며 욕탕으로 내려갔다. 니스는 또 괴상한 손님이 왔다고 한숨을 내쉬며 욕탕 입구에 옷을 내려  놓았다.
청년은 잠시 뒤 목욕을 하고 나와 옷이 잠옷 같다며 투덜거렸지만, 원래 잠옷인 옷을 잠옷 같다고 투덜 거려봤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니스였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요?』
니스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빵을 먹는 청년을 보며 물었다.
『아아, 성직자요 성직자.』
『성직자? 요즘 성직자들은 밥 먹기 전에 감사기도도 안하고 불평불만을 남발하고 다니나 보군』
순간 어이가 없어진 니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들은 청년은 편견은 만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며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으려 했다. 그 모습에 니스는 혀를 차며 ‘성직자 맞군’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직자가 이런 곳엔 웬일이요?』
『아아, 누군 오고 싶어서 오나. 빌어먹을 하이 프리스트께서 자기가 갔던 곳을 한 번씩 돌아보고 오라 하지 않소? 젠장, 그냥 편하게 신전에 있는 게 좋은데 분명히 혼자 고생했다고 심통이 나서 그런 게 분명할걸.』
『하이 프리스트? 혹시 그 사람 키가 좀 크고 근육질 아니요?』
『어, 알고 계시군요?』
『물론, 그분께서 저 아이 팔을 고쳐 주셨거든』
니스는 구석에서 얌전히 책을 읽고 있는 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요즘 그분만한 사람도 없지 쯧, 성직자라는 것들이 여자랑 술이나 찾고 있으니... 어디 그런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상처하나 제대로 고칠까?』
청년은 무시무시한 말을 마치 지나가던 개가 짖는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이야기가 음식 먹는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낭설이라고 주장하듯이, 청년은 끊임없이 음식을 먹으며 동시에 이야기를 하는 신기를 선보였다.
『저기 방 하나 주시오』
식사를 끝마친 청년은 쉬고 싶은지 방을 하나 달라고 했다.
『하루에 1실버 선불』
『선불? 거 참 어지간히 사람 못 믿는 모양이군요.』
그는 혀를 차며 로브를 뒤졌지만 있어야 할 돈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같은곳을 뒤적이는 청년을 보며 니스는 잃어버린 게 아니냐고 물었고 청년은 냉담한 현실을 인정하며 ‘신이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이라며 절규했다.
『후우, 뭐 하이 프리스트에게 신세 진 것도 있고 하니 그냥 공짜로 묵으시오』
『오오, 이런 빌어먹을, 신의 은총을 받은 형제를 보았나! 젠장! 당신에게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청년은 축복인지 욕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말을 하고는 열쇠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살다보니 별 희한한 사람을 다 보는군.』
니스가 다시금 카운터에 앉으려는 찰나 다시 짤랑 짤랑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좋은 일이 있을 거라더니... 이런 젠장!! 망할 가짜 성직자 같으니』
니스는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불성실한 성직자를 도와 줬다가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했다.
『도련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니스의 얼굴을 보고 반가워하며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제길, 무슨 일이야? 나 찾지 말라고 한 거 잊었어?』
『아니 도련님! 몇 년 만에 보는데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시는 겁니까!』
『아, 그래 무슨 일이야? 집사면 집안이나 보고 아랫사람 보내야 되는 거 아니야?』
노인은 빈자리에 앉아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주인님께서...』
『왜? 형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집사의 모습에 니스는 순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 챘다.
『...자살 하셨습니다.』
예상 밖의 집사의 말에 니스는 순간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게, 그게』
『정확히 말하면 한 달 전쯤 서재에서 틀어박혀서 하루가 지나도록 나오시지 않자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간 하인이 목을매어 자살한 주인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럼 형수님은?』
『벌써 몇 달 전 이혼하셔서 친가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길,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집사는 차근차근 니스가 집을 나간 6년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엘리아드 백작가는 쇠퇴하여 무시할 수 없는 부채를 떠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니스와 달리 형인 델릭은 검술에 소질이 없었다. 니스의 부모는 은근히 니스가 가문을 잇기를 바랐지만, 니스는 집안을 잇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부모의 바람과 달리 이름 없는 남작가의 여식인 슈리와 결혼을 하였다.
그 이후 슐리아시스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전사(戰死)하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유산을 하며 숨진 뒤 니스는 '가문에 머물러 봐야 형의 일에 도움이 안될 것 같다.' 라며 당시 3살이었던 마리와 함께 도망치듯 가문을 나와 나하로에 정착했다.
