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달의 그림자

2005.06.06 06:01

아메바 조회 수:44 추천:1

extra_vars1 Prologue. 
extra_vars2
extra_vars3 1695-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커헉….”

생명을 내뿜는 격음.

흘러내린 장발이 남자의 몸에 벌레처럼 달라붙는다. 갈빛 코트에 묻어나오는 어둠을 보면서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눈앞의 소년을 보았다.

그의 배를 관통시킨 팔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확장된 핏줄, 피부를 뚫고 나온 근육. 남자의 등에서 피어난 손은 이미 손톱이 모두 빠져버렸다. 그러나 소년은 변형된 팔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소년은 소름끼치는 눈으로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남자를 보았다.

-툭

남자의 등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날개가 떨어져나갔다. 소유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거대한 날개. 암흑으로 채색된 5층 건물 높이의 그 날개는, 앞서의 다른 다섯 장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드디어 본래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날개의 부재 때문에 남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왜소해보였다.

남자는 완전히 색을 잃었다. 검게 변한 그 모습은 그림자가 땅에 붙어있기를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윤곽밖에 구별할 수 없게 된 남자는 굳어있는 소년의 얼굴을 더듬었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그 손으로 인간을 쥐어짤 수 있었다. 인간 정도는.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힘은 살아있다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남자는 스러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게 네 선택인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을 번들거리며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막을 수 없어…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넌 유일한 타협안을 네 스스로 없애버렸다. 본능밖에 남지 않은 그녀는 이제 이그드라실을 충실하게 지탱하겠지. 끝까지 그 두 눈으로 지켜봐라…! 네 딸, 네 동생이 이 세계를 영원한 침묵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이게 네가 선택한 미래다!”

남자는 앞으로 쓰러졌다. 소년은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남자의 몸을 그렇게 지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무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의 옆구리 일부가 먼지처럼 바스러졌고, 박혀있던 소년의 팔은 그 틈으로 빠져나와 바닥을 향했다. 머리를 간신히 소년의 어깨에 걸친 남자는, 마지막 말을 힘없이 내뱉었다.

“…편안하군.”

파삭.

너무도 허무한 소리와 함께, 243년을 살아왔던 고대의 파수꾼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소년은 이제 텅 비어버린 거리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주름잡힌 캔버스처럼, 거대한 파도를 그리고 있는 도시. 그 위로 솟아오른 도심의 한가운데에는 검은 탑이 홀로 고고하게 떠올라 밤의 빛깔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달 아래, 그 극단적인 어둠은 이 밤에 펼쳐진 모든 비현실의 정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오른쪽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물이 눈에 튀었다.

무심코 그 쪽을 내려다본 소년은, 팔을 보려던 시선이 어깨에 가는 것을 느끼고 멈칫했다. 이미 잔뜩 비틀어져있던 팔은 결국 박살이 나 있었다. 깨끗하게 뜯기지 못한 근섬유가 걸레조각처럼 팔 끝에 매달려 있다. 그 끝에서는, 그의 눈을 괴롭혔던 장본인이 아래에 떨어져 때 아닌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더 소름끼치는 팔의 단면을 매만지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눈을 돌렸다.

“진수 군….”

노란빛 머리, 원래라면 풍성하게 떨어져야 할 긴 물결이지만, 지금은 꼴이 말이 아니다. 소녀는 비틀거리며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그 걸음은 매우 힘들어보였다. 소년의 눈은 그 소녀가 붙잡고 있는 옆구리에 가 닿았다. 한 움큼 뜯겨나가 비정상적으로 패여 있는 허리. 하지만 소녀의 손에서 나고 있는 노란 빛이 강해질수록, 그 단면에서는 새로운 조직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소년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녀가 말했다.

“그 팔… 어떻게 된 거에요?”

“아아.”

소년은 더 이상 피가 새어나오지 않는 팔을 보았다. 원래는 왼팔과 똑같은 길이였지만, 지금은 가슴 언저리만큼으로 짧아져 있다.

“끝났어.”

“…….”

“전부 다.”

더 이상 이그드라실의 발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의 정신은 혼돈으로 빨려 들어가고, 인간을 잃게 된 이 세계의 밖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는 인간이 없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겠지. 그로써 역사의 책장은 표지가 되어 완전히 덮인다. 하지만 읽기가 끝난 책은 책장에 꽂히는 대신, 시간의 뒤편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바뀔 수 없는 과거. 나타날 수 없는 미래. 영원한 고정. 악마의 숙원.

소녀는 부드러운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 오른팔을 잃어버린 소년은 급조된 산 위의 가지를 보고 있었다. 소녀는 말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진수 군. 말해줄 게 있어요.”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      」외에 그녀를 제어할 수 있는 자는 없어요. 하지만 그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녀에게 생명을 주었던 사람. 그 정도의 상징성이라면, 아무리 강대한 이그드라실이라 해도 소용이 없겠죠. 그 상징성은 이그드라실 자체가 아니라, 이 세계 밖에 있어야 할 이그드라실을 여기서 유지시키고 있는 핵에 작용하는 거니까요.”

소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지나왔던 시간을 안다. 따라서 그녀가 말해야 할 무게 또한 잘 알고 있다. 무게? 단지 일 주일만의 추억이 전 세계, 모든 인간의 생명보다 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그럴 수 있다.

소녀는 말했다.

“진수 군. 진수 군만이 그녀의 생명을 거둘 수 있어요.”

소년은 물끄러미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빛. 소녀는 아우라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의 소년에겐 그것조차 없다. 소녀는 말을 꺼내고 만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환멸을 느꼈다. 소년은 몸을 돌렸다.

“다녀올께.”

소년은 거대한 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차거운 밤. 달빛이 세례하는 거리. 슬픈 바람이 고개 넘는 도시.

그것은, 어느 날 밤에 벌어졌던 이야기.



----------------------------------------------

창도에서는 그림란에서만 놀았었지만 전 사실 그림보다는 글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랍니다 (..)
챕터(?)를 나눌까 말까 생각중인데.. 나누지 않는다면 10화 내외의 짧은 게시물이 될 것 같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6 수水-음飮 물로쓴글씨 2005.06.07 39
95 달의 그림자 [1] 아메바 2005.06.06 59
94 아즈론 히스토리 천공MiD짱 2005.06.06 147
93 [코믹]지구침략부 천공MiD짱 2005.06.06 157
92 Pessinist [1] 로제스 2005.06.06 43
» 달의 그림자 [1] 아메바 2005.06.06 44
90 싸이케데스(Psykedeath) 4장_2 [1] 싸이케데스 2005.06.05 143
89 Pessinist [2] 로제스 2005.06.05 28
88 천무 [7] 천무 2005.06.04 174
87 엘리맨탈 소드 마스터 [3] 엘리멘탈소드마스터 2005.06.04 67
86 [바하카프] [1] file 영원전설 2005.06.04 95
85 야누스의 아이들 [1] 케이시온 2005.06.03 59
84 싸이케데스(Psykedeath) 4장 [2] 싸이케데스 2005.06.03 56
83 어느 들고양이의 하루밤 [2] misfect 2005.06.03 117
82 황혼의섬 [1] 셰이 2005.06.03 99
81 악마와 장군의 이야기 [2] 에베 2005.06.02 184
80 [바하카프] [4] 영원전설 2005.06.02 53
79 황혼의섬 [1] 셰이 2005.06.02 55
78 황혼의섬 [1] 셰이 2005.06.02 134
77 황혼의섬 [3] 셰이 2005.06.02 192