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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이계일주 전장:맴도는 자

2008.07.03 02:15

드로덴 조회 수:775 추천:1

extra_vars1 제 1晝:나란 녀석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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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것도 없는, 어디에나 널린 그런 말로 시작하는 무료한 하루의 시작. 토요일 아침. 침대에는 한 소년이 트렁크 팬티 한장만 덜렁 걸친채 누워있다.

 

"......"

 

눈부신 형광 불빛에도 아랑곳않고 멍하니 그것을 향하는 텅빈듯한 두 눈동자. 손가락 하나의 미동조차없이 그렇게 누워있는 시체같은 소년. 보일듯말듯 부풀었다 꺼지는 그의 흉부가 그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교과서 몇권과 문제집따위가 여럿놓인 책장이 하나, 손때가 묻은 연갈색 책상이 하나, 시트가 뜯어져가는 낡은 의자가 하나. 코딱지같은것이 아래쪽에 말라붙어있는 더러운 침대 위에 마네킹이 하나. 죽은것과 같은 회색빛 방이 하나. 인조광이 아닌 자연광이 새벽빛을 뿌리며 엷게 비치었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누워있던 마네킹은 서서히 활동을 개시한다. 잔뜩 올라와 딱딱해진 어깨근육을 두드리고 꺾을듯한 기세로 목을 풀고 온몸의 뼛속 기포를 터뜨린다. 우그두두둑.

 

"크윽...놀토라고 좀 자볼라했는데 요샌 잠이 통 안오네. 망할, 그 개놈의 쉐이때문에 이게 뭐여. 이젠 자고싶어도 싸이클이 뒤집혀서 돌아가지가 않잖아."

 

듣는사람도 없는데 참 잘도 씨부린다, 하고 그런 자신한테 자학 태클을 걸고, 핸드폰을 집어든다. 온 문자는 없군, 하고 꽂혀있던 충전기를 뽑았다.

 

"자자, 막장인생 오늘 또 돌아가는거다!"

 

몇번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내고는, 살이 다소 출렁거리는 몸집에 반나체 상태로 집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한 열일곱 꼬마. 이것이 소년이었다.

 

밤에나가 새벽에 들어오면서 변변찮은 벌이를 못해 괴로운 아버지, 친척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식모살이로 돈을 받아오는 어머니, 공부의 의지를 상실하고 새벽까지 영문으로 가득한 사이트들을 훑으며 시간을 보내고 늦잠에 푹 잠기는 형. 그리고 서서히 형의 그 궤적을 따라 성적이 하향곡선을 그리고있는 둘째이자 막내인 한 소년. 이제는 상기해보았자 아무런 느낌도 들지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잠시 우울해질뿐.

 

원래부터 주는것에만 만족하고 스스로 욕심을 낸적은 한번도 없는 형제. 서로 다투지도 않고 다른 동년배에 비하면 턱없이 착한 형제.

 

 지인이 치과를 하고있어 노력만 하면 성공할,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형과 이렇다 할 재주도 없이 머릿속에서 음악이나 게임이나 세계 하나를 만들어보며 자타공인 '뻘짓' 을 하는 친구도 몇명없는 말없고 게으른 동생. 기독교를 믿으나 마음이 못되먹은 아버지를 두고 험하게 자라 음악가의 길을 택했다가 사고로 잠적을 탄뒤 나이조차 신경쓰지않고 재수가 없으면 조폭이나 힘도 없으면서 마음만은 썩어 마구잡이로 못잡아먹어 안달인 일자리의 사장을 두고 컴퓨터로 대리만족을 하며 존경받지 못하는 아버지. 못난것 하나없이 평범히 자라와서 평범한 남자에게 시집갈거라고 생각했으나 두 아이를 낳고 같이 하류의 삶을 살고있는 어머니.

 

비참하다면 한없이 비참할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들. 너무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터라 두 아들은 이미 이 비틀린 세태에 푹 절여져 노력하지않는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조차 받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런 네 사람의 집합, 가족.

 

있는 그대로를 옮긴 말이었다. 의미를 부여하면 더 비참해질수도 있는것이 그들의 실상이었고, 많은 이들의 현실이었다. 다만 예외가 하나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생긴 말못할 비밀. 소년과 늑대와 문 이라는 세개의 다른 토픽이 한데 엮여 현실을 벗어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지금,

 

"좀 짤려나.."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책상앞에 앉았다. 그러나 해야할 공부는 손에 잡히지않고, 그러다보니 하는짓은 또다시 하얀 노트위에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는것이었다. 늑대와 그 역겨운 공간, 뱀의 쉿쉿거리는 소리와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자신의 일상,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이상향도 아닌 그저 소설속의 세상, 세상 전체에 이어진 거미줄 위에서 버둥거리며 점점 헤어나지 못하게 되버린 나비도 아닌 애벌레의 어리숙함 등... 비판하자면 끝도없이 계속될 그의 자기비하는 이제 습관이 되어서 내가 뭐 이렇지 따위의 사고로 실수를 정당화하는 어이없는 상황에까지 치달았다.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성과를 아주 좋게내면 '뭐가 잘못되었나? 이거 뽀록아니야?' 하고 기대하기보단 긴장하고 의심하는 이상한 사고방식도 생겼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생겨난 어리숙함과 제법 비참한 가족의 그늘에서 생겨난 음울함과 그 누구도 아닌 새로운 자아로서 활동하는 거미줄위의 애벌레 하나. 그 셋이 섞여 복잡히 한데 엉켜 정형화된것이 그 자신이다. 그는 그렇게 샤프심 하나를 갈아끼우며 공책을 덮었다.

 

이른 아침이 끝나가고있었다. 비도 안내렸는데 푹푹 찌는 짜증나는 날씨에 듣기 우스우라고 하는듯한 얕은 저주를 퍼부으며 목욕물을 받고 기스투성이 안경을 조심스레 닦고, 그에겐 성격이란게 딱히 존재하지 않는것이었다.

 

낭비도, 절제도, 인내도, 분노도, 협박도, 수긍도, 긍정도, 부정도, 신중함도, 무모함도.꿈도, 목표도, 진정한 이상도, 야망도, 의지도, 욕구도, 가치관도 없이. 그날 그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며 살아나가는 하류의 싸구려 잉여인간.

 

모든것이 구분없이 섞여 폐쇄적인 일면만이 드러난 그의 쓰레기같은 인격.

 

...그런 그의 어디에 무한한 가능성따위가 숨겨져있다는 말인가.

 

<개새끼니까 개소리나 찝쩍대는거지, 썅.>

 

그렇게 일축해버리고는, 팬티 한장마저 훌렁 벗어놓고 알몸위에 물을 끼얹다 핫 뜨거뜨거 핫 뜨거뜨거 핫- 따위의 웃기지도 않는 가사를 읊조리며 그렇게 이른 아침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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