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최후의 성전

2007.05.31 09:39

negotiator 조회 수:692 추천:3

extra_vars1 오해? 
extra_vars2
extra_vars3 116970-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하루종일 시끄럽던 헨돈마이어의 거리에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쓰레기가 나뒹굴거나 도둑고양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고, 불이 꺼진 상점가들과 주택가들 사이에 한 주점만이 환하게 불이 켜진 상태로, 여전히 왁자지껄한 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 행자가 거리를 가로질러 주점을 지나가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별들을 보고는, 한숨을 짓고 발길을 돌려 주점 안에 들어섰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주점 안쪽으로 갈 수록 더 커졌고, 꽉 찬 자리들을 지나 마침내 구석진 곳에 빈 자리에 털썩 쓰러지듯이 앉았다. 그는 망토를 걷지 않은 채로 손가락을 딱 치며 웨이터를 불러, 다크 데킬라를 주문하면서 금전을 몇 닢 쥐어주었다. 웨이터는 그걸 받아들고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바로 걸어갔다. 누군가가 그의 왼쪽 볼에 난, 깊게 팬 상처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고는,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조용히 엿들었다. 워낙에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주점이어서 정신이 없다보니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그는 이따금씩 큰 웃음이 터져나오는 테이블들을 쳐다보면서, 주문한 다크 데킬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옆에 있던 시끄러운 손님들이 나갔고, 곧이어 제국군의 인장이 달린 장교복을 입은 군인들 여럿이 들어왔다. 그들은 거만한 태도로 와인을 주문하며,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 바로 옆 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는 눈에 익숙한 제국군 제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던 중, 다크 데킬라가 서빙되었고, 그는 잠자코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을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다가, 계급이 높아보이는 한 장교가 입을 열자 모두들 눈치를 보며 조용히 했다.


  "자, 오늘 이 자리는 우리들의 작전이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일세. 마크레밋츠 가문과 카일 카탄 녀석을 한번에 쓸어버릴..."


그 이름을 듣자, 가만히 술만 마시고 있던 그가 갑자기 움찔하면서, 방금 그 말을 한 장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장교가 손을 높이 들어 건배를 청하자 모두들 잔을 들어 쨍 소리가 나게 잔을 부딪혔다. 그러고는 연거푸 술을 부으면서, 자신들이 말하는 소위 '작전'에 대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리케 대위, 바제트 프라가 마크레밋츠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


  "지금쯤 제국령을 통과해 카탄의 성전에 도착했을 겁니다."


  "카일 카탄이 모르도록 잘 처리했겠지?"


  "물론입니다. 카탄은 성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한 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하핫, 이제 그녀석들을 잡는건 시간 문제라, 이거로구만."


그들은 자신들끼리 신나게 떠들어대면서,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지 다시금 별다른 주제가 없는 잡담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여보게, 자네들, 카일 카탄 녀석의 얼굴에 있는 칼 흉터, 어찌된 건지 아는가?"


  "벌써 수십 번은 얘기하셨습니다. 소령 님께서 내신 거라면서요?"


  "으하핫, 그랬지, 벌써 십수 년은 지났지만, 그 카탄이라는 녀석은 그 시절 나와 싸울 때나 지금이나 허풍만 심하단 말이지. 하! 제국에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톡톡히 보여주겠다, 이거란 말이다! 자, 마시자!"


은회색 콧수염을 길게 기른 장교 한 명이 다시 잔을 높이 들었다. 그들은 건배를 몇 번이고 하더니, 술에 취한 한 사람이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푸른 대지를 피로 물들이자, 막아서는 적에게 자비는 없다..."


그러자, 한두 명씩 그 군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군가 소리가 점점 커지자 주점 안은 조용해졌다.


  "총을 쏘고 칼을 들어라, 우리의 앞길에 적은 없나니-"


이제는 모여있던 장교들 십수 명이 일제히 그 군가를 따라부르기 시작했고, 한참동안 노래가 계속되었고, 망토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는 왼쪽 허리에 찬 검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면서, 언제든 뽑아들 기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고, 그 후에 주점 안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군인들의 웃음소리는 그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버렸고, 아까 건배를 청했던 장교가 크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군가, 시작 부분이 달랐지. 십 년 전만 해도 말이야. 에, 그러니까..."


  "동지의 피에 맹세하나니, 저 푸른 대지에 평화 깃들라."


깊게 눌러쓴 망토 아래에서 나직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장교들에게 뚜렷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방금 말을 하던 장교가,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핏기가 가신 얼굴로 그의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성스러운 힘은 우리를 지키나니, 세계에 평화 깃들라."


  "너... 너는...!!"


자리에 앉아있던 장교들이, 촛불로 밝혀진 그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겁에 질리면서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그는 싸울 자세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도 걷었다. 왼쪽 볼에 칼에 배인 듯한 상처가, 사선으로 길게 나 있었다. 붉은 빛의 머리가 길게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똑똑히 그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카탄과 마크레밋츠가 의를 맺어 맹세하노니, 대항하는 적을 베어넘기리."


  "카일...카탄...!!"


카일은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옴과 동시에 검이 내려쳐졌고, 검을 들고 앞을 막아서고 있던 장교 두 명의 칼이 부러져 바닥에 박혔다. 그러자 나머지 장교들도 총과 검을 뽑아들고는 그에게 겨누고 섰다. 수적으로는 완전히 열세였다.


  "그래... 나를 죽이기 위해 그 녀석을 유인했단 말이지..."


  "수적으로는 저녀석이 열세다! 단숨에 덮쳐버려1!"


이미 불길한 예감을 한 취객들은 떼를 지어 주점 밖으로 나가고 있었고, 웨이터는 허둥지둥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쳤다.


  "근데 유감이구만. 난 출장중이었거든."


  "발포하라!"


가만히 서 있는 그를 향해 총알들이 발포되었고, 그는 피한다거나 막을 생각도 없이 그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불이 꺼져 달빛만이 비추고 있는 주점 안에서 계속해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한참 후에야 총성이 멈추었고, 그들은 숨을 죽이고 그가 어디있는가만을 찾고 있었다. 그 때, 바람을 가르는듯이 쉭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들 사이로 무언가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카일의 목소리가 그들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3분이면 되려나."


  "죽여라!!"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총성이 어우러져 한참을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고요한 헨돈마이어의 거리가 살육의 소리로 물들면서, 조금씩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