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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늑대의 공주님 -2

2005.05.30 04:08

영원 조회 수: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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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월야회담【 月夜會談 】

1 /

몸을 지글지글 태우는 열화의 고통이  넝마조각처럼 엉망진창인 내 혼
을 불살랐다. "휴식"이란 것 자체가 없는 피곤한 삶  속에서 유일한 안
식처인 취침을 취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 뜨거움. 거부하
고 싶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잠의 유혹은 언제나 나를 열화의 지
옥으로 내던졌고, 고문 같은 뜨거움에 깨어나게 되지만 또다시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잠을 취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나에게  잠이란 하나의 마약과도 같았다. 하지만
타고난 운명은 어쩔 수 없는지 잠은 내게  안식을 주는가 동시에 엄청
난 고통도 동반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타는 듯한 갈증과 뼈와 살이 녹
아버리는 그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허억. 허억. 허억."

오랫동안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탁기(濁氣)를 내뱉는  것처럼 난, 거
칠고, 또한 급하게 호흡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갑갑한 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굵직한 사슬이 폐를 옥죄기라도 하는 듯 들숨
과 날숨을 반복해도 갑갑함은 가시질  않았다. 오히려 심한 갈증을 느
낄 때와 같이 아무리 숨쉬고,  뱉고, 또 숨쉬어도 다시  거친 호흡만을
반복했다. 답답한 기분이 풀어지지 않자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

이 곳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또 질렀다. 그나마  괜찮아진다. 한참을
축 늘어진 몸을 형편없게 널브러뜨린  채로 누워있었다. 몸엔 쌀알 하
나만큼의 힘조차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망연자실하게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푸른 색
바탕에 귀여운 곰돌이 푸우가  그려진 벽지로 도배된  나만의 전용 공
간. 난 언제나 멍한 표정에 웃고 있는  푸우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했
다. 하지만 벽지 속의 푸우는 표정 그대로 헤실헤실. 문득 기분이 나빠
져 침대보에 얼굴을 묻었다.
‥‥‥축축했다. 아마도 꿈속에서 지독한 고통을 겪었을 때, 흘렸을 게
분명하다. 침대보는 물에 푹 담가져 나오기라도 한 듯 했다. 난 시큼한
땀냄새에 인상을 구기며 다시 돌아  뉘였다.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이
만한 양의 땀이 나올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러다가 내 몸도
침대보 만만치 않게 푹 절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젖어있는 침
대보에 누웠다 보니 내 옷이 젖어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
었다. 몸에 착 달라붙은 흰색  셔츠를 거칠게 풀어헤쳐 아무렇게나 던
져버렸다.

"아. 힘이 들어가는 구나."

어느덧 마비되어버린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난 숨을 고른 후에 침
대를 박차 일어났다. 그리곤 휘적휘적 파우더 룸으로 걸어갔다.
엄청난 양의 수분을 땀으로  배출해버렸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고 싶은 탓이기도 했다.

"후욱!"

내가 있는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Seoul)에 흔히
들 있는 호텔이었다. 개중에서도 대형  고급 축에 속하는 곳으로 일반
적인 고급 호텔은 저리 가라할  정도의 최고급, 최첨단 시설에다가 서
비스 또한 일절이었다. 게다가 상류층만이 모이는 지하 카지노까지 완
비했으니 돈이 심지어 썩어 넘칠  정도의 녀석들이 거주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부르주아들의 사치 행각 장소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더럽게 비
싼 녀석이었다. 돈값을 하는 녀석이랄까?
비록 나는 돈이 썩어 넘치지도 않고 한가로운 여가나 도박을 광적으로
즐기는 부르주아들도 아니지만, "러브 앤 피스"를 인생 모토로 삼고 있
기 때문에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사소한 점으로
한 가지 더 들자면 방음 시설조차 완벽하여  내가 아까처럼 고함을 질
러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 또한 좋았다. 역시 돈 값하는 녀석이다...
란 점에 공감이 갔다.
앞서 나열한 모든 장점을 제외하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
는 점은 파우더 룸이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귀차
니즘에 대비한 티가 줄줄이 흐른달까...

솨아아-

차가운 물이 꼭지 주둥이에서 쪼르륵 흘러 나왔다. 난 두 손을 바가지
처럼 둥그렇게 만들어  물을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멍하던 정신이나
흐린 시야 따위들이  다소 맑아졌다. 동물들처럼  거칠게 투레질을 한
뒤 물기가 촉촉이 젖은 세면 거울을 쳐다봤다. 물기에 젖은 갈색의 머
릿결이 이마에 붙은 내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망가진 폐인의 그것
이었다. 젊은 나이를 지나서 서서히  노화가 진행된 주름진 얼굴에 구
불구불 붙은 모습은, 와일드하며 세련된 용모를 중요시하는 나에겐 무
엇보다도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난 대충 손짓으로  단정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가벼운 도리질로 물기를 대충 털어 내고는(애써 정리한 머릿결
이 흩어져 아차! 하고 뒤늦게  탄성을 터뜨렸지만 이미 정리한 머리카
락은 잔뜩 흐트러진 뒤였다.) 파우더 룸을 나와  거실로 갔다. 그 와중
근처에 걸려있던 흰 수건을 빼내 대충 얼굴에  대고 박박 문지른 나는
소파 앞의 유리 탁자에 다리를  걸쳐 앉았다. 고급답지 않게 소파에서
가죽 냄새가 약간 나는 듯 싶었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나의 후각을 떠
올리고는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일반적인  인간으론 맡을 수 없는 것
을 가지고 트집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잉-

