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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수水-음飮

2005.06.07 03:02

물로쓴글씨 조회 수:39

extra_vars1 1화 생존자와 복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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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적에 대한 방어’라는 장점과 ‘교통의 불편’이라는 단점이 동시에 있어서 양면(兩面)산맥이라고 불리는 대륙 남동쪽의 산맥. 그 산맥에는 두 줄기가 있다. 북쪽줄기는 지형이 험하고, 바위로 덮인 봉우리가 많아 예로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렇지만 지형의 특성상 마을이 발달하지는 못했다. 반면, 남쪽줄기는 완만하고 바위보다는 흙으로 된 곳이 더 많아 예로부터 마을이 잘 발달했던 곳이다.

남쪽줄기에 있는 수많은 마을들 중에는 줄기의 서쪽 끝에 위치한 어떤 조그만 마을도 있었다. 아직 새벽이어서 그런지 마을에서는 조그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이 될 때까지는 여전할 모양이었다.

조금 더 있으니 해가 떠올랐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온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10명을 겨우 넘기는 규모여서 좀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밭일’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인 것 치고는 초라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다.

“자,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고!”

한 남자가 외쳤다.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자는 뜻이 담긴 의미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를 보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이 약간 이상했다.

한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또 그 소리! 다른 말 좀 개발해보세요.”

소년의 말에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았던 웃음소리가 나중에는 온 산에 메아리 칠 정도로 커졌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웃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년 전쯤이었다. 그때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마을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밭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지금 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저 남자가 한 가지 의견을 냈던 것이다. 하루일과를 힘차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구호를 외치고 시작하자는 의견을. 그 당시, 그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결국 마을사람들은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남자는 첫 구호를 외쳤다. 지금과 같은 구호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마을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이 꽤 괜찮다고 느낄 즈음이었다. 그때, 소년이 마을사람들의 생각과는 약간 다른 말을 했다. 매일 같은 구호만 외치다보면, 지겹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남자는 구호를 자주 바꾸면, 마을사람들의 단결력이 약해 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당시에는 꽤 설득력 있는 말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설득적이었던 소년의 말은 거의 무시당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후, 소년이 했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매일 같은 말만 듣자니 지겨웠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이 했던 말이 마을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자신이 밀리는 것 같다고 느낀 남자는 구호를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지금 사람들이 웃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해놓고 지금까지 구호를 못 바꾸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런 반박 못할 이유가 있었지만, 남자는 그저 넋 놓고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네 여동생은 어디 두고 왔냐?”
“여동생이요?”

소년은 반문했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여동생은 원래 없었고, 부모는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소년은 요즘 들어 아저씨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폴라리스는 제 여동생이 아니에요!”

폴라리스(Polaris)는 이 마을에 사는 10살의 여자아이이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에 부모를 잃었지만, 소년과는 달리 외로움을 많이 탔다. 이 마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무튼 소년의 여동생은 아니었다.

“왜? 이름도 똑같은 ‘폴’로 시작하잖아? 거기다가 글자수도 같고. 나이차가 좀 있긴 해도 7살이면 눈 감아 줄만 한데, 안 그래?”

폴라리스와 소년이 공통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소년의 이름인 폴시디아(Forsythia)와 폴라리스. 남자의 말대로 ‘폴’로 시작한다는 것이 같았고, 글자 수도 같았다. 거기다가 고아라는 것까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충분히 남매로 오해할 만 했다. 그러나 둘이 남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가 한 말이니, 결국 소년, 폴시디아를 놀리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늦어서 미안해요.”

폴라리스였다.

지금 폴라리스는 폴시디아에게 말했지만, 사실 그 말은 마을사람 모두에게 한 것이었다. 아직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종종 이런 식으로 할 말을 하곤 했다.

“지각쟁이 꼬마도 왔겠다. 자,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고!”

남자의 고집은 대단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좀더 정확히는 방향만 같았고, 질서 같은 것은 없었다. 질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행진에 질서가 있을 리가 없었다.

밭은 마을에서 산봉우리 쪽으로 몇 백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정성스레 가꾼 밭에 심어놓은 초록색 풀은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었다.

“여어, 거기 밑에 조심하라고. 잎을 밟았다간 큰일 난다고.”

마을사람들은 조심조심 밭으로 들어가 풀들을 살폈다. 혹시 밤사이에 얼지는 않았는지, 벌레가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바람에 눕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의 정성은 대단했다. 그때, 사건이 터졌다. 폴라리스가 잎을 밟고 만 것이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랬잖니. 뭐, 우리도 많이 그랬긴 했다만.”

폴라리스는 변명도 못한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옆에서 보고 있던 폴시디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다들 한번씩은 하는 실수인걸 뭐. 탓하려면 이 이상하게 생겨먹은 풀을 탓해야지.”

