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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싸이케데스(Psykedeath) 1장_1

2005.05.30 04:13

싸이케데스 조회 수:55 추천:1

extra_vars1 -제 1장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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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원인



....................

깜빡..깜빡....

눈을 떴다... 눈이 흐릿하게 보여서 눈을 비비고 보니 주위엔 안개라도 낀 듯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으...머리야... 여긴 어디지...?”

몸을 일으켜서 둘러보니 주위가 조금 서늘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기절한 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내가 쓰러진 걸 보고 누군가가 데려갔다 해도 상식으로는 집이나 병원 같은 곳이어야 했다.
바닥을 더듬어보니 돌바닥이었다. 순간 이곳이 동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닥은 잘 정리된 돌바닥이었기에 누군가의 거주지인 듯하다고 생각했다.

[깨어났나 보군...]

“......?!...누구지..?”

나는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의 주위에는 지금 환각결계가 쳐져 있다. 의식을 잃은 채로 차원을 이동할 때의 최소한의 방어수단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헛수고였다. 대체 어디서 말하고 있는 거야...?

[정확히는 환상결계, 즉 있지도 않은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결계다. 혼자의 힘으로 깰 수 있다면 권해보고 싶군...]

...결계...? 그걸..나보고 깨라고?

“어떻게...?”

[환각결계를 깨기 위해선 정신력으로 또 다른 자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흔히 대타분열이라고 부르지.. 지금의 너와는 다른 자아가 주위를 바라볼 때 결계 밖의 진실이 보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지금 이해를 제대로 했다면.. 그리 복잡하지만은 않은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러니까, 이 안개가 무시될 수 있도록 자아를 분열시켜야 된다는 거였지...? 일종의 이중인격자가 되라는 것인가...이상하군...
그렇게 잠시 동안 진전 없는 노력을 하자, 나도 모르게 뭔가로부터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주위로 바람이 불었다.

“......!!”

눈을 뜨니 주위엔 안개가 모두 걷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빠르군. 결계를 접해보는 것은 처음일 텐데.. 벌써 빠져나온 것인가..]
내 앞에서 짧은 감상평을 읊고 있는 이... 존재는... 다름 아닌 용, 즉, 드레곤이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무섭게 번뜩이는 눈과 내 팔뚝만한 이빨, 그리고 무엇보다 은빛의 비늘로 둘러싸인 거대한 몸체에 위축되어 아무런 동작도 취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존재를 처음 보겠군, 이계인이여. 이 세계의 인간이더라도 볼 기회는 많지 않지만 말이야..]

그는 내가 얼어붙어 있든 말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드레곤이라는 존재다...이름은 ‘케이론 칼(Keirown Karl)’ 현 실버드레곤 수장이자 드레곤 로드(Dragon Lord)이지. 이계인이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상황판단이 잘 되지 않았지만, 그냥 질문에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지금 대답하는 것은 내가 아닌, 아까 분열된 또 다른 내 자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의 나는 안개에 의해 주위를 볼 수 없어 두리번거리는 나와 냉철하게 안개를 벗어나 드레곤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나, 이렇게 둘이었다.

“한현.... 정한현...”

[이곳의 이름으로는 그리 적합하진 않군.. 내가 새로 지어줘도 괜찮겠나?]

“그러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고, 말할 힘도 없었다.. 아까부터 너무 놀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심한 것은 바로 아직도 배가 너무 고프다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을 정도로..

[네 이름은... ‘훼리스(Hweriss)’가 좋겠군.. 괜찮나?]

“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며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

[따라와라, 몰골을 보니 배부터 채워야 할 듯이 보이는군.. 설명은 그 다음에 해주지.]

내 생에 이렇게 반가운 말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보나마나 그의 레어(lair)였는데, 그가 일어서도 닿지 않을 만큼 천장을 높아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거대한 동굴이었다. 우리가 있는 장소는 거실과 같은 용도인 듯 여러 개의 방과 이어져 있었는데, 케이론이라는 이 드레곤을 따라 30미터는 족히 될 듯한 높이의 입구를 지나자, 이번엔 약간 작은 방에 다다랐다.

“....!”

  들어오면서 약간 추운 느낌은 받았지만 이런 건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둥근모양의 커다란-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이다- 방의 중앙에는 그저 길다랗고 평범한 식탁이 약간 화려한 의자들과 함께 놓여 있었지만, 주위 벽들은 모두 얼음으로 둘러 쌓여있었고, 그 속에 음식들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한마디로 모든 벽이 냉장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벽의 높이가 높은 만큼 들어있는 음식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다. 그나마 정돈이 잘 돼 있고 얼음을 통해서 보는 것이기에 좀 나았다.