대형 컬러 티브이가 켜졌다. 난  마땅히 흥미 있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채널을 돌려 뉴스가 한창  하고 있을 구  번을 눌렀다. 탁자에 펼쳐져
있던 신문지 한 면을 장식하고 있던 "투데이 프로그램 일람표"를  봐둔
탓에 다행히 어느 때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채널 넘버가 바뀌며
시끌벅적하던 화면이 언제나 들어도 인상적일 뉴스 로고송이 흘러나왔
다.

띠디띠디디~

"저건 도무지 바뀔 기미를 보이질 않는군."

몇 초 되지 않는 로고송이 끝나고 구 번 채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약간 격양된 어조로 뉴스 앵커가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급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어제인 27일 목요일 오후 11시 경, 밤늦도록 술을 마시
다 귀가하던 ○○회사의 직원들 여덟  명이 무참한 시신들로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중략)‥‥‥ 이번으로 네  번째가 되는
이 끔찍한 대형 살인 사건은‥‥‥(이하 생략)」

오호? 난 그 이상, 들을 필요 없는 티브이를 끄고 침실로 걸어가 침대
머리맡에 놔둔 노트북 컴퓨터를 켰다.  그리곤 하늘색 바탕에 e이라고
써진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더블 클릭 했다. 인터
넷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과연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기이한
살인 사건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있었다. 난 "요즘 세상은 정말  소문
하난 빠르단 말야!"라 감탄을 터뜨리고는, 이 중에서도 그럴 듯한 것만
골라 클릭했다.

정신이 돌아버린 살인마의 짓이다.

광범위한 지역에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 여러 명의 살인마가 존재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시신들을  보아 야생에서 살다  인간 마을로 내려온
맹수의 짓이다.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오갔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이번 연쇄 대형
살인 사건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다. 하지만  가장 유력하게 판명된
세 가지도 내가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였다. 인간들은 다 헛다리만 짚
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인터넷을 통하여 떠들고 있었다. 비록
티브이에서는 사건 현장이나 시체 상태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괴
이치 않았다. 별로 인터넷이나 티브이  같은 정보 매체를 통하지 않고
서라도 능력만 사용한다면야 그까짓 거 보는 것도 아주 불가능은 아니
었다. 난 방 한켠에 기대어 있던 길쭉한 막대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외웠다.

"-------"

주문을 마치자 내 주변은 상상 못할 힘이 꿈틀거렸다.  쿠쿠쿡! 평범한
마술사들이 봤으면 놀라 까무러쳤을,  거칠면서도 음험한 자색 기류는
금방이라도 내 몸을 타고 오를 듯 발목 주위를 서성였다. 난 지팡이를
휘저어 자색 기류를 넓게 퍼뜨리고는 이어서 막대기로 기류가 돌고 있
는 폭풍의 중심을 꿰뚫었다.

쉬이이잉

진동이 일어나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을 소용돌이처럼 돌던 기류는 시뻘
건 폭발을 일으키며, 곧이어 눈을 태우는 백광(白光)을 발휘했다. 빛은
유형화되어 작은 창문 만한 크기의  평면을 구축하더니 하나의 스크린
처럼 영상을 비췄다.

"‥‥‥."

바닥을 흥건히 메우고 있는 검붉은 피.  게다가 그 위에는 생전 그 피
를 몸에 담고 있었을 고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전에야 "인간"이
란 생물을 구성하고 있었을 조각들이었다. 핏물과 붉은 고기,  씹어 먹
히기라도 한 것인지 한  줌의 뼛조각밖엔 남아있지  않은 처참한 살인
현장. 끔찍한 현장 탓에 경찰이 통제라도 하는 듯, 인간은 보이질 않았
다. 노란색 테이프로 현장에서  몇 미터 가량  떨어져 틈도 없이 쳐져
있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시체의 현황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금기를 깬 건가."

어쩌고 보면 인간의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모습이다. 잔
인하게 해체된 내장 조각들이나 살점,  난 속이 뒤집히는 잔인한 광경
에 약간 거북했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글렀군.' 나직이  투덜거리며
서둘러 영상을 닫았다.
일단 이 정도로도 상황 판단은  완료가 되었다. 거칠고 와일드한 남자
의 심벌인 가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투덜댔다.

"금기를 깬 마물(魔物)이라... 그것도 이렇게 대중적으로 벌이는 미친놈
이라면 그다지 많지 않을 터. 설마 진조 놈들이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
작한 건가."