『그 후로 델릭 도련님은 순조롭게 가문을 운영해 가셨고, 가문을 부흥 시키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신 후 상업에 손을 대셨습니다. 물론 처음엔 아니 1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 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던 거지?』
『하지만 델릭 도련님은 검술에 재주가 없으신 대신 그런 쪽에 타고나신 분 이었나 봅니다.  사업은 계속해서 번창했고 엘리아드 가문은 검술의 명가라는 이름대신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그런 쪽으로 이름이 나게 되었죠, 하지만 사업이 생각 외로 너무 크게 번창하자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길 것이라 생각한 다른 가문에서 서서히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델릭 도련님이 사업의 기반이 제법 탄탄하긴 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언제부터인지 물품에 결함이 생기고 물건을 옮기던 중에 산적 떼나 해적들이 급습을 하는 등 이전에는 없던 일들이 마구 생기더니 결국...』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군, 하지만 나한테 올 이유는 없잖아? 형님의 아들이 있지 않나?』
『그분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십니다.』
『그래서 다시 본가로 돌아오라 이 말인가?』
『예, 그분이 성인식을 치를 때 까지만 이라도 본가로 돌아오셔서 가문을 돌봐주셨으면 합니다.』
니스는 집사 너머의 벽을 응시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대답은 결정 되어 있었다.
『후우... 할 수 없지 그럼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건가?』
『제 심정으로는 비가 그치는...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아아, 좋아 그럼 내가 여관을 처분 할 테니 짐이나 꾸려놓고 있어.』
집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니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니스는 조용히 설명을 했다.
『본가에 일이 생겨서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알아두고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수 있게 간단하게 짐을 꾸려. 특별히 많이 필요하진 않을 꺼야.』
『예, 이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슈리는 간단하게 승낙을 했다. 어차피 돌아가야 할 곳이지만 벌써 가야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마리는 갑자기 떠난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예에? 어디로 가는데요?』
『음, 아마 이르닌으로 가게 될 것 같구나. 그곳에 저택이 있거든』
『이르닌이라면 수도요?』
『그래, 내일 이라도 떠날 수 있게 정리를 해두렴.』
마리는 수도로 간다는 말에 흥분을 한 듯. 재빨리 방으로 뛰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니스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고민하며 헐값에 여관을 처분하는 사이 집사는 짐 정리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집사는 필요한 물건은 모두 정리해 두었다고 말했다.
『저기 아저씨,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응? 아 그래 잘 가렴』
밝게 인사를 한 뒤 레이는 집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집사는 무례한 꼬마라고 화를 냈다. 니스는 나하로를 다스리는 영주 외에는 자신이 귀족이라는 것을 모르니 당연 하다고 말했지만 집사는 용납할 수 없는 모양 이었다.
『날도 어두워 졌으니 집사도 이만 자』
『예』
집사의 잔소리가 시작 되려는 찰나 먼저 선수 친 니스의 말에 집사는 마지못해 2층의 빈방으로 들어갔다.


이틀간 때려붓듯이 쏟아진 비가 정오가 되면서 점차 약해졌다. 집사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돌아 갈 수 있다고 말을 했지만 니스는 비가 완전히 그치면 가자고 했다.
점심을 먹은 뒤 마땅히 할 일이 없어 구석에 숨듯이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레이를 보며 니스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집사.』
『예』
『지금 저택에 얼마나 남아있지?』
『아마 다섯 정도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니스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을 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니스는 점심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레이야』
『네?』
한창 야채수프에 열중이던 레이는 니스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곧 우리가족이 수도 쪽의 본가로 돌아가야 할 거 같은데 어차피 이곳에 남아봤자 너나 시에나 에겐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차라리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레이는 갑작스러운 니스의 제안에 당황했다.
『저어, 저기 그러니까...』
니스는 웃으며 생각이 있다면 비가 그치기 전까지 준비하라고 말을 해 주었다. 레이는 시에나와 의논을 해 본다며 오늘은 일찍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니스는 괜찮으니 어서 가보라고 했다.
『도련님』
『응?』
『죄책감 입니까?』
얼음처럼 싸늘한 정적이 호흡을 멎게 만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니스가 본가를 떠난 이유는 델릭을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집사와 델릭은 알고 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신 겁니까?』
『그래』
『하지만 분명히 그녀는...』
『그만! 거기까지!』
니스는 집사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끊었다. 집사는 입을 다물었고, 슈리는 ‘그녀’라는 말에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니스는 얼음장 같은 얼굴로 묵묵히 빵만 씹을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슈리는 니스를 조용히 방으로 불렀다. 니스는 슈리가 물어볼 내용이 무엇인지 눈치 챘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레이와 시에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보 아까 그 이야기...』
『내가 다 설명해 줄 테니 가만히 듣고만 있어』
니스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과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