[놀라운가 보군..실버드레곤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수되어 온 기법으로 프리즈 마법을 연구해서 음식을 적당한 온도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겉보기엔 그저 얼음벽 뒤에 방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천년정도는 보존이 가능할 거다.]

천년이라...내 자손들이 8대까지는 먹을 수 있겠군...근데 저 중앙에 식탁은 케이론-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몸집으론 앉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저기.. 저 의자엔 어떻게 앉으시죠?”

[아.. 드레곤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가보군... 당연히 본체의 몸집으로는 안 되지. 폴리모프
(Polymorph)!!]

지이잉-

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하던 몸집이 연하게 빛나며 점점 작아지고, 비늘과 날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긴 은발을 가진 30대 중반쯤의 남자였는데, 얼굴은.. 매우 예리한 느낌을 주면서 잘생긴 것이 왠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드레곤이 변신(?)했기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간에 미남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간의 모습이 된 후에도 기품과 위압감은 거대한 드레곤일 때와 거의 다름없었다.
내가 다시 놀란 얼굴을 하고 있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그가 입을 열었다.

[훗, 이건 폴리모프라는 것이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드레곤이라면 모두 가진 능력이지. 드레곤의 몸체로는 상당한 공간적 제약이 있어서 생활하기가 불편하니까. 단지 드레곤하트(Dragon Heart)를 사용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뿐이다.]

케이론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봐도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지 드레곤이라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한 가지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의 눈과 체모가 모두 은색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케이론은 고개를 돌려 방의 끝부분으로 걸어갔고 나도 따라갔다. 그곳 벽의 얼음엔 작은 원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케이론이 뭐라고 짧게 중얼거리자 빛을 냈다.

쿠구구구-

“.....?!”

문양에 빛이 사라지자 그 주위로 벽 한쪽이 사각형으로 잘리며 옆으로 밀려났다. 안을 들여다보자 밖에서 봤을 때 상상했던 거와는 조금 달리 중앙에 길이 나 있었고, 좌우로 수많은 층의 얼음으로 된 선반들 위에 식량들이 올려져 있었다.

“과일..뿐인가요?”

정말로 이곳에는 과일만 잔뜩 모아져 있었다. 다른 쪽에는 고기나 생선도 있었던 듯한데... 왜 하필...?

[그렇다.. 넌 지금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을 굶은 것이기 때문에 고기가 바로 들어간다면 큰 무리가 갈 것이다. 과일이라도 충분히 있으니 사양 말고 먹어라. 모두 신선도로는 최고급이라 소화를 위해서는 훨씬 낫지.]

그리고는 손으로 한 쪽에 있는 흰 그릇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담으면 된다.]

배가 많이 고파 고기 생각이 간절했지만 꾸욱 참고 그의 말대로 그릇에 과일들을 담았다. 약간은 감정적으로..

  “다 담았는데..”

내가 잠시 후 그릇을 들고 뒤돌아섰을 때 그의 얼굴엔 약간 당황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당연한 것이 안 그래도 샐러드용 그릇정도는 될 만한 큰 그릇인데 안고 있으면 앞이 안보일 정도로 많이 담았던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많이 먹을 것이라곤 생각도 안했을 테니..

[그걸... 지금 다 먹을 것이냐...?]

나는 땀 한줄기를 흘리며 말하는 케이론을 지나 식탁에 그릇을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예.. 왠지 이 정도는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흠...]

그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걸어가 내가 있는 반대쪽에 앉았고, 나도 곧바로 앉았다.

[그럼 어서 먹어라.]

뭘 기다리겠는가.

“잘 먹겠습니다.”

사각-

그렇게 나의 1년만인 식사는 사과로 시작되었다. 사과는 그의 말대로 최고급이었다. 향기가 풀풀 나는 것이 백 개를 재배해도 하나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맛이었다.

우물 우물.. 사각-

[......]

내가 먹는 동안 케이론은 줄곧 손을 깍지 낀 채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있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의 그릇은 껍질과 씨로 차-과일이 없어 반도 차지 않았지만- 있었다.

“후아.......잘 먹었습니다.”

까닥-

[물 한 모금 마셔라.]

케이론이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자 신기하게도 그의 앞에 있던 물 담긴 잔이 나에게로 천천히 날아왔다. 과일이 즙이 많이 있다고 해도 마침 목이 조금 말랐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집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왠지 무뚝뚝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선 눈치가 빠른 것은 물론이고 어딘가 따뜻한 부분도 있는 듯 했다. 만약 이 사람, 아니 드레곤과 지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다지 괴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뭐, 어디까지나 그를 만난 지 1시간 남짓 된 나의 생각이니 신빙성은 거의 없지만..

내가 물 잔을 내려놓았을 때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그것’과 상관이 있을 수 있겠군...]

“..그...것?”

드디어 본론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