바깥 세상에도 그 만의 금기가 있듯이 이  회색 어둠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할 금시 사항이 있다. 바로 죽을 때까지 어둠 속에서 그 자신을
감추는 것! 하지만 이것은 몇 백, 몇 천년 동안  수많이 어겨졌고 지금
도 조금씩이지만 금기를 어기고 바깥  세상을 활보하는 마물들도 있었
다. 하지만 회색 어둠 속을 나와 양지의 존재가 되는 것과 "살인"은 명
백히 차원이 틀린 것이었다. 사소한 일로도 매스컴이나 언론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21세기에선 그것이 더더욱 문제가  된다. 예전에는 모르나
현재에 이르러는 살인이란, 전쟁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행
위였다. 한번만 터져도 며칠간 시끄럽게 울려댈 것이 자명한 일일진대
그것도 네 번째. 이젠 인터넷이나  티브이 같은 정보 매체에서는 어처
구니없는 공상까지 떠들어대며 우매한 시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있
었다. 내가 간략한 정보만을 얻고 컴퓨터를 종료한 것도 다 이것 때문
이었다. 인터넷 검색 포탈의 순위  일 위를 차지하고 있는  연쇄 살인.
여러가지 억측들과 개념 없는 인간들이  지껄이는 몽상들은 괜스런 공
포감을 조성하기 때문이었고,  또 이런 글들을  작성한 인간들이 분명
자신이 쓴 글로 하여금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
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하지 못하고 "연쇄 살인" 그것도 아주 끔찍한 대 사건을 그저 장난으로
만 보고, 자기 혼자만 다 아는 양 으스대며 스스로의 어줍잖은 줏대로
판단하고 떠들어대는데 이 어찌 꼴불견이 아니겠는가. 그저 지적 허영
심을 충족하고 사람들의 공포를 양식으로  삼는 변태들 따위의 몽상들
을 보아주기엔 내게 주어진 무한한 시간의 단 일 초조차도 아까웠다.

"역시 녀석에게 코어(Core)를 맡긴 것은 서투른 판단이었을까‥‥‥."

침대에 몸을 누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복잡한 심경으로 뒤죽박죽
섞인 생각 틈으로 문득 일 여년 전의 소년이 떠올랐다. 이글이글 불타
오르는 눈으로 강해지고야  말겠다고 선언한 당돌한  소년. 이름이 아
마... 천성(天成)이었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보잘것없는 능력
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코어를 갖고  가겠다고 외치는 도전적인 눈매의
천성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강해지겠다. 누구보다 화려해지
겠다. 누구보다 높은 정점에 서겠다. 누구보다 멋진 비상(飛上)을 하고
말 것이다!" 난 그 즉시 녀석의 의지에 감격하여 몬스터 코어를 천성에
게 맡겼고 녀석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주기 위해  내 친우의 곁으로 보
내버렸다. 그의 말처럼 강해지기를,  화려해지기를, 정점에 서기를, 비
상을 하게 되기를 믿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회색 어둠들은 그 소년에
게 비상하게 놔두지 않는 모양이다. 우연일 것이다. 단지  그저 살인충
동을 견뎌내지 못한 마물들이 벌인  일이라고 되도록 믿고 싶지만. 네
번째는 충동적이라고 보기엔 수가 많았다.
무엇보다 내 날카로운 직감이 시끄럽게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너무 이른데.

이르다고 늦장 부리면서 계속 평온한 삶에 안주할 수는 없다. 내 불길
한 상상들이, 만에  하나 천에 하나  맞아떨어졌을 경우... 자칫했다간
간신히 잡은 나의 평온한 삶이, 나의 평화가 송두리째 뽑힐 것이다. 그
리고 몬스터 코어를 지니고 있을 천성은 틀림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
다. 안 그래도 주름살이 늘어가는  피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
니었는데, 때아닌 불청객으로 인해 쭈글쭈글 늙어가는  기분이었다. 주
름살 수술이나 받을까? 농지거리 같은 생각을 하면서, 허공에 대고 혼
잣말로 중얼거린다.

"움직여야 할 때군."

촤라락!

밝은 햇빛을 차단하고 있던 베이지  색 커튼을 걷어냈다. 따사로운 양
광(陽光)이 비춰왔다. 흡혈귀 같은 회색의 어둠들이 지독히도 싫어하는
햇빛. 나 역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지금부터는  이 햇빛
을 볼 날이 꽤나 적을 것이다.  미리 많이 쬐어둔다는 맘으로 난 계속
우두커니 서있었다.

"쿠쿡. 바빠지겠는걸! 오랜만에 마술사 회의나 참석해볼까."

여러 잡동사니들이 걸려있는 옷걸이에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간편한 복
장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맨 위에 걸려 있던 검은 색의 챙 넓은 모자
를 쓰고 문을 열고 나갔다.
바람 찬 10월. 10일, 그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