이 풀이 이상하게 생겨먹었다는 것은 만인이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땅 밑에 붙다시피 한 키에, 30센티는 가볍게 넘는 2개의 잎. 마치 자신의 잎을 밟아 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 생긴 모습은 이상해도, 지독한 산성비 속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종(種)이니, 그 생명력 하나는 알아줘야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밭에서 나왔다. 올 때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모여서 함께 왔지만, 갈 때는 제각각이었다. 아직 아침도 못 먹고 나온 사람들이라 배가 고팠던 것이었다. 물론, 마을에 간다고 해서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폴시디아와 폴라리스는 제일 마지막에 마을로 돌아왔다. 어른들이 혼자 할 일을 둘이서 했지만, 속도는 오히려 더 느렸던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식사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여서 식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내일이면 쌀도 바닥날 것 같은데, 그 녀석은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거야.”
“그 녀석, 화살보다 빠르다더니 다 허풍이었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녀석’은 며칠 전 쌀을 많이 키우는 마을인 ‘산세베니아’에 쌀을 얻으러 갔던 청년이었다. 물론 공짜로 얻으러 간 것은 아니었고, 엄밀히 말하자면 물물교환이었다. 이 마을사람들이 밭에 기르는 그 풀과 쌀을 교환하는 형식인 것이었다.

“쌀이 바닥나면 이놈을 먹으면 되잖아.”

이렇게 말한 남자는 난쟁이 같은 풀을 집어 들더니, 입속으로 가져갔다. 아까 밭에서 기르던 풀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폴시디아는 경악했다.

“하지만 맛이 없잖아요.”
“열일곱이나 된 녀석이 아직도 반찬투정이냐. 네 여동생 좀 봐라. 불평 없이 잘 먹잖아?”
“또 그 소리에요!”

그러면서 폴시디아는 폴라리스 쪽을 돌아다보았다. 과연 폴라리스는 별 불평 없이 ‘난쟁이 같은 풀’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폴라리스라고 해서 이 풀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독한 맛이라도 있으면 좀더 낫겠지만, 이 풀에는 맛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무미(無味)였다.

식사가 끝나가면서 사람들 간에 오가는 대화는 더욱 많아졌다. 입에 음식을 넣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주의의 사람들까지 가세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말이 늘었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가 실언을 하고 말았다.

“에휴, 그 녀석 별탈은 없는지 모르겠네. 요즘 들어 괴이한 일이 부쩍 늘어서 말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뜸 누군가가 그에게 호통을 쳤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그 녀석 걱정일랑 하지 말어. 어른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하는데도 말도 안 듣고 냅다 가버리는 녀석 따위 걱정해서 뭐에 쓰려고.”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그 녀석’을 가장 많이 걱정하고 있을 사람은 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노인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점심을 다 먹은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팔베개를 하고 낮잠을 자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저만치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폴시디아와 폴라리스는 마을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실은 그림은 폴라리스가 그렸고, 폴시디아는 구경꾼이었다.

폴라리스는 짤막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는 바닥을 보며 고심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폴라리스가 그린 것은 동그라미 2개뿐이었다.

동그라미 2개. 폴라리스가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폴시디아는 곧 그것을 깨달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한번 그려볼까?”

그러면서 폴시디아는 폴라리스가 쥐고 있던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폴라리스가 쥐고 있을 때와는 달리, 막대기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눈, 코, 입의 대략적인 위치가 잡히고, 머리카락과 옷까지 대충 그려지면서, 서서히 그림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다. 폴시디아가 그린 것은 인자한 표정의 부모였다.

“맞지?”

폴라리스는 대답은 하지 않고, 대신에 그림만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폴라리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진짜 이렇게 생겼을까?”

폴시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씨익’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폴시디아가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자, 폴라리스가 끝까지 캐묻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둘은 밤이 될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비슷한 과거가 있는 둘의 모습은, 비록 남매는 아니었지만 남매보다 더 가까워보였다.

밤이 되자,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다. 그럼에도 둘은 아직 밖에 있었다. 밤하늘에 별이 많이 떴기 때문이었다. 매일 보는 것들이라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날이 지날 때마다 별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충분히 재밌는 일이었다.

“별들은 매일 자리를 옮기는데, 저 달은 왜 제자리에 떠있는 걸까. 모양을 바꾸느라 못 움직이는 걸까?”

끝을 올리기는 했지만,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것이어서 폴시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말은 달랐다.

“오빠는 예언을 믿어?”

예언.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폴시디아는 잠깐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곧 대답했다.

“‘대륙에 깃든 고통과 원한이 칼이 되어 달을 베어내고, 그 피는 비가 되어 내리리라. 피의 만월이 뜨는 날 신의 심판이 있으리라. 생명이 시작되는 곳에 열쇠가 있으리니, 살아남고자 하는 자는 그것을 찾으라.’ 이것 말이야?”
“응. 그 예언이 맞는다면, 벌써 반달인걸.”

한달이 지나도 조금밖에 차오르지 않는 달이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어느덧 반달이었다. 예언, 예언이라.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그만 들어가자. 봄이라지만 아직 추워.”

그렇게 마지막까지 떠들던 둘이 집으로 들어가자, 마을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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